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조약, NATO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미조약, NATO 수준으로 격상해야
  • 미래한국
  • 승인 2013.05.0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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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한 한미동맹은 지난 60년간 한국안보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될 당시 한미양국이 처했던 동북아 안보환경과 한국의 위상은 크게 변화했으며 조약도 현 상황에 맞게 한 단계 격상돼야 한다.

독립국가에 있어서 국가안보전략의 가장 큰 기둥은 동맹을 갖는 것이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외교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동맹을 맺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맹의 조건은 공동의 위협(잠재하든 현존하든), 이념과 가치의 공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국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약소국이 추구해야 할 동맹 대상은 강한 나라, 영토에 야심이 없는 나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 그리고 상대적으로 도덕성이 높은 나라가 돼야 한다.

한미간의 최초 조약은 1882년(고종19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었다. 이 조약의 제1조에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조문을 안보 관련 약속으로 보고, 조정은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기 시작했을 때 이승만에게 한국의 독립을 보장해 줄 것을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탄원토록 하기도 했으나 허사였다.

국가 간에는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조약’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조정은 알지 못했다. 조선이 미국과의 동맹에 실패한 것은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패, 무능했기 때문이다.

1954년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국가의 운명을 변화시킨 외교적 성과였다. 미국은 1951년 8월 필리핀, 9월에는 일본과 방위조약을 맺고, 이어 뉴질랜드ㆍ오스트리아와 ANZUS 조약을 체결하면서도 한국과의 방위조약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확고한 신념과 국가 장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밀어붙인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6·25전쟁 중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미국의 국내정치를 잘 이해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구두 약속을 믿고 휴전을 수용한 이후 방위조약 체결에 실패하거나 의회 비준이 거부되면 한국은 낭패라는 사실을 알았다.

조약 체결 위해 ‘미국의 적’됐던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현재의 휴전안은 대한민국엔 ‘사형집행영장’이라고 경고한 다음,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하는 극단의 조치를 강행했다.

그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직접 이승만을 ‘친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적’이라고 언명했다. 심지어 반이승만 쿠데타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민의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승만을 제거할 수도,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승만과의 상호방위조약 협상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반공포로 석방을 통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힘을 보여준 이승만이 만약 방위조약도 없는 상황에서 작전통제권에서조차 이탈한다면 휴전협정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한과 남한의 이중 억제장치였던 것이다.

조약은 휴전과 거의 동시에 가조인됐으나(8월 8일) 1년3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 17일에야 비준서 교환을 통해 정식으로 발효됐다. 대륙국가로서는 미국으로부터 아시아 최초의 방위조약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의 남침 저지는 물론 소련의 남하 저지, 중국 봉쇄, 일본 견제, 등 4중 안전보장장치였다. 한국은 세계 최강 미국을 활용해 주변 3강의 대 한국 영향력을 견제하는 역사적 전환을 이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자유와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한미동맹은 지난 60여년간 한때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많은 발전을 해왔다. 양국은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는 데 합의하고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가치동맹ㆍ신뢰동맹ㆍ평화구축동맹으로 격상한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변화된 안보 상황에 대응하고 전략동맹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그 기초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NATO의 자동개입 수준으로 격상, 개정할 때가 됐다.

조약의 제3조는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로 돼 있다.

즉 미국민(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조건부 약속이며 태평양지역에 한정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 제5조는 ‘당사국들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한 국가 또는 그 이상의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은 전 당사국들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데 동의하고’로 돼 있다. 즉 조건 없는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한 것이다.

‘조중우호협조호상원조에관한조약’도 제2조는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련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로 역시 자동개입개념으로 돼 있다.

방위조약에 있어서 자동 개입과 조건부 개입 개념은 크게 다르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조약의 의무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막아보자고 ICBM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여론을 전쟁불개입으로 돌려보자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60년 전 전쟁으로 피폐한 국토, 미국의 원조로 정부를 운영하는 국민소득 60여 달러의 세계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 자유세계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전략적으로도 한국은 중국의 굴기에 따른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와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에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할 대상이다. NATO의 어느 국가 못지않게 미국으로서는 세계평화에 기여할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제

더욱이 최근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위협, 정전체제 파기, 핵공격 등 막말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위기 상황이다.

특히 북한 핵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조건이 붙은 불완전한 조약’에 근거한 미국의 선언적 ‘핵우산’ 약속은 신뢰할 수 없다. 이때야말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NATO 수준으로 격상해 대북 억지력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뛰어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이룩한 한미동맹을 한 차원 격상하는 일을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 방위조약의 개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체 핵개발이라는 비장의 협상카드를 가지고 있다. 

박정수 편집위원‧예비역 해병대 준장‧워게임 사이버텍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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