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혁과 교회 개혁
사회 개혁과 교회 개혁
  • 미래한국
  • 승인 2013.05.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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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각의 세상보기


사회문화란 그 사회 구성원인 인간들이 출생해 성장하고 살아가는 포괄적 생활환경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그 구성원들은 그에 대한 구체적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그 안에 젖어 살아가는 지역적 시대적 가치이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음식이나 기타 생필품에 대한 선호도에 있어서 각자 취향이 다른 것처럼 국가나 민족에 따라 소속 집단의 역사적 삶의 경험에서 차이가 나며 각 나라와 공동체마다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중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이 모아지고 있는 무속과 종교문화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무속종교적 흔적은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어릴 때 농촌지역에서 산길을 따라 이웃 마을로 가는 길 정상 부근에서는 돌무더기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행인들이 누구나 잔돌 하나, 또는 동전 한 푼, 아니면 나뭇가지를 그 위에 던지고 지나가곤 했다.

이는 막연한 무속신앙에 뿌리를 둔 기복행위의 일환이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여러 사찰이나 신사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종이에 자기 소원을 써서 나뭇가지나 돌무더기 주변에 주렁주렁 달아놓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무속과 버금가는 행위가 특히 농촌지역에서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대의 잔치로 정월 대보름이나 특정 지역별 농한기의 축제 형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런 농악대를 동원한 풍물놀이 축제 관행이 1960년대 이후 도시 대학의 학내행사나 데모행사를 고무시키는 수단으로 동원되면서 최근에는 노동단체의 파업데모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위문화가 되고 있다. 풍물놀이문화가 저항문화로 접목되는 사회현상으로 변천, 진행돼온 한 사례다.

마찬가지로 국민생활문화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무의식적 무속적 기복사상이 전쟁과 생활고로 갈 바를 모르던 국민 속에서 종교와 접목되면서 한국은 전후 불교와 기독교 등 각종 종교의 급속한 양적 성장으로 이어져 왔다.

한국 국민의 상당수가 불교 또는 유사 무속신자이고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도의 숫자도 한국 국민의 20퍼센트를 웃돌 정도로 종교세가 급속히 신장해왔다.

남북분단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치경제안보 불안 상황의 지속은 종교가 확장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왔고 급속히 신장된 한국의 기독교 교세는 이제 세계 선교의 최대 강자로서 국제 선교의 선봉에서 일하고 있다.

국가 발전의 초석이었던 종교

국내적으로도 건전한 종교문화의 확장은 사회와 국가 발전, 그리고 국민들의 건전한 정신 함양의 튼튼한 초석이 돼 왔다.

오늘날 개신교는 국내 선교 약 130년이 되는데 개신교가 전파된 지 30~60년을 점하는 일제통치기에 이미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으며 국민계몽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소외를 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실천을 위해 헌신해온 것을 우리는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통해 종교는 가치 창조의 풍요로운 근원이며 개신교도인 막스 베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정신은 자본주의의 근간으로서 세계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한국종교에서 무속적 기복신앙의 뿌리는 여전히 깊고 일부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이 믿음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많은 성도들의 기복신앙사상을 악용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속임수로 교인들을 현혹시켜온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성도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헌금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목회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해져 권력과 돈, 교권의 상속과 세습, 성적 쾌락과 개인 명예 등을 좇아 세속화로 치닫고 있다. 종국에는 교만으로 높아져 교회를 시험에 빠지게 하고 타락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지고 있다.

오늘날 대형화돼 연간 수백억 원의 헌금재정수입을 거두고 있는 한국 교회들 중에 내부적으로 목회자들의 세습화, 교회재산의 횡령, 성범죄, 표절이나 위조로 학위를 취득하는 일 등 각종 스캔들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는 교회가 적지 않다.

또 일부 복음 전파의 열정만으로 냉철한 분별력과 이성을 잃은 채 북한공산정권과 직간접 관계의 끈을 맺고 있는 종교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교세를 업고 우리 정부와 정치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공공연하게 북한을 들락날락하며 북한의 체제홍보용인 아리랑축제 등 북한의 이념선전현장을 찾아 박수치고 김일성 영생탑(우상탑) 앞에서 절하며 막대한 교회헌금과 성물을 공산주의 기술인재 훈련기관(예컨대, 평양과학기술대학)에 실어다 나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대변하는 일부 교회들

또 어떤 종교계 인사는 최근 북한의 요구로 남쪽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게 된 사태에 대해 양비론을 들면서도 남쪽의 잘못이 더 크다는 등 북한 주민과 정권이 뒤엉켜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을 돕자면 결국 북한 정권을 도와야 한다며 이를 비판하는 남쪽의 개신교도들을 호되게 비난하면서 친북행위의 정당성 또는 ‘북한 정권과 주민 돕기의 불가분성’을 설파하기도 한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6·25 남침 배경과 그 이후 북한 정권의 목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채 ‘민족 우선’ 생각에 함몰돼 있는 많은 한국의 전후 젊은 세대들이 이념 논쟁의 고리타분한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하며 관념적으로 보수는 꼴통이고 진보는 참신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에 젖어 보수적이기보다는 진보적이라는 평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기독교의 발전 추세도 보수적인 신본주의 신앙관으로부터 진보적인 인본주의 신앙관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는 추세이다. 좌파기독교도들은 부유계층을 비판하며 부자보다 가난한 자들 편에 서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의 심각한 위기 문제는 겉으로는 좌파적 입장을 띄운 이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스스로는 부자 세리와 같이 살며 온갖 부귀를 누리는 삶에 빠져 오늘날 교계를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문화는 위험(risk)과 보수(reward), 그리고 기회에 대한 개인의 사상을 형성한다. 또한 문화는 어떤 사회나 국가의 발전 능력의 중요 결정인자이다. 그래서 잘못되고 있는 문화는 개혁의 칼로 수술해 바른 가치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 이 나라에서는 저들의 막강한 세력 때문에 종교계, 문화계, 노동계의 잘못된 행태를 언론이나 정부가 지적하거나 개혁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늦기 전에 한국적 문화가 잘못 뿌리내린 모든 사회 영역의 개혁이 필요한 때가 됐다. 부유해지면 교회는 부패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우리 교계가 회개운동으로 다시 회복돼 사회 전반의 문화개혁을 또다시 주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황의각 편집고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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