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노무현
굿바이, 노무현
  • 이원우
  • 승인 2013.07.0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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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와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생 시절 나의 단골 칼럼 소재였다. 경제학, 경영학, 자유주의를 열심히 공부하고 나면 여지없이 현실 속 노무현 대통령이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이, 교육 정책이, 대기업 정책이, 각종 특별법이 왜 틀렸는지를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면서 대학생 이원우의 통장 잔고가 풍족해졌던 때가 있었다.

한 번은 노무현 대통령을 독수리 5형제의 ‘혁’에 비유한 적이 있다. 독수리 5형제의 2호다. 1호인 ‘건’과는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다. 히어로치고는 성격도 비뚤어져서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가출을 감행한다.

이른바 야당(野黨) 기질이라 할 수 있는 이 성격을 노무현 대통령이 가진 것 같다는 얘기, 기질은 2호인데 직업은 1호인 대통령이니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썼다.

‘인간 노무현’에 끌렸던 이유

세상이 시끌시끌해지는 데서 약간의 흥분과 희열을 느끼게 마련인 20대에게 노무현의 1호/2호 갈등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노무현을 좋아한 이유도 이 불균형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에 오른 1인자가 험난한 운명을 돌파하는 대역전극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실제로도 노무현에 대한 공격은 그야말로 ‘정치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겼으며 강력했다. 그래서였을까. 정책적인 부분에선 누구 못지않게 그를 싫어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맥주 한 잔 마시며 얘기해 보고 싶은 역대 대통령’ 1위는 언제나 노무현이었다. 그는 언제나 스토리(story)를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신실한 크리스천 이승만은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실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박정희 역시 재미없을 것 같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왠지 2차를 유흥업소로 가자고 할 것 같다.(이는 단지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 성격과의 합치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오직 한 사람 노무현이라면 초라한 술상 하나 두고 “그때 왜 그러셨어요?”라고 은근슬쩍 들이대며 비밀 얘기를 듣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재임 시절 바닥 신세를 면치 못했던 노무현의 호감도는 퇴임 이후 급상승했다. 사람들은 그를 ‘노간지’라 칭송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자살 이후 어떤 이들에게 그는 신(神)이 됐다.

자살이라는 마무리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처음으로 커다란 흠결을 남긴 사건이었다. 더구나 그의 죽음은 스스로 파놓은 극단적 대결 구도의 최종적 출구, 그러니까 도피처로서의 성격이 강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러 사람들은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며 그의 죽음의 의미를 왜곡했다. 자살은 자기 자신을 살해하는 살인의 일종이며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그의 죽음을 서거(逝去)라는 높임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잘못된 것임을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높이고 싶은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인간적 입지 아닌가?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 ”노무현을 죽인 것은 우리 모두다”라는 식의 허위의식 또한 여전히 정답처럼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다. 틀렸다. 노무현을 죽인 건 노무현이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치워야 할 문제들을 산더미처럼 남겨둔 채 스스로를 살해했다.

이번에 공개된 김정일과 노무현의 대화록은 자살로 커다란 손상을 입은 그의 인간적 매력을 마지막 한 가닥까지 태워버리고 말았다.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글쎄. 두 남녀가 어떻게 해야 아이가 생기는지를 들어서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을까.

‘노간지’에서 ‘NLL셔틀’로

이 대화록의 본질은 ‘포기’라는 단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어차피 사망한 두 사람의 대화록 아닌가? 진짜 중요한 것은 ‘뉘앙스’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류 최악의 무뢰배 김정일에게 이끌려가며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걸복걸하는 그의 모습. 이 장면을 간접체험 하는 것만으로도 노무현의 매력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까지 칭송하는 것처럼 노무현이 그렇게 멋진 인물이었다면, 대한민국 사람들 앞에서는 맨날 무시당하고 비난 받는 ‘바보 노무현’이더라도 김정일 앞에서는 뭐 한 가지라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대화록 전문에 드러난 것은 상전을 앞에 두고 너무 긴장해 썰렁한 농담이나 주워섬기는 하인의 모습 아닌가?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던 기세는 ‘남쪽 정부’ 전용이었던 건가?

노무현의 이런 모습을 두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미화하는 것은 마치 일진에게 빵을 배달해 주는 빵셔틀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NLL을 김정일에게 배달하는 게 통일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2호 ‘혁’도 아니고 야당 기질도 아니고 그저 악당과 결탁한 조수일 따름이다.

2004 탄핵 시도를 떠올리며

서해 평화협력지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김정일은 노무현을 걱정한다. 이 문제에 대한 남측의 반응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는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없습니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바보 되는 겁니다.” 그렇다. 한때는 노무현을 욕하면 인터넷에서 바보 되는 시절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그를 탄핵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어르신들께서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도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앞섰다.

이제 와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미 대통령도 아니고 세상에도 없는 그를 탄핵할 방법은 없다. 끝내 목도하지 않아도 됐을 이 사달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마음속에서 그의 자리를 밀어낼 뿐이다. 굿바이, 노무현. 더 이상 이제는 상상 속에서조차 그와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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