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甲츠비
위대한 甲츠비
  • 이원우
  • 승인 2013.06.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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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을 甲이라고 부른다
 

지난 호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본 세 가지 버전을 대조했다. 미처 기사에 담아내지 못한 얘기들을 녹음해 팟캐스트에 올렸더니 이틀 만에 2천명이 받아갔다.

이 소설은 아직도 미국에서 매년 30만권씩 팔린다고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정말 불쌍한 작가다. 자신의 세 번째 작품이 세기를 가로지르는 명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1940년 사망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이 ‘낙원의 이쪽’인 줄 알고 사망했다.

사람들은 왜 개츠비를 좋아할까. 1920년대의 미국을 포착한 피츠제럴드의 문장이 유려함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내러티브의 측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소설은 막장드라마 그 자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암흑의 세계와 결탁해 돈을 번 남자 개츠비. 그가 사랑한 여자 데이지를 향한 어이없을 정도의 집착. 불륜. 파국. 죽음. 끝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미 부정된 아메리칸 드림을 추종하는 한 남자의 고독한 일대기와 순애보’ 운운하는 분석을 별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그냥 여자 보는 눈이 지독하게 없어서 고생고생을 하다 사망한 한 남자의 실패담일 뿐이다.

피츠제럴드 본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남의 지하에는 비슷한 장르의 남자들이 득시글댄다. 원제의 ‘great’은 ‘위대한’으로 번역될 필요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살짝 비꼬는 의미를 담아서 ‘대단한 개츠비’로 번역한다면 그 버전을 소장하고 싶다.

파티, 또 파티… 나도 한 번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결코 타의 귀감이 된다고는 볼 수 없는 게 개츠비라는 인물의 실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대단한 개츠비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왜일까.

이번에 개봉한 바즈 루어만의 영화를 보면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파티다. 밤새도록 아무런 걱정도 없이 화려한 모습으로 춤추는 낯선 사람들. 그리고 귀를 때리는 음악.

평론가들은 파티 장면이 ‘이미지의 과잉’이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그 과잉된 에너지야말로 파티의 본질이다. 유명 인사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고 개츠비는 파티장의 한가운데에서 그 장면을 유유히 내려다본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건 사람들은 개츠비의 미소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세계를 동경한다. 세상에 태어나 일생에 한 번쯤은 개츠비나 데이지와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다. 만만치가 않다. 영화는 관객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보다 별로 나아보일 게 없는데 성가시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이들에게 한국인들은 언젠가부터 갑(甲)이라는 별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갑과 을은 주인과 종의 관계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갑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는 사례들은 최근 너무 많아져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가장 상징적인 용례(用例)는 인천광역시에서 나왔다. 인천시는 모든 계약서에서 갑을(甲乙)이라는 표현을 없애기로 한 도시이기도 하다. 말을 없애면 그것이 지칭하는 관계도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얘기가 정작 시장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는지 인천시장 송영길은 지난 5월 그 싫다던 종편 JTBC에 출연해서 “서울시와 인천시는 전형적인 갑을관계”라며 성토를 시작했다. 일자리의 경제력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인천은 서울의 쓰레기를 무상으로 받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송 시장은 자신이 시정을 담당하고 있는 도시에 대해 “이렇게 맘씨 좋은 쓰레기 식민지가 어디 있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듣고도 참고 있다는 면에서 인천 시민들은 참 맘씨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甲이라는 글자 뒤에 숨어 있는 욕망의 뒷면

송영길 시장이 진정 포부 있는 정치인이라면 인천시장에서 멈추지 않고 서울시장, 내친 김에 대통령까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갑을관계’라는 말을 사용한 그의 용법은 정확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甲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인구 300만 명에 육박하는 인천광역시가 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甲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서울과 부산을 제외한 모든 도시가 인천보다 인구가 적다.

그 수많은 乙들에겐 인천시장의 불만이 그저 배부른 소리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인천시장이라면 저런 얘기 안 하고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몇 명쯤 될까?

시야를 전 세계로 돌려보자. 대한민국은 甲이다. 단순한 계산법이지만 한국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어렵게 버티고 있는 사람도 전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 15% 안에 든다.

적어도 우리는 밤 12시에 무장(武裝)을 하지 않고 귀가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펌프가 없어서 물을 길어오기 위해 왕복 4시간을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여성의 눈에 한국의 갑을논쟁이 어떻게 보일까?

우리보다 못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위를 하자고 제안할 생각은 아니다. 위를 보는 건 좋다. 다만 그 과정은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수렴돼야 한다. 되고 싶은 게 있으면 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지 않은가?

스스로 멘토라면서 그럴듯한 감언이설을 속삭이는 사람보다야 자기 주변에 있는 甲들에게 배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그 수많은 甲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개츠비는 작품 속에서 여러 통의 전화를 받는다. 시카고와 디트로이트 등지에서 걸려온 이 긴급한 전화들은 아마 밀주사업과 관련된 사업상의 연락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본지에서도 소개한 미국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를 보면 미국의 밀주사업이 얼마나 살벌한 비즈니스였는지를 알 수 있다.

피츠제럴드의 표현에 의하면 ‘일생에 네다섯 번 밖에 볼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개츠비도 누군가에게는 살벌한 썩소를 날리며 갑질을 했을 것이다. 여전히 그런 개츠비가 그저 멋지게만 보이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당신이 바로 위대한 甲츠비다. 타인에 대한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도 우리는 아직 더 위대해질 수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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