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거버넌스 시대를 기대하며
한미 거버넌스 시대를 기대하며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5.31 1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성준의 BOOk & World: 마이클 만델바움의 <검소한 슈퍼파워>를 읽고
 

음모론이 제기될 때마다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99년 1월 세르비아군(軍)이 코소보인을 살해한 ‘라차크 학살’이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이 모든 것이 미국 CIA의 공작이라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돌고 있었다. 그 학살은 당시 유고 대통령이었던 밀로세비치가 CIA에 매수돼 저지른 만행으로,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이 루머는 같은 슬라브계로서 세르비아에 동정적이었던 러시아인들의 정서와 맞물리며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특히 그해 3월 나토군의 세르비아 공습이 시작되자 ‘형제 세르비아를 사수하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데모대가 러시아 두마(의회) 앞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런 루머가 확산되고 있던 어느 날 당시 공공연하게 미국 CIA 관계자로 알려져 있던 한 미국인 외교관이 이탈리아 기자들과 함께 모스크바 외신기자 클럽으로 들어와 테이블에 앉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몰려간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코소보 사태와 관련한 루머에 대해 묻자, 이 CIA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적(敵)들의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저희들의 무능력을 한탄하면서… 하루속히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전지전능한 슈퍼맨’이 돼야 하는데…”

정상회담으로 ‘한미 글로벌 파트너십’ 시동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매우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미동맹’새 판을 짜라’는 커버스토리의 <미래한국> 445호(2013. 4. 22.~5. 5)를 통해, 우리는 ‘한미동맹은 한반도 주변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 세계 글로벌 차원에서의 협력관계를 모색할 때 진정한 21세기 한미동맹이 구출될 수 있다’며 ‘한미 글로벌 파트너십’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바로 이러한 한미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 방향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한미연합사 해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점을 거론하며 이번 방미 성과가 미약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미연합사 문제를 재론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파트너십이 합의돼야 했으며 한미연합사를 해체하자고 주장한 것이 우리(비록 노무현 정권 때이지만)였기 때문에 사전정지작업 없이 이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봐야 한다.

오히려 한국 군사력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이를 위한 협력 방안이 제시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리고 원자력 협정과 관련, 이 문제도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재검토가 긍정적으로 제기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미군사동맹 문제의 실질적 축은 ‘아시아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에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협력하느냐의 문제로 옮겨오고 있다. 한미연합사 문제도 원자력협정 문제도 MD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후 <미래한국> 445호의 기사들이 뒤늦게 서울 외교가에서 번역·회람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발행 전에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아니냐”는 질문과 함께…

그런데 담론의 중심축이 한미 글로벌 파트너십에서 ‘허리-엉덩이 논쟁’으로 전락돼 버렸다. 윤창중 사건과 관련, 온갖 루머와 음모설이 난무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은 미국 경찰의 조사가 끝나야 알겠지만 ‘술 먹고 성추행한 사건’이라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하루 빨리 이러한 비정상적 논의에서 벗어나 ‘한미동맹의 새 틀’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믿는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마이클 만델바움의 <검소한 슈퍼파워>(THe Frugal Superpower)를 다시 읽어 보았다. 이 책은 2010년에 발행된 책으로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사(社) 붕괴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 외교문제에 대해 서술한 저서이다.

저자는 최근 미국 경제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한 경제순환문제에 의한 것이 아니며 ‘복지의 과잉팽창’(entitlement overstrech) 등의 문제로 인해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었던 과거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위축이 미국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적어도 아직까지는 지금까지 미국이 담당하고 있는 국제 거버넌스(governance)의 역할을 대처할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슈퍼파워’지만 이제는 돈을 아낄 수밖에 없는 ‘검소한’ 슈퍼파워가 됐다는 이야기다.

진정한 우정은 상호보완적일 때

그럼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가지 대안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국제 거버넌스를 포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책임과 부담을 다른 국가들과 나누는 것이다.

만델바움 교수는 전쟁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이며 오히려 평화가 비정상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인류 역사가 보여준 경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는 대안일 수 없다. 아니 대안이 돼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 두 번째 대안을 채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 누구와 그런 책임과 부담을 나눠야 하는가?

진정한 친구관계는 상호보완적일 때 가능하다. 결코 일방적 시혜나 의존은 진정한 파트너십이 아니다. 우정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밥 사달라고 때만 쓰는 사람과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상대방이 갈비를 사면 간혹 설렁탕이라도 사야 하는 법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원조를 받는 제3세계국가가 아니다. 이제 세계 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거번넌스에 함께 참여하고 논의할 진정한 파트너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 파트너로서 지금까지 일본이 거론돼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 그런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