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자 보수주의와 대문자 보수주의
소문자 보수주의와 대문자 보수주의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7.11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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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레빈의 <자유와 폭정>
 

마을버스를 탔는데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영어 그림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림만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글씨도 읽을 줄 아는 것이었다.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아내가 “요즘 애들 다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영어 알파벳을 처음 배운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막상 외우려니 잘 안 외워졌다. 엇비슷한 것들이 헷갈리게 만들었다. 황당하게 생각된 것은 대문자와 소문자가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또 인쇄체 말고 필기체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다. 같은 문자가 4개씩 있다니?! 책상과 손, 심지어는 입 주변에까지 잉크를 묻혀가며 중학교 입학 기념 선물로 받은 만년필로 필기체 이어쓰기 숙제를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갑자기 영어 대문자, 소문자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보수주의가 뭐냐”는 질문 때문이다. 최근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수주의에 대해 문의해 오곤 한다. 이때 제일 먼저 꺼내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대문자 보수주의’냐 ‘소문자 보수주의’냐 하는 문제이다.

흔히 보수주의하면, ‘기존의 것을 지키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보통명사로서의 보수주의, 즉 소문자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분명 그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소문자 보수주의는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이란에서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면, 호메이니의 이슬람 신정체제(神政體制)를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교적 전통주의자’ 혹은 ‘현실 변화에 둔감하고 왠지 꽉 막힌 사람’을 보수주의자로 호칭할 때, 이는 ‘소문자 보수주의자’의 의미로서 사용된 것이다.

우리가 정치이념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보수주의는 ‘대문자 보수주의’(Conservatism)이다.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파악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그 명칭만으로 내용을 파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평화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평화’, 너무도 좋은 말이다. 그 누구도 평화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좋은 단어, 평화가 ‘대문자 평화주의’로 바뀔 때 그 이념이 함축하는 정치적 의미는 매우 다른 것이 된다. ‘평화주의’는 평화 우선이란 미명 하에 안보를 경시하는 정치사상이기 때문이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환경주의’일 경우에는 다른 문제가 된다. 인류는 자연의 하위 개념이며, 따라서 ‘가이아’(Gaia,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 혹은 여신으로 여기는 환경주의자들의 개념)를 위해 인류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이 특정 이념을 이름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대문자 ‘아름다운 가게’ 혹은 ‘가장 맛있는 집’이 진짜로 아름답거나 맛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럼 현대 정치 이념의 중심이 되고 있는 대문자 ‘보수주의’는 무엇인가?

보수주의 시민사회의 조건

 

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책 가운데 하나가 마크 레빈(Mark Levin)의 <자유와 폭정>(Liberty and Tyranny)이다. 마크 레빈은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라 광범위한 미국 대중을 상대로 현대 미국 보수주의가 무엇이며, 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소개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런 만큼 읽기 편하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소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 몇몇 현안은 다분히 미국적이며 우리의 현안과 맞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레빈은 보수주의를 꽃피우기 위한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4가지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째는 추상적 집단보다는 ‘구체적 개인’이 시민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개인(individual)은 ‘영혼과 양심을 가진 유일(唯一)한, 영적(靈的) 존재’(a unique, spiritual being with a soul and a conscience)이다. 이러한 개인이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가 보수주의 사회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유는 ‘도덕적 질서’(moral order)에 의해 제약된다. 이런 측면에서 도덕적 절대기준을 부인하는 도덕적 상대주의(relativism)를 거부한다.

둘째, 이 개인은 타인의 ‘빼앗을 수 없는 권리’(unalienable rights)와 ‘사회의 문화적 동질성’(society's cultural identity)을 존중해야 할 의무(duty)를 지닌다.

이 측면에서 ‘자유방탕주의’(libertinism)와 구별된다. 영어단어 리벌티니즘과 리베테리아리즘(libertarianism), 그리고 리버랄리즘(liberalism)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있어서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겠다.

셋째, 사유재산권(private property)과 자유(liberty)는 뗄 수 없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자유 공산주의’란 말은 형용 모순인 것이다. 그런데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면서, 이러한 침해를 통해 자유를 확대하자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을 ‘시민사회’라고, 심지어는 ‘시민사회’의 대표를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기본 입장이다.

넷째, ‘법치’(a rule of law)가 중요한 원칙이다. ‘법의 지배’를 ‘법에 의한 지배’(a rule by law)와 혼동하면 안 된다. 또 법이란 ‘자연권’(natural right)과 오랜 관습과 경험에 의해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관습법’(common law)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인이어야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분명 미국 보수주의는 기독교 문명을 바탕으로 성장 발전해 왔다. 그리고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과 같은 인간의 자연권은 창조주(the Creator)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 논증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 미국 보수주의의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반드시 기독교인일 필요는 없으나 절대적 진리와 도덕의 기준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영미식 현대 보수주의자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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