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까지만 살려고 했던 남자, 미래 한국을 말하다
마흔까지만 살려고 했던 남자, 미래 한국을 말하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3.06.12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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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김문수 경기도지사
 

‘마흔까지만 살겠다’고 생각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20년을 더 살았다.
“철이 너무 늦게 들었죠.”

민주화의 사선을 넘나들었던 김문수. 그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한다. 격동의 70년대와 80년대, 노동현장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던 김문수는 이제 없다. 대신 ‘희망의 미래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도지사 김문수가 있다.

그는 어떤 ‘미래 한국’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지난 5월 20일 <미래한국>이 김문수 지사를 공관에서 만났다.

- 최근 경기도의 공무원 현대사교육 교재로 말이 많습니다. 왜 지금 공무원의 현대사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까?

국가의 정체성에 여전히 우리는 합의가 안 돼 있지요. 아마도 건국일이 합의가 안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이고, 2차 대전 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모르고 어떻게 애국심이 생겨 나라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무원은 그러한 자랑스러운 현대사를 알아야 청렴과 애국심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하는 곳이 없으니 경기도라도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현대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질문드립니다만, 최근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폄하한 ‘100년전쟁’ 동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대한민국 성공의 두 가지 키워드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가 아니고서는 자원도 없고 자본도 없었던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공할 수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이 이승만 대통령이고, 그 정신을 살려 부국강병의 기틀을 다진 분이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공과는 있지만 공이 과를 넉넉히 덮고도 남는 분들이죠.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나

- 그렇다면 100년전쟁 동영상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비하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치욕으로 만들려는 그 사람들의 의도는 명확하지 않겠습니까.

이 분들의 업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자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죠. 그런 세력들과는 끝까지 싸워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김문수 지사의 대한민국 수호론은 젊은 시절 그가 걸어온 길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킨 것일까. 김 지사의 노동운동에 대한 생각은 여전한지 궁금했다.

- 지사님은 노동운동으로 청년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무엇이 생각을 바꾸게 한 겁니까.

70~80년대 제가 노동운동을 할 때에는 근로자들에게는 기본적 생존권이 보장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죠.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자본주의는 우리의 눈에 모순적이었죠.

하지만 결국 역사는 시장경제가 옳다는 것을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증명했죠. 저는 투쟁적 삶을 살면서 마흔 까지만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년을 더 살게 되었죠. 철이 늦게 들면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 말씀하신 노동운동, 정확히 말하자면 노조는 지금 대한민국 미래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노동운동도 변화했어야죠. 일부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철밥통을 유지하기 위한 노조, 직업 채용에 뇌물을 받는 노조 간부, 대를 이어 입사하는 노동귀족까지 있어요. 타락한 것이죠. 저희가 노동운동을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노사환경은 경쟁국들에 비해 불안정합니다. 문제가 없는데도 때가 되면 춘투하고 하투를 합니다. 쟁의 목적도 정치적일 때가 많지요. 이런 상황에선 누가 큰 투자를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우리보다 평균 소득이 몇 배나 높은 미국에 가서 공장 지어 생산하는 게 더 이익이고 더 마음 편한 일이라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우리나라 산업, 특히 제조업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운동, 정말 힘든 노동자들부터 먼저 챙기는 노동운동이 돼야 조합원과 국민들의 지지 받을 수 있지요.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형편이 나은 정규직의 양보로부터 풀어야 합니다.

김 지사의 생각은 명확했다. 그가 시대정신을 새롭게 발견했을 때 노동운동가 김문수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를 보였다.

당연히 옛 동지들의 비난과 원망이 있었지만 김문수는 단호했고 그의 진정성은 주변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그는 경제민주화에 반대해 왔다.

- 얼마 전 한국경제 위기론에 불을 지핀 매킨지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도정 일선에서 볼 때 과연 우리 경제가 그만큼 심각한지요.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을 몇 가지 꼽는다면?

심각한 위기입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해온 수출은 부진하고 침체된 내수는 반등의 기미가 없어요. 기업의 투자의욕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여러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엔저 공습에 따른 수출기업의 경쟁력 저하, 그리고 규제개혁 지연 등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장과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적 부담이 증대되는 반면 경제의 활력은 저하되고 있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경제 살리려면 규제부터 없애야

-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는 잘못된 정책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4·1 부동산 조치는 타이밍이 조금 늦기는 했으나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수준의 대책을 뛰어 넘어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고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보다 큰 틀의 과감한 성장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경제민주화는 헌법에도 나와 있고 필요하다는 생각이지만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을 옥죄는 듯한 인상이 강합니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규제를 만들고 강화하면서 왜 투자 안 하느냐고 윽박지르는 것 옳지 않지요. 일부 기업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기업인 전체를 범죄자 취급해선 안 됩니다.

- 과감한 성장전략의 필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지사께서 생각하시는 정책이 있다면?

규제를 개혁해야 합니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 부문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획기적 규제개혁, 그야말로 빅뱅이 필요한 것이죠.

서비스 빅뱅은 ‘투자-고용-소득-소비-시장확대-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가능하게 해줄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시장에 분명하고 일관된 신호를 보내줘야 합니다. 대통령은 기업투자를 독려하는데 정부 부처와 정치권에서는 대기업 옥죄는 식이면 안 되는 거죠.

덧붙여 말하자면 일본 따라잡기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이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까지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일본보다 과학기술, 수출경쟁력 등이 더 약한 우리가 일본화의 길을 간다면 과연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인 것이죠.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위기의식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특단의 경제 살리기 대책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한미동맹 격상 큰 수확”

김문수 지사에게는 일관성이 있다. 그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장 분명하게 냈다. 그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지금은 경제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김 지사는 국제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통령께서 한미관계를 포괄적 동맹으로 격상시킨 것은 큰 수확입니다. 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낸 것도 성과로 평가됩니다.

윤창중 사건으로 인해 아쉽게도 가려진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미국 측이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한국이 준비가 돼 있다”며 입장 변화가 없었던 점,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관련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요.

 

- 일본과의 관계 문제도 험난해 보입니다. 일본은 영원한 적인지, 최근 경색국면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역사를 공부한 관점에서 말씀드린다면 남북분단의 1차적 책임은 일본에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우리에게 이념의 편가름을 가져왔죠.

그런 점에서 일본과 우리의 선린적 관계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아베노믹스의 진짜 문제는 경제와 국수적 민족주의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지지 비율이 한 자리수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자민당 정권은 경제회복 정책에 정치군사적 숙원 사항을 끼워 팔려고 합니다.

여기에 중국 견제라는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는 미국의 묵인이 더해져 우리와의 관계가 더욱 불편해지고 있는 것이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치군사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또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본 자신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깨달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 그렇다면 결국 한미일 집단 안보체제는 불가능하다고 보시는 것인지요.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3각동맹이 중국 견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세계 전략적 관점에서 생각하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지요.

이 문제 해결의 핵심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일 역사문제, 영토문제의 해결 없이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깨닫게 해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지지 혹은 동의 없이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이나 군사대국화 추진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자위적 핵무장에 대한 관점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 중요하다”는 우회적인 메시지를 던졌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현 시점에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 핵우산의 실질화를 보장받고, 한미동맹과 중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새누리당, 어서 제 역할 해야”

- 끝으로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경기지사 이후의 거취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합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웃음) 아직 도지사 기간이 1년이나 남았어요. 지금으로서는 도정에 전념할 뿐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진정한 분권과 자치의 모델을 수립하는 일을 해보고 싶군요.

김문수 지사는 인터뷰가 끝나는 말미에 새누리당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당원으로서 당부의 말을 꺼냈다.

새누리당은 그간의 무기력을 털어내고 집권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때입니다. 지금처럼 대통령 입만 쳐다 보고 청와대 눈치만 보는 식이면 당도 정부도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청와대도 당을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주도해 온 세력이라는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모두 깨어나 뚜렷한 목적과 역사적 책무를 다짐해야 할 때입니다.

인터뷰 /김범수 발행인, 황성준 편집위원, 한정석 편집위원


● 김문수 도지사 약력
- 1951년 8월 경북 영천 출생
- 1970년 3월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
- 1976년 6월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 1985년 2월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1986년 5월 인천 5·3직선제 개헌투쟁으로 구속
(2년 6개월 복역)
- 1990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민중당 전국구 후보)
- 1996년 4월 신한국당 대표위원 특별보좌역
- 1996년 5월 제15대 국회의원(부천 소사구)
-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 2006년 7월 민선 4기 경기도지사
- 2010년 7월 민선 5기 경기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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