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온다, 공자(孔子)의 이름으로
중국이 온다, 공자(孔子)의 이름으로
  • 이원우
  • 승인 2013.06.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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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브랜드 이용해 ‘하나의 중국’ 전파 … 한국은 그 전초기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혹은 중국산(産)이라는 말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뇌리에 불신과 비하의 대명사다. 중국산 쌀, 중국산 휴대폰, 중국산 신발이라 하면 왠지 가격은 싸고 품질은 떨어지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산 사상(思想)인 유학(儒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산 언어, 즉 중국어의 인기 역시 식지 않았다. 물질적인 측면에선 어떨지 몰라도 정신적 측면에서라면 중국의 자원들은 유구한 전통의 상징으로서 그 가치를 존중받는다.

특별히 공자(孔子)라는 이름은 중국의 여러 형이상학적 자원 중에서도 ‘명품 브랜드’에 속한다. 그리고 기원전 500년 무렵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교 사상을 전파했던 공자의 분신(分身)은 21세기에 다시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운데의 나라’ 중국(中國)을 전파하고 있다. ‘공자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존재만으로 유교 그 자체를 상징하는 공자에 대한 평가는 중국 내에서도 굴곡이 심했다. 특히 중국이 공산주의에 물들기 시작한 1910년, 신(新)문화운동은 공자를 ‘도둑놈’이란 의미의 도구(盜丘)로 명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聖人 → 도둑놈 → 국가의 상징

1930년대 들어 국민당 정부가 공자의 지위를 회복시키는가 싶었지만 마오쩌둥(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자를 도둑놈 이하의 ‘천하의 몹쓸 놈’으로 강등시켜 버리고 말았다. 1966년부터 10년간 자행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공묘(孔廟)에 위치한 공자상을 파괴하며 봉건적 가치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한 번 변했다. 기점은 물론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이었다. 30년이 흐르고 난 뒤의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이념의 근본적 동력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모든 것이 개방된 지구촌에서 중국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경제의 이점을 포착해 평평한 세상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중국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풍요가 체제의 안정성과 교환된 셈이다. 국민들에게는 희망이지만 지배층에게는 불안의 복선이다.

중국이 다시금 공자에 눈을 돌린 것은 결국 내적으로 붕괴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스스로의 사상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정통 사회주의를 견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국가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가 사상에 승부를 걸게 된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21세기적 가치에 걸맞게 재활용된 셈이다.

공자는 ‘중국’ 그 자체

중국에게 공자는 단순히 내적 통합을 위한 매개로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들에게 중국을 알림에 있어서도 그들은 공자를 전면에 내세운다. 2004년 12월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공자 아카데미’는 그 대표적인 상징이다. 특히 한국은 ‘제1호 공자 아카데미’의 거점이기도 했다.

한 국가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는 전략은 흔히 구사되는 것이다. 스페인에는 세르반테스문화원이 있고 독일에는 괴테인스티튜트가 있다. 한국 역시 세종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공자 아카데미가 특별한 시선을 끄는 것은 거대한 스케일 때문이다. 한 해 동안 공자 아카데미에 지원되는 중국 정부의 예산은 물경 2천억 원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세종학당에 투입하는 예산의 약 100배에 해당한다.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공자아카데미는 창립 10년도 되지 않은 2013년 현재 112개국에 무려 979개(초등·중학교에 설립된 공자학당 565개 포함)나 만들어졌다.

2만 명의 교사와 65만 명의 원생들이 공자를 매개로 한 중국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교육부 직속 사업기관인 중국국가한판(中國國家漢辦)의 마젠페이(馬箭飛) 부주임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까지 공자 아카데미를 1,500개까지 늘릴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공자 아카데미가 이와 같이 압도적인 속력으로 전파될 수 있는 것이 비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의 수요 역시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다만 그 수요를 확장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을 따름이다. 중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중국어를 세계 2대 언어로 만드는 데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겉보기엔 ‘외국어 학원’ … 속마음은?

한국에서 운영 중인 공자 아카데미의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외견상으로는 중국어학원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新HSK 준비, 중국어교사 양성, 통번역사 양성, 세계중국어말하기대회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비영리 교육기관이라는 점, 강사들의 공신력이 보증된다는 점 등은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장학금을 지원받아 어학연수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공자 아카데미 운영상의 중요한 특징은 양국 공동책임제다. 즉, 두 나라의 대표가 공동으로 자금을 관리하고 투자 비율도 서로 1:1로 나누는 방식으로 신용관계를 구축한다. 이에 대해 마젠페이는 “현지 수요에 맞게 상대 입장을 고려하면서 공동 번영이라는 목표를 내세웠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현지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어 교육에 비하면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전파하는 교육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일례로 서울 공자 아카데미는 ‘중국문화 힐링강좌’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문학·예술·민간풍속 등 다방면의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재 공자 아카데미는 한국외대, 경희대, 인천대, 충남대, 강원대 등 전국 각지의 대학교에도 진출해 있다.

결국 중국에게 공자라는 브랜드는 자국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낙후된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 그 나라의 영향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중국은 잘 이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공자를 전하고 싶은 외국’이다. 공자라는 물심양면의 카드를 가지고 중국은 한국에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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