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위한 대처는 없다
한국을 위한 대처는 없다
  • 이원우
  • 승인 2013.04.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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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같은 대통령을 갖고 싶다면 대처 같은 국민이 돼야
 

모르긴 해도 마가렛 대처는 함께 일하기에는 아주 고달픈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 고작 다섯 시간 정도만 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의 절반이다. 나머지는 전부 일하는 시간으로 채웠다니 일중독(workaholic)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매우 유능하지만 순악질 워커홀릭 상사를 모셔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미래한국 얘긴 아니다) 막판에 대처를 배신했던 측근들의 심정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잭 웰치의 성격 파탄도 유명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뛰어난 업무 능력’이란 가까이에서 보면 고달프기 짝이 없는 것이다. 허허실실 웃으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인 채로 유능하기까지 하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다.

최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이 대처를 연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위아래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얘기다. 상사에게 “날 좀 잡아 달라”고 부하들이 떼쓰는 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대처와 박근혜 대통령이 둘 다 여성이라는 1차원적 공통점을 어떻게든 교묘히 이용하려는 술책으로밖에 안 보인다. 경제민주화 기조가 여전히 대세를 점하고 있고 국세청은 세무조사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 시국이 이러한데 대처 얘기는 부디 넣어두시길 감히 요청 드리고 싶다.

대처 같은 대통령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

대처의 삶에 깊이 매료된 사람들이 ‘한국의 대처’를 희구하는 장면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처는 영국 총리 사상 가장 긴 11년을 통치했다.

한국 대통령이 통치할 수 있는 기간은 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년이다. 그나마 전후 1년씩은 잘라야 할 테니 실제 통치기간은 3년이다. 이 시간의 깊이에서 오는 운명의 차이를 무시하면 곤란하다.

대처도 초기 3년간은 그저 인기 없는 정치가에 불과했다. 그녀의 굳은 신념은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현실 정치에서 신념을 실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현 체제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그걸 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5년 단임으로 권력을 묶어둔 시점에서 한국은 이미 자율적인 리더십이 뻗어나갈 가능성을 거의 차단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북한과 같은 외부의 공격세력이 있을 때 거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어적 리더십에 기대를 걸 뿐이다. 그런데 개성공단 문제에 대처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보면 방어적 리더십마저도 시원찮아 보이니 최근엔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비판론이 흔하게 보인다.

대처 같은 대통령을 갖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다. 유권자들이 먼저 대처 같은 국민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잊고 있는 얘길 하나 하자면, 우리는 대처가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의 캐치프레이즈에 주목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여성.” 이것이 대처의 슬로건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선거철만 되면 골목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후보들이 어깨에 띠 한 장씩 두르고 나오는 게 한국의 정치풍경이다.

요는 투철한 신념의 아이콘인 대처마저도 영국인들의 소환에 의해 중앙정치로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의 현실이 비상식적일수록 좋았다. 그래야만 대처가 짠 하고 나타나 강경노조를 혁파하고 복지국가 신화를 부술 수 있으니까. 어차피 누군가는 바꿔야 하는 게 당시 영국의 ‘상식’이었다.

마침 그 시기에 마가렛 대처가 있었던 건 영국인들의 엄청난 행운이었지만 대처가 혼자 뛰어나서 그 모든 걸 다 해낸 것은 아니다. 11년을 통치한 대처마저도 권력을 국민에게 위임받은 동안만 신념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선택 받은 아웃사이더였다.

스스로 변화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대처 같은 지도자가 강림하기만을 바란다면 우리 앞엔 느닷없는 히틀러가 출현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자기 수준 이상의 정치적 지도자를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대처를 추모하고 그녀를 연구하는 모든 시도들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

북한 문제에 잘 ‘대처’하는 정부 되길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임명을 끝까지 추진한 것에 대해 재미 있는 해석을 들었다. 박근혜와 윤진숙은 모두 여성일 뿐더러 미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윤진숙 장관의 경우 그다지 화려한 조건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능력에 기초한 경력이 박근혜 정부의 지향점과 일맥상통했다는 해석이다. 쉽게 말해 윤진숙은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용됐다는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청문회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자 윤진숙 후보 역시 “기회를 주신다면 여성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변호했다는 점이다. 이는 스스로도 아이콘으로서의 정체성을 상당히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 대통령이 윤 장관을 ‘진흙 속 진주’로 수식했던 것은 ‘여성 신화창조’의 화려한 스토리를 의식하고 한 얘기인 걸까? 이미 임명됐으니 남아 있는 일은 윤진숙 장관이 훌륭히 업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다. 많은 이들이 ‘불통 인사’라며 빈정거리지만 세상에는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 두고 볼 일이다.

단 하나 걱정인 것은 박근혜 정부가 ‘전설’에 집착하는 명목 위주의 국가경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시간이 짧아 많은 것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을 ‘여성 신화’, ‘한국의 대처’ 같은 수식어로 눙치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충실히 노력하면 전설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박정희), 전설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면 현실은 확실히 망가질 것이다(노무현).

대처보다 짧은 시간을 부여받은 새 정부는 대처보다 더 단순한 몇 가지 목표에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것이 5년 단임 정부의 본분이자 존재 목적이다. 2013년의 관점에서 박근혜 정부에 던져진 가장 큰 목표는 역시 북한이 아닐까.

그저 북한 문제라도 확실하고 단호하게 처리해도 박근혜 정부는 성공한 정권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문재인이 아닌 박근혜를 뽑았다. 한국을 위한 대처는 없다. 2013년의 박근혜 정부,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할 한국인들이 있을 뿐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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