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Psycho)가 사보타지(SABOTAGE)를 한다면
사이코(Psycho)가 사보타지(SABOTAGE)를 한다면
  • 미래한국
  • 승인 2013.07.1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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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1899년생, 어쨌든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태어났으니 꽤 옛날 사람이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 거장이다. 신세대에겐 익숙한 이름은 아니겠지만 영화에 관심이 좀 있다고 하면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스릴러 장르를 개척하고 확립했다.

영국 출생으로 할리우드로 진출하기 전부터 이미 꽤 많은 작품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해 스릴러 장르의 1인자로 군림하게 됐다.

히치콕의 작품을 특징짓는 코드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불안’이다. 일견 안온해 보이는 일상과 그 이면에 도사린 비정상성을 대비시키는 게 그의 작품세계의 일관된 구도다.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사이코(Psycho)’(1962)는 그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안소니 퍼킨스(Anthony Perkins)라는 매우 깔끔한 용모의 젊은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 초반부 이 젊은이는 친절한 모텔 주인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또라이’다. 게다가 그냥 정신이상이 아니다. 살인마다. 멀쩡해 보일 뿐더러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기실은 광기를 감추고 있는 극히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히치콕이 그려내는 공포의 공식이다.

그런데 인물이 아니라 서사구조를 통해 ‘위험’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영국 시절인 1936년 작 ‘사보타지 (Sabotage)’가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1857~ 1924)의 ‘비밀 첩보원(The Secret Agent)’(1907)이 원작이다. 영화는 런던 시내가 갑작스레 정전이 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발전소에서 원인을 조사하니 장치 일부에 모래가 투입된 것이 발견된다. “사보타지다!” 대사가 이어진다. “극렬분자로군” “고의적인 거야” “누가 한 짓이지?” “배후세력은?”

런던 경시청은 시내에서 극장을 경영하는 ‘벌록’이라는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감시요원을 투입시킨다. 곧 배후가 모습을 드러낸다. ‘테러집단’이다. 이들은 벌록에게 더 큰 거사를 주문한다.

피카디리 광장 근처의 지하철역을 폭파하라는 것이다. 감시를 눈치 챈 범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어린 동생에게 필름으로 위장한 폭탄 운반을 맡긴다. 폭탄은 도중에 버스에서 폭발하고 만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극장까지 경영하고 있던 건실한 남편이 숨겨진 범인이었다. 그 남편 때문에 어린 동생까지 어이없는 죽음을 맞고 말았다. 겉으로 보이는 ‘정상’이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영화는 테러집단의 정체나 목적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아예 생략한다. 그래서 ‘숨은 위험’이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일상 이면에 잠복된 위험이 있으리라 항상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늘 그러면 피해망상증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뒤통수를 맞는 상황이 진짜로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럴 때면 우리는 흔히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만약 예측 못한 어떤 사보타지를 저지르는 자가 하필이면 사이코이기까지 하다면? 그런 경우에 어울리는 단어는 ‘엽기’다. 요즘 우리가 어떤 ‘전직’ 인물의 뒤늦게 드러난 언행을 보면서 느끼는 게 있다. 바로 “어처구니없는 엽기”다.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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