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명에서 살기를 원하나
어떤 문명에서 살기를 원하나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6.1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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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을 읽고
 

1999년 7월 ‘우랄 무기 엑스포’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로부터 남동쪽으로 1,700㎞ 떨어진 인구 40만의 군수산업 도시 니즈니타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행사에 러시아 무기 수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25개국 대사관 무관 및 방위산업체 관계자 그리고 관련 기자들이 초청됐다. 니즈니타길은 6·25 당시 우리를 괴롭힌 소련제 탱크 T-34를 생산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니즈니타길 금속 시험 연구소’라는 위장 명칭으로, 그때까지 존재 자체가 극비였던 무기시험장이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행사인 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곳에는 ‘스타라텔’이란 명칭의 야포 및 로켓 사격장이 있었는데 그 길이만 40km가 넘었다.

갑자기 중국기자가 된 사연

이 행사 참여자는 예카테린부르크시(市)에 모여 그곳에 준비된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돼 있었다. 버스에 올라 지정좌석을 찾으니 북한 노동신문 기자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약간 당황해 주변을 살펴보니 내 앞뒤로 북한과 중국 기자 및 무관들이 앉아 있었다. 당황한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 버스에 타고 있던 북한 무관들도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리호란 명찰에 대좌 계급장을 달고 있었던 북한 측 대표는 러시아 국영무기수출 회사 ‘로스보오루제니예’ 관계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버스는 그냥 출발했으며 그 후 2박3일 동안 북한 및 중국 관계자들과 일행으로 함께 지내야만 했다. 한국 무관들도 참석했는데 이들은 미국 및 일본 참여자들과 같은 버스에 탑승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조선일보란 명칭 덕분이었다. 아예 모르면 괜찮은데 조금 아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을 북한으로 알고 있는 러시아 관계자가 조선일보 기자라고 했더니 북한 기자로 오인했던 것이다.

좌우간 덕분에 영어가 아닌 중국어 통역이 달린 버스를 타고 다녔다. 러시아어가 가능한 관계로 큰 불편은 없었지만 졸지에 서방기자에서 중국기자로 전락(?)된 것이었다.

왜 북한도 아니고 중국기자냐고? 탑승한 버스 유리창에 ‘키타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키타이’는 러시아어로 중국이다.

키타이는 원래 거란(契丹)족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나라 시절 거란과 중국을 처음 접한 러시아인들이 거란과 중국을 구별하지 못한 채 모두 ‘키타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냥 중국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 무관들이 타고 있던 버스 창문에는 ‘자파드’(서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중국은 민족이 아니라 문명 단위 국가다

14년이나 지난 일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마틴 자크(Martin Jacques)가 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자크는 영국의 이른바 ‘진보 지식인’이다.

자크는 이른바 ‘서구식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지적하면서, 서구식과 다른 근대화의 길이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또 몇 가지 전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및 유럽 문명은 쇠퇴하고 중국 중심의 문명이 펼쳐질 것으로 예언(?)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성장의 지속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졸저 <유령과의 역사투쟁>에 수록된 ‘이상한 전제, 중국의 성장이 계속된다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무튼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라는 표현은 매우 도발적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상대적으로 미국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자크는 중국적 근대성(Chinese modernity)에는 8가지 주요 특징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특징에 의해 세계질서가 재구성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특징이며 또 어떤 질서가 이뤄질 것인가?

첫째, 중국은 민족국가(nation-state)가 아니라 ‘문명단위로 구성된 국가’(civilization-state)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명의 요체는 유교(儒敎)라는 것이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이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독교 대 이슬람의 문명 충돌이 갈등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전망했던 헌팅턴과 달리, 중국의 유교문명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혹은 끔찍한) 사실은 헌팅턴도 자크도 한국을 중국 유교 문명권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헌팅턴에 따르면 일본은 중국 유교 문명권의 일원이 아니다.

둘째, 조공 시스템(tributary system)이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자크는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서구의 민족국가 시스템은 중국 및 동아시아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중국이 민족국가가 아닌 ‘문명’인 이상, ‘중국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상호 믿음’(a mutual belief in the superiority of Chinese culture)을 바탕으로 구축된 ‘조공 시스템’이 동아시아에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란 것이다.

자크는 베스트팔렌 체제 혹은 민족국가 시스템 자체가 서구적 개념이며, 동양적 개념은 중국 문명을 중심으로 한 조공 시스템이며, 따라서 다시 이러한 체제로 복귀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중국은 단일 인종(a single race)으로서의 한족(漢族)의 인종적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인종적 질서가 구축된다는 것이다. 자크도 한족이란 개념이 인위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한족이란 개념은 19세기말 서구의 민족(nation) 개념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반청(反淸) 반서구(反西歐)적 종족(ethnic) 개념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족을 단순한 문화적 역사적 개념이 아니라 생물학적(biological)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인종적 위계질서를 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넷째, 중국은 인구와 영토 규모에서 대륙 사이즈(continental-sized) 국가이다. 즉 하나의 나라(country)이면서 동시에 대륙(continent)인 것이다.

따라서 일반 소규모의 민족국가들과 달리 여러 경제 시스템이나 역사단계가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크는 이런 의미에서의 중국에 대응되는 개념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유럽연합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의 정체(polity)는 매우 특수하다. 중국은 국가가 다른 경쟁하는 기관 혹은 이익 그룹들과 권력을 나눈 적이 없다. 중국은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국가 관료집단에 의해 통치돼 왔으며 중국에서 국가의 합법성은 선거에 의해 규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자크는 중국질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른 체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여섯째, 중국의 근대화는 중국의 거대한 영토 때문에 한 번에 일시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으며 따라서 거대한 농촌 부문이 지속되는 조건 속에서 진행돼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순식간에 근대화와 도시화 그리고 탈농업화를 이룬 한국, 대만 등과 같은 다른 ‘아시아의 호랑이’들의 근대화 과정과 다르다는 것이다.

자크는 이 점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덕분에 과거와 역사에 대한 중요성과 의미를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후진성과 낙후성에서 ‘인간미’와 ‘역사’를 찾으려고 하는 러시아 나로드니키 운동을 비롯한 제반 ‘봉건적 사회주의’를 떠올리기도 했다.

일곱째, 중국 공산당의 역할이 중요하며 또 그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크는 중국 공산당을 소련이나 서구에서의 공산당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류이며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국가당’이라는 것이다. 또 중국 공산당과 유교의 이데올로기적 친화성을 강조하며 중국 공산당의 통치이념은 유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양자의 특징을 모두 갖춘 국가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전체 국력에서는 최고 선진국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나 개개인의 물질 수준 혹은 광범위한 농촌지대나 내륙지대의 모습은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도 자크에게는 장점이다. 선진국의 입장도 개발도상국의 입장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서구 좌익 지식인의 방황

모처럼 좌익 지식인의 저서를 읽어 보았다. 입장에 관계없이 풍부한 읽을거리와 자료를 제공해준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첫 인상은 현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대안적 이념적 방향을 제시 못하는 서구 좌익 지식인의 지적 방황이 반영된 책이란 느낌이었다. 자크는 중국과 중국 문명을 변호, 아니 예찬한다.

콩깍지가 낀 연인의 눈처럼, 모든 것이 미화된다. 한족 인종주의도, 조공 시스템도, 심지어 비(非)민주적 전(前)근대성 조차도… 과연 자크는 본인이 살고 있는 영국 체제를 버리고 이런 중국 문명에서 살고 싶을까?

문제는 멀리 떨어진 영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문명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우리 것’이란 이름하에 ‘중국 유교문명’을 선호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중국문명에 대한 조공국가였던 조선이 아니라 서구 해양문명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건국된 국가이다.

우리는 이미 ‘다른 문명’에서 살고 있으며 또 즐기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확고한 정체성이 우리 자신과 중국인들에게 올바로 각인될 때 중국과의 좋은 이웃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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