노조개혁, 경제민주화의 예외인가?
노조개혁, 경제민주화의 예외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4.2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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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고질화된 부산항운노조의 취업비리가 또 재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10년이 넘도록 노조에서 근무한 전 노조원까지 가담한 데다가 취업알선 브로커를 통해 6억원이 넘는 사취가 이뤄져 취업비리 고질병 근절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건국대병원노조 역시 외부 납품업자의 편익을 봐주는 조건으로 노조 간부들이 수천만원 대의 금품과 향응을 받아 온 혐의로 시끄럽다. 지난해에는 노동조합비를 횡령한 혐의 등으로 모 은행 노조위원장 등 노조집행부 3명이 검찰로부터 기소됐다.

기법도 다양했다. A씨 등은 지난 2008년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자신의 연월차 기간을 더 늘린 뒤 수당으로 받아 챙기거나 조합비를 개인차량의 유류비로 쓰는 등 천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이러한 노조 비리는 작은 기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현대차노조는 지난해 7월 이들 전 노조임원 5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을 대상으로 선물 비리로 손해 본 조합비를 갚으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연대해서 5억1천만원을 노조에 갚으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현대차노조 간부가 노조 창립기념일 선물 납품을 맡은 업체를 불법으로 선정했던 것이다. 사실 노조비리는 한국사회에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노조비리, 어제 오늘 일 아냐

“연고가 없는 사람은 애당초 입사가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2005년 박홍귀 기아차노조 위원장이 밝힌 노조의 채용비리 폭로 기자회견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채용 비리 소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계약직 1079명을 채용한 직후 노조 홈페이지에는 “누가 누구 백으로 광주공장에 들어갔다더라”“누구는 광주공장에 들어가면서 얼마를 줬다더라"는 식의 폭로성 글이 폭주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기아차노조의 취업장사는 과거 김선홍 회장 시절 경영측이 강성 노조에 굴복해 사실상 ‘경영 참여’에 가까운 권한을 묵인한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외환위기 때 기아차가 부도를 내고 현대자동차로 넘어갔을 때도 “입사청탁이 횡행하는 등 노조의 전횡과 부실경영이 겹쳐 회사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는 소문도 파다했었다.

하지만 노조비리는 대개 사측과의 비밀협상으로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노동계의 요구로 노동부의 노조에 대한 회계감사권이 없어지면서 노조의 비리 유혹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웬만한 중견기업 매출에 버금가는 대기업 노조의 자금내역은 노조 간부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성역이 돼버린 것은 오래다.

업종별 노조인 전국택시노련의 경우 40억원 규모의 기금을 굴리고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금융업계 등의 대기업 노조들 역시 수십억원대의 자금을 주무르면서 회계감사도 제대로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의 경우 1959년 제정된 랜드럼-그리핀법에 따라 노조 임원과 간부는 그 가족까지 보유 주식과 채권, 기업으로부터 받은 금전적 이익, 융자내역 등을 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영국은 71년 산업관계법을 제정한 데 이어 92년 노조 및 노동관계법을 확정, 노조 간부의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노동조합에 대한 외부회계 감사제도는 노조의 요구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선한승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조 간부의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양 노총은 각종 개혁안을 쏟아냈으나 사실상 실천되지 않았다”면서 “노조 혁신 개혁안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개돼 노조가 환골탈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사권까지 장악하는 노조의 횡포

사실 노동조합이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력 독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종의 생산요소 담합행위인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담합을 통한 생산수단의 카르텔은 법에 의해 제재된다. 하지만 그러한 생산요소의 하나인 노동력은 노조라는 담합이 허용되는 것이다.

인건비는 노동의 가격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인력을 채용한 후 각 개인의 생산성과 업무능력을 판단해서 임금결정을 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노조는 단체협약을 통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임금 가격을 정하게 된다.

여기에 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우리 노조는 강성의 노조조직과 정치적 투쟁, 그리고 파업 등을 통해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인상률을 얻어냈고 이는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지속적으로 고갈 시켜왔다. 그결과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가운데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의 전임자 임금지급 규정은 귀족노조를 탄생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개 우리나라 노조 전임자는 노조재임기간이 끝난 후 현업에 복직하기 보다는 상급노조 간부로 진출한다. 그렇게 속칭 ‘노조꾼’의 길을 걷게 되는데 여전히 해당 기업에서 이 노조꾼들의 임금을 지급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은 그러한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다만 유럽의 국가들은 ‘코포라티즘’이라는 노.사.정 협의 체제를 갖고 있고 노조가 국가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관점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측의 임금지급을 허용하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산별노조와 같은 경우다. 우리같이 단위기업의 노조원이 상급 노조 전임자로 가는 경우에 그의 임금을 지불하는 기업들은 해외에 없다.

이러한 노조의 권리 남용의 배경에는 사측의 부도덕한 경영 비리와 최고경영자들의 비리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실제로 현대증권노조는 현대증권 내부의 경영 비리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여러 내용의 물밑 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KT 역시 노조가 이석채 사장의 배임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사간에는 표면적으로 갈등이 벌어지는 양상이지만 물밑에서는 은밀한 협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특히 노조가 정치색을 띠고 있는 기관들의 경우는 노조가 사측 경영진의 비리를 무기로 인사정책에도 관여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MBC노조와 김재철 사장간의 물밑 협상이 파탄난 경우다.

김재철 사장은 총선에서 불법파업을 주도한 MBC 직원들의 해고를 복직시키는 조건으로 노조로부터 자신의 임기를 보장받는 암묵적 협약을 맺었지만 결국 김재철 사장의 불투명한 회사자금의 사용 등이 정치권과 결탁한 노조의 공격으로 해임되는 사태를 불러왔다는 이야기는 방송계에 파다하다.

이러한 일들은 대한민국에서 노조의 역할과 본분에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노조의 권리는 근로자들의 복지에 국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노조는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 다른 이해집단들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고용을 세습하겠다던 현대차노조가 정치권력까지 넘본다면 이를 용인할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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