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NLL 포기 왜?
盧의 NLL 포기 왜?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7.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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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에 기록된 내용이다.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은 그것이 “NLL 포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이 노무현 정권의 NLL 포기를 공식 확인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국정원 대변인은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것.

“회의록 내용 어디에도 일부의 주장과 같은 ‘NLL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은 남북 정상이 수차례에 걸쳐 백령도 북방을 연한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 수역에서 쌍방 군대를 철수시키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경찰이 관리하는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여당과 야당은 발칵 뒤집어졌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을 찾던 NLL 문제가 국정원의 ‘쐐기박기’로 막다른 골목을 만났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NLL 포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던 당의 입장이 전면 반박당한 것이다. 특히 문재인 의원은 야권 전체를 대표해서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려 했던 발언이 있다면 정계 은퇴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도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그 다음날 국회 발언을 통해 국정원의 그러한 발표를 ‘이적행위’라고 몰아붙였다. 아울러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 의원 주장의 명분은 ‘대통령 지시에 항거’다.

국정원·국방부, 노 전 대통령 NLL포기 발언 공식 확인

현재 전개되고 있는 NLL 문제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에게 NLL 공동어로구역을 제안하면서 과연 문재인 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NLL기점의 등거리,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에 합의했냐는 거다. 문재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10·4 선언에서 양정상이 NLL등거리, 등면적 어로구역에 합의했다”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직후 11월 평양에서 열린 장관급 실무회담에서 엉뚱한 주장을 폈다. 바로 문제가 됐던 NLL 남쪽 12해리 해역을 모두 공동어로구역으로 지정하는 안을 집요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TV조선에 출연했던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있었던 회담 내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일철 무력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NLL과 관련해 김정일에게 이러이러한 말을 했었다라는 인용은 없었어요.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NLL은 문제가 있는 선이고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김장수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반대로 나가고 해서 회담을 진척시키지 못하느냐고 공박을 하긴 했죠.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남측 기자들에게 자신(인민무력부장)이 직접 NLL의 부당성을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니 (남측) 기자를 모아달라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죠.”

김장수 전 장관의 이야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설’에 결정적인 증언으로 작용한다. 북한의 주장은 사실상 NLL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그러자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장수 국방장관이 회담을 어렵게 한다”라고 주변에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수 장관의 증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세력들이 북한의 NLL 무시 서해평화수역을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으로 하여금 평양 실무회담에서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현재 김장수 안보실장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NLL 포기를 확인하는 내용은 휴전선의 논리였다.

이날 국정원 대변인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과 같이 현 NLL과 소위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 쌍방 군대를 철수할 경우 △ 우리 해군만 일방적으로 덕적도 북방 수역으로 철수함에 따라 NLL은 물론 이 사이 수역의 영해 및 우리의 단독어장을 포기하게 되며 △ 서해 5도서의 국민과 해병 장병의 생명을 방기하게 되고 △ 수역내 적 잠수함 활동에 대한 탐지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은 물론 수도권 서해 연안이 적 해상 침투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국정원 대변인은 이에 대해 “육지에서 현재의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대를 수원-양양선 이남으로 철수시키고, 휴전선과 수원-양양선 사이를 ‘남북공동관리지역’으로 만든다면 휴전선 포기가 분명한 것과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비굴하게 북한에 NLL 문제를 양보하려 들었는지 말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북한을 주적에서 삭제하는 데도 반대를 했고 NLL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분계선 설정에도 역시 반대했다. 이러한 점으로 보자면 노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NLL을 포기하려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이러한 NLL에 대한 입장은 2006년 들어서면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노 전 대통령은 NLL 문제에 대해 군이 “북한과 논의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자 2006년 6월 16일 충남 계룡대에서 NLL 문제와 한미 관계 등을 주제로 군 수뇌부와 육해공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동북아 균형자’아젠다에서 나온 NLL 포기 발언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평화는 신뢰가 중요하고 전략적 유연성이 있어야 하며 이런 차원에서 NLL을 (북한과) 협상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며 “국방장관은 남북회담에서 (NLL 협상이) 안 됩니다 라고 했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금기는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비역 장성은 “당시 군 통수권자가 군이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얘기를 해 많은 장성이 놀랐었다”고 언론에 익명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변화는 이 시기가 북한의 핵실험을 4개월 정도 앞두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북핵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점으로부터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라는 아젠다 속에서 북한과 모종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추론은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후 노무현 정권이 NLL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2007년 8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막는 안보적 개념에서 설정된 것”이라고 했다가 김장수 전 국방장관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김장수 장관은 이재정 장관에게 “통일부가 왜 자꾸 NLL 문제를 건드리느냐. 앞으로 NLL 발언을 삼가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책상을 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군과 정가에 화제가 됐었다.

결국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한 지 1주일쯤 뒤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정당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 및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 선(NLL)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 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인데, 이것(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고도 했다. NLL이 정식 영토선이 아니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언급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직전에 NLL에 대한 수호적 개념을 버리고 북한과 협상이 가능한 아젠다로 바꿔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NLL 포기 문제는 향후 정국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노 정권의 NLL 포기를 없었던 일로 한다면 민주당과 야권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노무현 NLL 포기 문제’를 허위 정치선동으로 규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퇴진 또는 사과를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정원의 ‘항명’을 이유로 국정원장 경질과 국정조사시 국정원의 선거개입 문제에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 ‘박근혜 퇴진론’이 장외에서 더 큰 모멘텀을 얻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새누리당이 국정원과 동일하게 노무현의 NLL 포기를 인정할 경우 그것이 국가이익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불법행위였다면 후속 처리 방안이 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김대중 정권의 ‘대북 불법자금 북송’ 문제처럼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가 여론으로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 DMZ 세계평화공원사업을 새누리당이 꺼내 든 이상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쉽지 않다는 딜레마가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는 국정원 개혁과 NLL 문제가 새누리당에 새로운 분열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게 한다. 안보문제에 대해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NLL 포기는 여적죄에 해당하는 문제

국정원은 노무현-김정일 회의록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이해해달라”고도 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쉽게 이 문제를 덮기 어려운 이유다.

노무현 정권의 NLL 포기 문제는 정쟁의 차원이 될 수 없다. 진정으로 노무현 정권이 NLL을 북에 양보하려 했다면 이 문제는 여적죄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있다. 보수 시민단체들은 이미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마친 상태다.

여적죄란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를 말한다(형법 제93조). 여기서 적국이라 함은 대한민국에 대적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포함하며(제102조), 항적(抗敵)은 동맹국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제104조). 본죄의 미수·예비·음모·선동(煽動)·선전(宣傳) 등도 처벌된다.

본죄에 있어서 고의는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다는 인식을 필요로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 북한과 공조해서 대한민국과 동맹국인 미국에 항적하려 했을까. 그의 회담록을 들여다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인다.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실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저항감도 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 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 (서울 밖으로) 보냈지 않습니까. 2011년 되면 나갑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北核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왔다”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의도가 이 연장선상에 있다면 대한민국은 그 순간 적과의 내통속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개떡 같지만 찰떡 같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궤변이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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