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운명이 주는 카타르시스
비극적 운명이 주는 카타르시스
  • 미래한국
  • 승인 2013.06.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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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오이디푸스왕>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인간의 운명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일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맞닥뜨릴 때 인간은 그저 그 운명의 굴레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오이디푸스왕>은 바로 극단적인 상황이 빚어내는 인간의 비극적 삶을 통해 인간의 운명과의 숙명적 대결에 관한 치명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한다.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의 끔찍한 금기를 깨는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떨쳐내기 위한 오이디푸스의 처절한 몸부림이 오히려 자신의 저주스런 운명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었음을 스스로 밝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참혹한 운명인가?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로 태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아들의 손에 죽을 운명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라이오스는 아들 오이디푸스를 산속 깊숙이 갖다버린다.

이어서 코린토스왕 폴뤼보스의 양치기가 버려진 오이디푸스를 얻어 왕에게 갖다 바침으로써 오이디푸스는 폴뤼보스를 친부로 믿고 자란다.

어느 날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신탁을 듣는다. 이에 그는 친부 살해와 근친상간의 비극적 운명을 벗어나고자 부모 곁을 떠나 먼 방랑길에 오른다.

그러나 테베에 이르러 길을 가던 중 테베의 왕 라이오스 일행과 마주치고, 서로 길을 비키지 않겠다고 싸움이 일어나 그 와중에 친부인 줄 모른 채 라이오스를 죽이게 된다.

불의의 사고로 왕을 잃은 테베 왕실에서는 테베 근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풀지 못하는 사람을 죽이던 스핑크스를 물리치는 사람에게 테베의 왕위를 넘겨주고 왕비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포고를 내린다.

때마침 스핑크스를 만나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낸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로 걷고 낮에는 다리가 두 개가 되고 밤에는 다리가 세 개로 변하는 생물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인간’이라고 맞춘다.

스핑크스는 정답을 듣자마자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고 만다. 스핑크스를 퇴치한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으로 추대되고 자신의 생모인 줄도 모른 채 왕비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인생 역정 속에 숨은 탄생 비밀을 배경으로 깔고 오이디푸스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저지른 죄과를 스스로 밝혀 나가도록 함으로써 비극적 운명을 처절하게 감당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인륜을 저버린 오이디푸스의 과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가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하게 되는 건 정말 피할 수 없는 필연이었을까?

어쩌면 신이 주관하는 연극 속에서 인간의 노고가 부질없다는 것을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신에게 불가피하게 ‘선택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파멸시키는 운명에 맞서 부친 살해자를 밝히려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이런 오이디푸스 내부의 의지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오이디푸스왕>이 ‘비극적 아니러니’의 최고봉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시민들에게 <오이디푸스왕>의 참혹한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극단적 비극의 정점을 간접 체험하게 하여, 인간 각자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비극적 삶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카타르시스와 삶의 밑바닥으로부터의 원기를 불어 넣어주려 한 것은 아닐까?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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