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민은 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누구나 고민은 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 이원우
  • 승인 2013.06.20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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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근미 신작 장편소설 <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 출간
이근미 著, 자음과 모음 刊, 2013

편집위원 이근미는 매섭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거침없이 들이받는다. 그 힘으로 4년간 본지 <미래한국> 편집회의에 참석해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했고 ‘이근미가 뛴다’, ‘문화산책’ 등의 본지 코너를 이끌어왔다.

인터뷰어 이근미는 세심하다. 상대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 그녀는 월간조선 객원기자 경력을 포함해 22년간 인터뷰 기사를 쓴 프로 인터뷰어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속내까지 이끌어내 재배치한 그녀의 인터뷰 기사는 종종 인터뷰이가 스스로 쓴 글보다 본인의 심중을 더 민감하게 잡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작가 이근미가 쓴 문장의 매력을 가장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녀의 소설 속에서다. 1993년 문화일보 중편 ‘낯설게 하기’를 통해 등단한 그녀는 2006년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17세’를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아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가 만날 때

어른의 깊이 있는 시선과 소녀의 단단한 자의식을 예리하게 교차시킨 ‘17세’는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추천도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하이패밀리 추천도서로도 선정됐다. 영화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명왕성’이라는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신예 신수원 감독이 각색 작업을 하고 있다.

후속 장편소설 ‘어쩌면 후르츠캔디’가 발간된 것이 2008년. 작년에는 자기계발서 ‘프리랜서처럼 일하라’와 어린이용 전기 ‘역사를 바꾼 대통령 박정희’ 등을 작업한 그녀는 2013년, 다시 본업인 소설로 돌아왔다. ‘17세’에서 나이는 더 어려졌다. 신작소설의 제목은 <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 주인공은 열다섯 살 문영이다.

소설은 이 어른스러운 중2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문영의 아빠는 5년 전 ‘잠언’을 선물하고 뉴욕으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 울산에서 학교를 다니던 문영은 우연히 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아빠가 얼마 전 옛 애인 지서영을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돌봐주는 작은아빠에게는 여름방학 캠프를 떠난다고 말한 뒤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서영을 찾는다.

‘지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서른아홉의 지서영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골드미스 DJ다. 여름방학의 한가운데에서 기묘한 인연으로 만난 두 여자는 서영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삶의 문제들을 고백하고 해결해 나간다.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부각되는 것은 두 여자의 상반된 캐릭터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서영은 철이 없다. 살림도 할 줄 모른다. 오히려 서영의 모습을 포착하는 문영의 시선이 더 깊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이 푹 파인 후드 민소매 티셔츠에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키니진. 큰 숄더백에다 킬힐, 머리에 알이 굵은 선글라스를 얹었다. 웨이브 머리가 어깨 뒤에서 찰랑거리는 그녀. 서른아홉의 연륜은 어디에도 없다.”

문영이 사춘기(思春期)라면 서영은 사추기(思秋期)다. 작품은 서영의 모습을 통해서 여자에게 서른아홉이라는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어떤 쓸쓸한 의미를 갖는지를 얘기한다. 청소년문학 시리즈로 분류된 이 작품이 성인 독자들에게도 무난히 읽히는 이유다.

마음의 열병을 앓는 점에서 똑 같은 두 여자. 열다섯에게는 열다섯의 애환이, 서른아홉에게는 서른아홉의 애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두 여자는 서로의 내비게이션이 된다.

결국은 우리 주변의 집 이야기

이근미 작가

좋은 작품은 작가 주변의 에피소드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근미 작가는 본지 미래한국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모티프가 작가 본인의 경험에서 기인했음을 밝혔다.

“실제로 제 친구 딸이 서울에 온 적이 있어요. 며칠 같이 지내게 됐는데 어쩌면 그렇게 고민이 많은지.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주변의 열다섯들이 다 그렇더라고요. 쪼끄만 것들이 사는 게 괴롭다고 난리들인 거예요(웃음).

반면 더 재밌는 건 주변의 수많은 노처녀들은 다 철이 없더라는 거죠. 별별 이상한 가전제품과 주방용품들을 다 구비해 놨으면서도 막상 살림을 할 줄 몰라서 밥은 안 해 먹더라고요. 그런 철없는 노처녀와 세상 고민 다 짊어진 열다섯이 만나면 어떨까. 그런 상상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됐어요.”

작가가 근거리의 10대들을 포섭한 덕에 독자는 이 작품으로 현 시대의 열다섯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유행에 조응하는 방식, 또래집단과의 긴장 관계, 부모와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사춘기의 자의식은 보기보다 빠르게 세상을 포착해서 보기보다 깊게 여물어간다. 작품 후반에서 문영은 말한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넘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프다고 다 우는 건 아니라는 사실과 인생에는 무궁무진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집’에서 시작돼 ‘집’으로 귀결된다. 결국 작가는 각자 나름대로의 애환을 짊어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을 통해 그 상처를 회복하고 충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소설에서 ‘잠언’은 아빠와 문영, 서영을 모두 연결 짓는 주요 소재로 등장하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독교적 가치관의 일부를 표상한다.

가정의 붕괴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하는 이 시대, 이근미 작가는 <본작 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차기작에서 이어갈 심산인 듯 다음 작품의 테마가 ‘이혼’이라고 귀띔해 줬다. 물론 그녀는 예의 매섭고 세심하고 소녀 같은 문장으로 다시 한 번 가정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증명해 낼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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