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에 비쳐진 우리의 자화상
원전비리에 비쳐진 우리의 자화상
  • 미래한국
  • 승인 2013.06.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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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각의 세상보기
황의각 편집고문·고려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 참 대단하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선조들을 가진 우리나라는 한글을 제정한 세종대왕이나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을 격퇴시킨 이순신 장군 같은 수많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세워져 지켜온 나라 아닌가?

더욱이 우리 백성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일컬을 만큼 예절을 귀중히 여겨온 민족이다. 중국산동성 태산(泰山) 정상에 세워진 공자 석상마저 흠모의 정을 담아 바라보며 기리고 있는 국민이 아닌가?

우리는 국민 모두의 특징인 은근과 끈기로 역경의 모진 세월을 인고하며 세계 10위권대 경제 대국을 일으켜 세워온 국민이기도 하다.

한번 일을 손에 잡으면 ‘빨리빨리 생활문화’로 물불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품을 지닌 백성으로서 국내외 건설공사를 포함한 많은 경제 사업들을 맡아 열심히 일해 왔다.

잘 살아보기 위해 빈주먹으로 일궈 놓은 국내 주요 기간 사업과 사회간접자본시설들을 돌아보라. 그 이뤄 온 일들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하지 아니한가?

1950, 60년대의 벌거숭이 산야가 이제는 푸른 숲으로 변모돼 금수강산의 풍모를 갖춰 어디를 가나 좋기만 하다. 참 대단한 민족의 역사와 노력의 결과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묻어난다.

경제와 소득의 증가에 비례해 국민의 평균 신장(身長)도 늘어났고, 가난하던 시절의 땟자국을 벗은 노장년층의 얼굴에서도 윤기가 흐르며, 젊은이들 외모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어 보이는가? 어느 모로 봐도 우리나라 대단한 나라이고 우리 국민 대단한 국민이다.

그런데 이처럼 잘 달리는 한국호가 어두운 밤을 통과하며 고장 경보가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 백성이 음흉한 야신(夜神)의 유혹에 푹 빠져들고 있다.

밤의 어두움 속에서 행하는 달콤하고 짜릿한 탈선의 마력, 마몬이 마련해주는 은밀한 무대에서의 댄스, 독주(毒酒)와 성(性)의 불 같은 유혹이 어찌 어둠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최근 보도된 마몬 유혹에 얽힌 두 사례만 생각해보자.

기업해서 번 돈을 정치판에서나 분노에 찬 노동자의 쇠망치 위협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비자금을 조성해 가능하면 안전한 해외조세피난처로 옮겨놓으려는 것이 본성의 욕구발로 아니던가? 그래도 이 정도는 국민의 생사가 달린 원전사업에서 사욕을 채우려고 사고치는 자들보다는 덜 악하지 아니한가?

국민 생명으로 장난친 사람들

세계 6위의 원자력 발전시설이며, 전국 방방곡곡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며, 높은 산속에 길을 뚫어놓은 많은 공사와 그리고 4대강 준설공사 등 빨리빨리 일궈 놓은 그 놀라운 성과의 뒷거래에 얽힌 뇌물수수와 부실공사 현장이 CCTV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찍혀 잘 나가던 우리의 체면이 곤두박질이구나.

사리사욕 챙기려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쟁취하기 위해 더 대담해지고 있는 사람들의 심보 속에 거짓까지 똬리치고 있다면 앞으로 더 걱정이구나. 가질 만큼 가진 자들이 더 챙기기 위해 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담합하고 있다면 이 어찌 걱정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퇴직 후 관례에 따라 산하 이권기관에 재취업해 이권 행각을 계속하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것 같다. 전직 현직 공직자들과 이해 관련 기업들의 먹이사슬연결고리들은 거짓과 술수가 가득하고 정직은 설 곳이 없어 숨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을 나타내 보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서민들은 공룡(恐龍) 같은 특권세력 앞에 한없이 자꾸 좌절하며 왜소해지는 것 같다. 어찌하여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는가?

이번 여름 더위와 씨름하며 짜증 좀 내야 하겠구나. 짝퉁 부품 납품을 눈감아주고 큰 사고 저질러 국민을 원자피폭으로 몰살시킬 뻔한 원자력부품평가기관원들이 범한 잘못을 한탄하면서 그동안 대단하게 여겨오던 우리의 자부심을 다시 살펴봐야 하겠구나. 부품시험기관이 부품성능서류를 조작해 원자로에 사용되는 불량 부품을 파악하기조차 어렵게 했다니 이 얼마나 큰 일 날 뻔한 것인가?

이번에 서류 위조가 적발된 부품은 제어케이블인데 이것은 원전사고가 났을 때 안전계통에 동작신호 전달에 필수적인 장비라고 한다.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격리시키는 밸브 등이 이 케이블을 통해 작동한다고 한다.

이런 제어케이블은 원자로의 냉각재 상실과 같은 사고가 발생해 원전이 고온고압이 된 상황에서도 정상작동돼야 한다. 이런 중요한 부품의 작동시험 결과를 위조했다니 큰일 낼 것 아닌가?

그래도 정직한 그루터기와 씨알이 남아 있어 제때에 원자력안전신문고에 비리를 제보해 큰일 나기 바로 직전에 시험환경과 시험결과의 조작 사실이 밝혀졌다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이를 계기로 업체와 검증기관 간의 유착고리를 차단하고 부품 납품과 납품을 받는 원청업체간의 실거래를 토대로 한 검증기관의 검증 정직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사건사고를 계기로 부품교체와 점검을 위해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호기 등 100만kW급 원전설비의 점검을 위한 가동 중단은 성수기 전력공급차질을 포함해 천문학적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그릇된 관행의 고리를 끊자

모든 일에 적당히 흉내만 갖춰 얼렁뚱땅 마쳐놓고 돈 받아 챙긴 후 나 몰라라하며 오리발 내미는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특히 유관기관에 정부 부처의 은퇴공직자들을 재취업시키는 일을 차단해야 한다.

쌓인 경륜을 은퇴 후에 재활용한다는 명분으로 유관기관이나 법무 관련 기관에 재취업해온 관행이 사회 전반의 부정과 불의를 연결시키는 고리의 역할로 이어져 온 것이 현실이다. 이제부터는 떠나면 깨끗이 떠나는 관행이 존중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진짜 신선하고 깨끗한 나라요, 우리 국민이 바르고 진실한 백성이 된다.

비단 원전의 시험비리나 조세피난문제만 아니다. 우리나라에 부정, 거짓, 속임, 시험비리는 수없이 많다. 특히 적당히 부정직하게 취득하는 학위비리, 이력비리, 각종 짝퉁비리, 상속비리, 탈세비리, 넘치는 거짓말 등 예의에 어긋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것들이 정화돼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 우리 국민이 진실한 국민이라고 자랑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인도의 시성 타골이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비칠 때에는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칭찬했던 한국이 참 등불을 다시 켜서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 정직과 공의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이 꿈이 선열들이 지켜보는 이 호국의 달 유월의 이글거리는 태양열 아래서 우리가 소박하게 기다리는 바람(風, 所願)이다.

황의각 편집고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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