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음악은요? 힐링과 감동입니다”
“제 음악은요? 힐링과 감동입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7.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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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곡가 임준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작곡가 임준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가로 불렸던 ‘아! 동방의 아침나라’의 작곡자. 국립오페라단에서 한국의 오페라를 만들자는 야심찬 취지로 기획,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념으로 현지에서 공연됐던 오페라 ‘천생연분’, 2011년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 그리고 지난 5월에는 국립합창단이 예술의전당에서 아리랑을 칸타타로 재해석한 1시간 30분 분량의 공연 ‘송 오브 아리랑’의 주인공.

국악과 서양음악을 아우르는 새 장르 시도

한국과 미국의 대학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임준희 교수는 서양음악과 국악을 접목해 가곡부터 교향곡, 오페라까지 창작해내는, 음악계의 새 길을 만드는 작곡자다. 국악이나 우리 악기를 장식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서양음악과 국악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새로운 장르를 실험 중이다.

<미래한국>이 지난 5월 31일~6월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월드뮤직마켓 쇼케이스 ‘클래시컬: 넥스트’에 가야금, 바이올린,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공연으로 참가해 극찬을 받고 돌아온 임 교수를 만나 ‘음악의 길’을 들었다.

- 가야의 가실왕이 만들었다는 전통악기 가야금이 외국인에게 설득력이 있었나요?

저도 명주실이 오동나무를 쳐서 소리를 내는 그 악기가 과연 빈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까 궁금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조차도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서양인들은 가야금을 옛날의 고악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매력 있는 악기로 보더라고요. 서양음악의 최전선 학자들과 음반 관계자들이 하나의 음악장르로서 굉장히 미래 지향적인 악기이며 방향이라고 극찬했어요.

- 서양음악과는 많이 다를텐데 뭐가 그렇게 좋게 보였을까요.

우리는 잊고 있던 매력을 발견한 것 같아요. 바이올린은 한 음정에 가장 정확한 소리를 내는 데 반해, 가야금은 왼손으로 줄을 짚어 다양한 음의 변화를 주는 ‘농현’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선과 리듬, 한음 한음이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데, 그런 게 굉장히 매혹적이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전 세계에 이런 악기가 있을까 할 정도로 놀라워하더라고요.

음악의 본고장 빈에서 가야금으로 극찬

- 전통음악의 세계 진출 가능성도 보셨겠네요.

네. 맞아요. 정체된 클래식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이제껏 음악 중심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아니면 미국, 영국 정도였잖아요. 지금의 국제화 풍조에선 음악도 각국의 전통음악이 새로운 음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고 예전 가야금 산조를 그대로 내놓을 수는 없겠죠?

옛날 모습 그대로 가지고 가면 민속음악, 로컬음악에 그치기 쉽죠. 세계적 음악의 통용언어인 클래식과 우리 전통언어를 접목시켜야 세계의 청중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 외국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 반해 정작 국내에서 국악이 너무 소외되는 것 같습니다. TV 사극은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도요.

국악도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 침투해 있어요. 사극을 봐도 전통 멜로디가 곳곳에 숨어 있어요. 해금, 가야금 선율을 들을 수 있죠. 음악 인구에서 국악이 반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요새는 바이올린보다 가야금을 배우는 아이들도 많고요. 국악이 점점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서, 사극처럼 대중이 좋아하는 접점을 찾을 것이에요. 양악, 국악 이분법이 사라지는 거죠.

-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국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 매력을 이번에 빈에서 발견했어요. 사람들이 한복에 매료되는 것은 아무래도 색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악기도 굉장히 독특한 색깔이 있어요. 자연적인 색깔이죠. 한복처럼 곡선미가 있는 은은한 색감. 이런 게 우리 악기에도 있지 않나요.

- 국악과 양악의 조화를 꾀하는 시도도 있지만, 아직 학교 교육부터 공연 현장까지 철저히 분리돼 있는 것 같습니다.

네. 국악과 양악이 나눠져 있는 게 문제예요. 국악은 국립국악원에서 하고, 서양음악은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식이죠. 하지만 한국인이 반으로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서양교육 받고 자라면서 한식도 먹고 한복도 입는 게 우리의 모습이죠. 그러니 음악도 국악과 양악이 하나로 조화돼서 존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 국악과 양악의 조화를 주장하다 보면, 양쪽에서 모두 소외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본인들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으셨던 것 같지만, 지금은 다 좋아하세요. 국악 선생님들은 저를 통해 작품들이 다양하게 공연되고 해외로도 나갈 수 있으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지난 5월에 예술의전당에서 ‘아리랑 칸타타’ 공연할 때 안숙선 명창께서도 너무 좋아하셨어요. 진도아리랑을 합창과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니 좋다고 하세요.

- 국내 서양음악계에서도 국악에 관심이 있나요?

네. 이제 그분들도 외국에 나갈 때 한국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외국 전문가들이 왜 너희 나라 작품이 없냐고 하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오케스트라들이 한국적인 내용과 소재가 담긴 창작품들을 많이 찾아요.

귀국 이후 전통음악으로 전환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임준희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중인 1989년 귀국해 서양현대음악 작곡가로서 활동했다. 그러다 청중과의 소통에 한계를 느끼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1995년에 다시 유학을 떠나 1998년에 박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때 임 교수는 본인의 길을 독일이나 미국의 현대음악이 아니라 전통 음악에서 새 길을 찾게 된다. 그런데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접목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문화계에선 방송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퓨전이라는 형식 파괴를 시도하고 있으나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서양음악에서 국악으로 방향 전환을 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와서 다른 작곡가처럼 활동했어요. 그런데 곡을 열심히 썼는데 청중은 무슨 얘기 하는지 모르는 느낌이고 나 자신도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미국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사물놀이와 전자음악을 접목한 ‘두드리’라는 곡을 선보였는데 새로운 음악세계라고 호평을 받았어요. 그래서 ‘해답이 여기에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그래서 전 데뷔작을 1996년 ‘두드리’라고 합니다.

- 국악과 양악을 접목하는 게 기계적으로 섞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죠.

네 물론이에요. 소재만 차용해서 비슷하게 하는 것은 실패합니다. 청중이 다 알죠. 가야금을 모르면서 이게 가야금이겠거니 하고 쓰는 거죠.

판소리면 판소리, 가야금이면 가야금, 깊숙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퓨전이라 해서 국악과 양악의 결합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죠. 혼합이 아니라 각각에서 좋은 점을 같이 어울리게 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겁니다.

빈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공연하는 장면

- 교수님은 어떤 식으로 하셨나요?

저도 처음에는 좀 겉핥기였어요. 하지만 그때도 곡을 하나 쓸 때마다 연주자 만나서 소리를 들어서 특징을 연구하고 음역을 점검하는 과정을 꼭 거쳤어요. 곡 쓸 때마다 악기 연주를 들어보고 ‘이렇게 소리가 나는구나’ 느끼고, ‘이 점은 이렇게 풀면 좋겠다’ 같은 연구를 꾸준히 했죠.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전통예술원에서 가야금과 해금을 배우고 있어요.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그 친구들 연주하고 곡 쓰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몸으로 체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

- 가야금이 서양음계를 다 표현할 수 있나요? 그리고 양쪽 악기가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서양음체계와 다르긴 하지만 국악, 양악을 같은 음으로 조율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전 두 가지를 섞지는 않아요. 국악 악기는 독주를 해야 맛이 나서 솔로 처리를 많이 하죠.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서양음악의 첼로 부분을 아쟁에 주고 오보에 부분을 피리에 주는 식으로 하면 굉장히 독특한 매력을 줍니다.

악보는, 요즘 국악 연주자는 정간보와 오선보 모두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국악 작곡은 똑같이 곡을 쓰는데 농현 등의 기보법이 있어서 표시를 다 해줍니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연주자와 의사소통을 많이 합니다. 물론 안숙선 선생님 같은 대가 분들은 오선보를 모르시니 녹음한 것을 듣고 선생님이 다 외우시죠. 아니면 본인이 보기 쉽게 악보를 따로 만드시기도 하세요.

침체된 음악계의 돌파구

현재 국악과 클래식 모두 시장 상황이 좋지는 않다. 경기가 안 좋은 이유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청중이 국악과 클래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해체하는 오케스트라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 현재 국악과 클래식의 음악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양음악이 처음 들어올 때 연주자들 위주였어요. 국악이든 양악이든 창작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50~60년대 이후였던 것 같아요. 게다가 초창기에 주로 독일 유학 다녀온 분들이 많았는데 음악 스타일이 청중과 소통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1970~80년대 창작이 활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이 돈을 내고 볼 생각을 안했던 거죠.

-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청중과의 소통을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였던 것 같아요. 어법과 기법을 너무 어렵게만 만들어서 감동과 공감이 어려웠어요. ‘청중 수준이 낮아서 내 곡을 이해하지 못 한다’는 생각은 안 된다는 거죠. 음악은 소통이니까요.

- 정통에 어긋난다는 비난은 없나요?

어떤 분들은 ‘이단’이라고 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작곡가회에서 연락오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계속 안 되니까요. 공연을 전제로 한 사람들이 청중을 잃어버리면 설 자리가 없는 것이죠. 작곡가들이 부단히 공부하면서 예술성을 높이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청중과의 소통이 음악의 원칙

임준희 교수의 작곡 원칙은 청중이다. 들었을 때 ‘매우 좋다’는 반응이 안 나올 것 같으면 아예 안 쓴다고. 그리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고단함과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하는 게 작곡가로서의 바람이다.

- 교수님이 생각하는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2011년 발표한 ‘어부사시사’는 특히 연구를 많이 해서 썼던 작품입니다. 서양음악 어법과 국악 어법, 그리고 우리나라 시조문학의 아름다운 작품을 찾아내서 대규모 작품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어요. 이 작품은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대상 음악교과서에 실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곡 ‘그토록 그리움이’가 애착이 가요. 거의 매일 방송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공연이 가장 많이 되고 있죠. 성악가와 아마추어들이 많이 찾는 레퍼토리가 됐으니까요.

그리고 음악적으로 새롭다는 의미에선 ‘댄싱산조’, 정신적으로 저에게 끊임없이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품은 ‘혼불’이에요. 최명희 선생님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혼불을 쓰면 장인정신 같은 부분을 가다듬게 돼요.

-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작품을 맡으면 그것만 생각하는 편이에요. 주말에 곡만 쓰니 집에서도 불만이 쌓이죠. 곡을 쓰려면 하루에 10시간 이상 매달려야 합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작업만 하게 되죠.

혹시 직업병이 없냐고 물었더니 낙천적이어서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수영과 독서로 작품의 피로와 긴장감을 날려버려서 괜찮다는데, 그게 1년 동안 딱 한 번이다. 지난해 오페라 끝나고 수영하고, 최근 빈 공연 갔다 온 뒤 한 번이다. 이쯤 되면 쉬는 것을 잊어버리는 게 임 교수의 직업병인 것 같다.

- 향후 계획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올 11월에 예정된 ‘바르도’라는 현대 오페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서울시오페라단에서 위촉 받았는데 내용은 삼풍백화점 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내년 6월에는 오페라 ‘천생연분’을 중국에서 다시 올리는데 2막을 3막으로 늘이기로 했어요. 이 작품은 한국적 작품의 원형을 만들어서 해외에 진출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장기적인 목표는 한 2~3년 간 집중해서 대규모의 걸작 오페라를 만들고 싶어요. 중국 작곡가 탄둔이 만든 오페라 ‘진시황’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거든요.

플라시도 도밍고가 노래하고, 오프닝에 100대의 북이 나오는데 정말 굉장했습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나비부인’처럼 한국의 혼을 담아내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 계획이에요.

- 가족들은 많이 응원해주는 편인가요?

화학이 전공인 남편(신구 세종대 총장) 조언이 많이 도움 돼요. 전 감성적이고 남편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서로 조화가 돼요. 일반인 관점에서 굉장히 정확하게 모니터해주거든요. 아이들은 반반 닮아서 더 정확하게 모니터 해주고요. 현대곡 할 때보다 지금은 많이 응원해줘요.

인터뷰/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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