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30년, 장로 30년 그리고 대한민국
기자 30년, 장로 30년 그리고 대한민국
  • 이원우
  • 승인 2013.05.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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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상임이사 회고록 출간
 

이 책은 신문처럼 생겼다. 신문 한 면의 사이즈를 44퍼센트 축소한 판형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표지 이미지 역시 신문의 디자인을 차용했고 중간 중간 사진들도 140여 장이나 수록되었다.

이 책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가 하나의 신문이라면 이 신문이 보도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김경래의 일생이다. 1부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는 기자 김경래를, 2부 ‘행동하는 믿음으로’에서는 인간 김경래를, 3부 ‘양화진 언덕에 서서’는 신앙인 김경래를 술회한다.

저자는 1928년 4월 3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했다. 1946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짧은 교사생활을 마치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첫해부터 부산 영도 앞바다에 북한군 선박이 나타난 사건을 특종 보도하며 기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책에는 이승만 대통령, 함태영 부통령 등의 유명 정치인들을 직접 만나며 활약한 기자 김경래의 일대기가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그 외에도 ‘20세기 한국 언론이 보도한 10대 특종’으로 꼽히는 월남 파병 기사, 사카린 밀수 사건 기사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보도됐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친필 편지 최초 공개

이 책에는 깜짝 놀랄 만한 특종이 수록돼 있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경래 기자가 주고받은 친필 편지의 내용이 최초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공개된 편지의 사진 속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또렷하게 명기돼 있다.

박 대통령과 젊은 언론인 김경래는 최고회의 출입기자 시절 취재원과 기자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1962년 국군 군사고문단 월남 파병 특종으로 단독 면담을 하게 됐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는 청와대로부터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은 뒤 거절했던 독특한 인연도 갖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박 대통령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 김 기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도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원칙을 꺾지 않았다.

10월 유신에 대해서 그는 “지금의 유신은 겉모습만 무리하게 바꾸는 것이며 마음과 영혼까지 새롭게 하는 진정한 유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편지에 적어 보냈다.

그의 편지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조언이었던지 두 사람의 편지왕래는 3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박 대통령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도 여과 없이 편지에 적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으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아내를 잃은 박 대통령은 이후 나의 충언은 물론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았고 점점 골방으로 들어가는 듯 보였다.

편지도 이때를 정점으로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끊기고 말았다. 나는 육영수 여사의 죽음으로 인해 박 대통령과 우리의 현대사도 상당 부분 일그러졌다고 생각한다.”

책의 중후반부는 신앙인 김경래의 모습을 그려낸다. 김경래 선생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기독교인이기도 했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낸 김경래 기자의 ‘대담한 시도’는 웃음을 자아낸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빽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각하를 뵌 김에 빽이 될 만한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임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
“그분은 바다 위를 거닐기도 하시고, 장님의 눈도 뜨게 하시고, 문둥병 환자도…….”
“그거 예수 아니오, 예수! 우리 집에도 성경책이 많이 있어요.”

비단 권력자에 대한 전도만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김경래 장로는 한국 기독교의 결정적인 장면들에 깊숙이 개입하며 오늘날 미국 다음 가는 선교대국이 된 한국의 기독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김경래 기자에서 김경래 장로로

1982년 한경직 목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사무국장에 취임한 김경래 장로는 여의도에서 400만 명의 인파가 참가한 1984년 ‘한국 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를 현장에서 지휘했다. 책에는 이 대회의 기획, 준비, 진행과정에서 있었던 일과 마친 뒤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현장감 있게 소개돼 있다.

후반부에는 김경래 장로가 직접 성지화 사업을 추진했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과 순교자기념관에 관련된 비화들도 수록됐다.

한국 개신교의 성지인 동시에 숱한 오해와 갈등, 심지어 송사(訟事)까지 겪어야 했던 양화진의 역사를 언론인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 및 교단에 속한 언론들이 양화진 문제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도 가감 없이 전달한다.

기자 30년, 장로 30년의 긴 세월을 담아낸 이 책을 읽다 보면 김경래 선생의 인생이 곧 대한민국의 현대사였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한국 현대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취재한 기자였고,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오해받고 있는 지도자와 편지를 교류한 친구였으며 한국의 번영에 초석이 된 기독교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장로였다.

한편 김경래 장로는 한미우호협회 창설, <미래한국> 창간, 탈북난민보호운동 1100만 서명운동 등을 함께 추진하며 미래한국 故 김상철 회장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그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상철 장로와 같은 사람이 세 사람, 네 사람만 있어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공고해질 것”이라며 애석해하기도 했다.

해학과 눈물이 모두 담겨 있는 책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는 김경래 선생 한 사람의 회고록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신문처럼 생긴 이 책 안에 김경래라는 인물과 대한민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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