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으로 돌아온 反시장주의
전력대란으로 돌아온 反시장주의
  • 이원우
  • 승인 2013.07.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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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승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2013년 대한민국의 비극은 전력난이 ‘확정’돼 있다는 것이다. 전속력으로 발전 시스템을 신설해도 내년 여름 이후에야 그 효용을 수확할 수 있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원인은 무엇이며 대안은 있을까?

<미래한국>은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를 만나 현재의 전력난에 대한 총론과 대안을 들어보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로 전공을 바꾼 그는 기술적인 부분과 경제적인 부분을 모두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 전력 문제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가격 부분인데요. 가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합니다만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가요.

전력산업이 생긴 시기는 20세기 초입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전력산업이란 게 있을 수 없었죠. 한국에서도 전기의 시작은 1890년대였지만 산업이라 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어요.

전력산업은 발전기만 달랑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송·배전망이 필요합니다. 누가 하더라도 초기에는 막대한 자본금을 투자하고 사업을 시작해야 하죠. 그 송·배전망을 처음 만든 사람이 독점을 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그렇게 하는 편이 나았던 시절도 있습니다.

사실 전력사업이라는 게 꼭 어떤 한 기업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한 사람만 해온 것이고, 별다른 경쟁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독점을 인정해 준 것이니까요.

그 대신 정부의 요구대로 산업이 굴러가게 됩니다. 요금을 얼마로 매기느냐, 어떤 조건으로 공급할 것이냐 등의 문제가 전부 정부 감독 하에 이뤄져요. 이런 걸 규제독점체제라 합니다. 가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죠.

- 이 체제가 계속 유지돼야 할 이유가 있나요? 현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20세기 말이 되면서 IT혁명, 그러니까 정보화가 시작됐습니다. 여러 명의 발전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와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겁니다.

고속도로에 비유를 한다면, 지금까지는 고속도로가 도로공사 자산이었으니 그 도로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운송업까지 도로공사가 독점적으로 했던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고속도로는 외부인이라도 톨게이트 비용만 내면 진입할 수 있잖아요?

이런 조치를 개방접속(open access)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기술력이면 전기도 개방접속체계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송·배전망을 여러 사업자가 함께 쓰는 형태가 되죠.

다수 발전사업자의 경쟁 필요

-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면 수요공급 측면에서 유동적인 대응이 가능하겠군요. 하지만 컨트롤도 그만큼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요?

전력의 경우 수요공급이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가야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건 맞습니다. 한전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 비해 컨트롤이 어려운 부분이 생길 수 있죠. 하지만 그런 문제를 IT가 보완하는 겁니다.

이미 20세기 말부터 노르웨이, 영국, 칠레 등의 국가가 전력 송·배전망을 고속도로처럼 쓰면서 여러 발전사업자가 소비자와 계약을 맺어서 거래하고 있어요.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 세계의 추세가 그리로 가고 있습니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 정전사태가 보여주듯 발전의 도상에서 문제도 일어나곤 합니다만 그런 문제들을 보완해 가면서 시장 쪽으로 가는 것이죠.

- 중간 중간 여론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한국의 경우 이 절차가 늦어진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도 이미 10년 전부터 이 절차에 착수를 했지만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뒤에 배전 분할 단계에서 중단됐습니다. 한국전력에 소속돼 있던 발전 부문이 6개 자회사로 분리돼 나왔습니다만 여러 판매사업자가 공존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어요. 여전히 한국전력만이 단독 판매사업자입니다. 그만큼 노무현 정부가 시장 친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 그래도 발전사업 민영화는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 여론도 많은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한국 전력산업은 전혀 민영화되지 않았어요. 발전 자회사도 전부 한국전력 계열이고 한전은 국가의 지배를 받으니까요. 최초의 계획이야 발전회사 민영화로 맞춰져 있었습니다만 노무현 정부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한 번 기세가 꺾인 뒤로는 노조가 반대하고 있고요.

민영화되고 나면 공기업에서 채용한 인원이 줄어들 테니 그들이 좋아할 리가 없죠. 필사적으로 전(全) 방위적인 로비까지 진행되면서 국회는 한전의 로비에 포획 당했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여기에는 여야도 없어요.

- 원래 계획대로 민영화가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판매사업자가 민간에 의해 운영된다면 소비자와 ‘가격 협상’이 가능해지죠. 소비자의 생활 패턴이나 특성에 맞춰서 가격을 협상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개별 전선에 꽂혀 있는 냉장고를 제외하고는 전력회사 마음대로 전기를 끊어가도 관계없다든지 하는 식이죠.

이는 최근 도입된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와도 연결됩니다. 현재의 전기요금이 얼마인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예를 들어 세탁기는 요금이 얼마 이하일 때에만 돌아가게 하는 식으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윈-윈 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죠. 이 체계가 완성되면 애초에 전력난이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아직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천연가스로 만든 전기가 가스보다 더 싼 구조

 

- 현재 한국전력의 모습을 보면 전력은 전력대로 부족하고 적자는 적자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데요. 원인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할까요.

어떤 생산이든 비용이 드는데 그걸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문제죠. 한국의 전력 시스템이 채택하고 있는 총괄원가보상제는 일단 전력생산에 드는 원가를 산정한 뒤 거기에 어느 정도의 이익을 붙여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대로만 잘 했다면 한전이 적자 날 일은 없죠. 그런데도 적자가 났다면 원가를 더 썼다는 건데, 최근 몇 년간 전기요금이 원가 밑으로 산정돼 있었던 게 원인입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명목으로 총괄원가보상제의 원칙을 포기한 지가 벌써 4~5년쯤 됐습니다. 한전 채무 누적의 원인은 거기에 있어요.

한국의 경우 참여정부 이후로 MB정부 마지막까지 전기요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현상이 벌어졌느냐면 천연가스를 태워서 만든 전기로 돌아가는 에어컨을 가동하는 게 가스 에어컨보다 싸게 됐어요. 그만큼 전기요금이 낮은 겁니다. 당연히 수요가 더 몰릴 수밖에요.

부산항에 디젤엔진으로 돌아가는 대형 크레인이 있었는데, 거기도 전부 전기 모터로 바꿨습니다. 살림살이가 늘어나서 상승한 수요에 가격이 낮아서 몰린 수요까지 얹어졌어요.

최초의 수요 예측을 잘못한 게 전력난의 원인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 부분이 크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격정책을 보완해서 가스나 디젤을 쓰다가 전기로 넘어온 수요만 원위치시키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보입니다.

- 산업용 전기가 너무 싼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산업용은 원래 가정용보다 원가가 저렴합니다. 220V로 감압하는 절차가 한 번 더 들어가는 가정용과 달리 산업용은 고압선에서 바로 받아다 쓰니까 변압기와 변전소가 필요 없죠.

어떻든 둘 다 원가 이하로 요금을 받고 있는 건 마찬가집니다. 가정용은 원가 이상인데 산업용만 원가 이하라는 것도 옛날 얘기가 됐어요. 산업용 전기가 싸 보인다고 해서 전기료를 인상한다면 중소기업들의 피해와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 전력생산을 추가로 할 여력은 없는 겁니까?

일단 현재의 수요를 충당하는 것은 무리고요. 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발전소는 가스발전기, 석탄발전기, 원자력발전기가 주력입니다. 가스발전기를 건설하는 데 2~3년, 석탄발전기는 5년, 원자력핵발전소를 짓는 데는 약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전기가 모자랄 수밖에 없죠.

한국인들이 이 여파를 처음으로 감지한 것이 2년 전 9·15 단전이에요. 그때 전기라는 게 모자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안 거죠. 내년 여름이 되면 그동안 짓고 있던 발전소가 완공 및 가동될 수 있지만 그 이전에는 전기가 나올 데가 없어요.

유럽 같은 경우는 이웃나라 발전회사에서 사 올 수 있지만 우린 북한에서 살 수도 없고 섬과 같은 구조죠. 꼬박 3년은 현재 발전기로 버텨야 하는 상황입니다.

- 단전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 겁니까?

해법은 사실 어렵지 않죠. 애들한테 물어도 답이 나옵니다. 수요를 줄이면 돼요.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 상태로 쓰고 싶은 전기를 도저히 다 쓸 수가 없어서 끊었던 게 9·15단전인데 후폭풍이 엄청났습니다.

양어장에서 떼죽음이 발생하고, 손해배상 절차가 계속 해서 이어졌어요. 아마 올해도 8월쯤 순환단전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디부터 어떻게 끊을지는 복잡한 문제죠. 주거지역엔 병원이 있고 아파트단지엔 어린이 시설이 많고 뭐 이런 식입니다.

- 대규모로 전기를 쓰는 곳에서 자가발전을 하는 방안은 불가능할까요?

자가 발전기를 돌려서 스스로 쓸 전기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면 좋죠. 곳곳에 미니 발전소가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에도 한국전력과 얽힌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전기에는 재고(在庫)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흘려보내야 해요. 만약 쓰다 남은 전기를 한전에 보내주면 한전으로서는 작은 발전소 하나를 얻는 효과가 생기므로 좋은 것입니다만, 한전은 여기에 대해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요.

근본적으로 한전은 자가발전에 대해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도적으로는 자가발전을 못하게 돼 있어요. 이 규정을 고치는 건 아마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 우리가 원자력에 과도하게 의존한 게 전력난의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원전이 멈춘 게 올해 전력난을 더 심각하게 만든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른 문제예요. 운영의 후진성에서 비롯된 것이죠. 우리나라 원전이 멈춘 건 부품이 망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격 부품을 썼다는 투서가 나옴으로써 문제가 불거진 것인데, 그 결격도 품질이 나쁘다는 결격이 아니라 절차 생략의 결격이죠.

만에 하나 있을 수도 있는 사고에 대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인데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기술자들로서는 필요가 없는 걸로 보였던 거예요. 지진 해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한 부품에 대해서도 많은 기술자들은 왜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가면서 대비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 후진적 안전 불감증이 현재의 사태를 야기한 것입니다. 참 복잡한 문제가 중첩돼 있어요. 하지만 이 논의가 원자력 무용론으로 연결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고 다만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부분입니다.

현재 전력위기, 요금인상 외에 방법 없어

- 어떻든 올여름의 위기는 기정사실입니다. 지금부터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요?

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것까지는 말씀드린 바대로입니다. 공급은 내년 여름 새로운 발전기가 투입될 때까지 늘지 않아요. 그렇다면 수요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뭘까요. 역시 요금입니다. 요금을 2배라도 올리지 않고서야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노무현 정부가 전력체계 구조개편을 중단시키지 않았더라면 이미 2009년부터 소매요금은 국가가 통제 못하는 상태로 진입을 해 있었을 겁니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면서 가격이 조정됐으면 순환 단전을 할 필요도 없었겠죠. 결국 정부에서 시장 쪽으로 오는 전기의 흐름을 차단한 것이 오늘날 전력 대란의 기초를 구축한 셈입니다.

이제 와서 정부쪽에선 산업체 가동을 중지하거나 조정하는 것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오래 가지 못해요. 진작부터 요금을 올려서 전기를 적게 쓸 인센티브를 주고, 지금까지처럼 전기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설명했다면 국민들도 절전에 신경을 썼겠죠.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전기요금을 올려서 수요를 감소시키는 방안에 돌입해야 합니다.

인터뷰 / 강시영 기자 ksiyeong@futurekorea.co.kr
정리·사진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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