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가능할까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가능할까
  • 미래한국
  • 승인 2013.04.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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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누적 심각, 현실적 대안은 ‘파이로 프로세싱’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전체 전기에너지의 31.3%를 책임지고 있는 원자력발전을 중지시켜야 하는 현실을 보며 언제까지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원자력협정의 효력이 2014년 3월 19일로 만료될 예정이다. 1974년 5월 5일 새로 개정된 본 협정에 따라 한국은 미국의 동의 없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원자로에서 꺼낸 이후에도 오랜 시간 방사선과 붕괴열을 방출하므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에서 임시저장중이며 2016년을 기점으로 단계적으로 포화되기 시작해 신규발전소의 저장시설까지 완전포화상태가 되는 시점이 2024년이다.

이 임시저장 공간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것은 원자력발전 자체를 멈춰야 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는 집으로 치면 화장실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한미원자력협정인 만큼 확고한 국가정책을 세워 미국 측에 제시하고 개정을 요구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은 1991년 ‘비핵화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서는 여전히 믿기 어려운 나라인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정책도 방향을 잃고 마는 한국에 대해 일관된 원자력정책을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입장일 것이다.

한국과 에너지 상황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은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비핵3원칙(핵무기는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내세워 미국의 신뢰를 얻었다.

또한 이를 근거로 재처리, 농축, 발전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알고 명확한 판단을 한 지도자들의 정책이 반세기가 흐른 오늘날에도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한국은 왜 일본처럼 될 수 없었는가? 가장 큰 원인을 꼽는다면 에너지 위기에 대비하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부재를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성이 떨어진다.

한국, 일관된 정책 부재로 고전

일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차례 정권이 교체됐지만 원자력에 관한 기본적인 정책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고 있다. 2년 전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여전히 원자력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인 에너지정책 하에서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세세만년 존속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립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향후 50년을 전후로 화석에너지 고갈이 임박한 현 시점에서 한국과 같은 자원 빈국이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한국의 우수한 두뇌자원을 활용해 원자력기술강국의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일부 정치, 언론, 지성인이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과거 사반세기를 되돌아보면 여러 차례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을 갖추고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실례로 영덕폐기물부지 확보 실패, 안면도 사태, 굴업도 사태 등 공무원이 돌팔매질을 당하고 정부와 언론의 오보로 폭동이 일어나고 환경단체의 유언비어로 약 40년 동안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최근에 겨우 중ㆍ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는 동굴처분장이 경주에 건설되고 있지만 이곳은 부지가 협소한데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파이로 프로세싱에 거는 희망

이에 사용후핵연료의 장기 관리 방안으로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Pyro-processing)을 핵폭탄 제조와는 전혀 무관한 재활용 기술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논의된 바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의 경우 기존 재처리(Purex)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로 그 특성상 고순도 플루토늄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

파이로처리 공정은 습식법과는 달리 수용액이 아닌 용융염 상태의 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이기 때문에 상온에서 다루는 습식처리공정보다는 비교적 높은 온도(약 500℃)의 유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습식법 재처리에 비해 안전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만한 온도를 다루는 공정기술은 이미 확보돼 있기 때문에 이 기술을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나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기술도 재처리기술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핵확산이 우려되는 기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에 부딪쳐 습식 재처리를 할 수 없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처리해 소듐냉각 고속로의 연료로 재순환시키는 것이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 부족 문제를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다.

파이로 처리공정에서 얻어지는 최종제품(우라늄과 초우라늄의 혼합물)은 핵분열성 핵종(우라늄-235, 플루토늄-239)의 순도(5% 이하)가 너무 낮아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므로 이는 핵비확산 정책에 걸맞는 기술이라 사료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협정의 개정을 이끌어 내는 것은 정치가의 몫이다. 현 정부는 이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과학계의 원로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일관된 에너지 정책이 수립되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자원으로 원자력을 선택한 이웃 나라의 지혜를 배워야 할 시점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캘리포니아대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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