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입문서를 읽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입문서를 읽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7.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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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정관정요>
오긍 著, 신동준 譯, 을유문화사 刊, 2013

<정관정요>는 참 오래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다.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지인이 선물해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관(貞觀)은 당 태종(唐 太宗)의 연호다. 수말(隋末)의 혼란을 수습하고 내치(內治)와 외정(外征)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당 태종의 치세를 역사에서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한다.

정관정요는 ‘정관의 치’를 가능케 한 당 태종의 통치 리더십을 정리한 책이다. 당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가히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성쇠와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당 현종 때 오긍이 정관정요를 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守成에 대한 고민

정관정요를 일관하는 것은 ‘수성(守成)’에 대한 고민이다. 수나라 말기 18세의 나이에 몸을 일으켜 천하를 평정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형제를 제거한 후 제위에 오른 당 태종은 창업의 어려움을 모르는 자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씨의 사직을 온전히 보존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당 태종은 “천하가 약간 안정되면 반드시 더 다퉈 신중해야만 한다. 평화롭다고 해서 교만하고 안일한 모습을 보이면 틀림없이 패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되풀이 강조한다. 정관정요의 상당 부분은 당 태종이 되풀이해서 신하들에게 간언(諫言)을 촉구하고, 간언을 가납하고, 간언한 신하를 포상하는 얘기들이다.

위징 등 간신(諫臣)들도 “예로부터 모든 군주는 처음 정사를 펼 때 자신의 치세가 요순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융성키를 바라는 까닭에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천하가 안정된 후에는 그런 노력을 끝까지 기울이지 못합니다.

신하들 역시 처음 정무를 위임받을 때는 마음을 다하고 능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부귀해지면 벼슬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만을 바라게 됩니다. 군신이 늘 해이하거나 태만하지 않은 자세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천하가 어찌 평안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당 태종을 격려한다.

같은 맥락에서 ‘거안사위(居安思危)’, ‘안불망위(安不忘危)’ 같은 말들이 수없이 되풀이 된다.

居安思危의 리더십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집권 초기에는 사명감과 의욕으로 충만하다가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 어김없이 해이하고 오만해지는 ‘5년제 대통령’과 그 참모들,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기업 오너들과 나름 기업가 정신을 가졌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달리 집안과 사회의 골칫덩이가 되는 재벌 2, 3세들은 정관정요를 꼭 읽어봤으면 싶다.

어디 그들뿐이랴? 입사 혹은 임용 초기의 초심을 잃고 나태해지는 직장인(나를 포함해서)들에게도 정관정요 속의 얘기들은 죽비소리처럼 다가온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당 태종은 신하들과의 ‘소통’을 위해 각별하게 노력한 군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관 10년을 넘어서면 태종에게 “초심을 잃고 있다”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고 비판하는 위징 등의 상소가 이어진다.

그렇게 스스로 경계해도 서서히 약해지는 당 태종의 모습을 보면 권력자가, 아니 사람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잘못을 인정하고 간언을 받아들이는 당 태종의 모습은 역시 대단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정관정요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훌륭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관정요를 제대로 읽고 이를 체화(體化)했다면 ‘대통령 박근혜’를 믿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조금 걱정스럽다. “아랫사람이 싫은 소리를 하면 바로 낯빛이 변하기 때문에 직언을 하기가 어렵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관정요를 제대로 읽은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정관정요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김원중 교수의 번역본이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서점에서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는데 술술 쉽게 읽히지만 한문 원문이 없는 게 아쉬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은?

내가 읽은 신동준 박사의 번역본은 한문 원문과 함께 고사(故事), 고전의 인용구, 관직, 인물 등에 대해 풍부한 각주가 붙어 있는 것이 장점이다.

나는 한글 번역 부분을 읽다가 특히 눈길을 끄는 구절은 한문 원문을 대조해 보는 식으로 책을 읽었다. 책 말미에는 당 태종 시기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군신 관계에 대한 번역자의 논문이 실려 있다. 앞에서 인용한 것들 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소개해 본다.

- “나태를 걱정할 때는 곧 처음과 끝을 시종 삼가 행하는 것을 생각한다.”

- “수나라 때 안팎의 대소 관원이 일을 처리하면서 미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모호하게 처리해 결국 화란을 자초했소. 당시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소. 앞에서는 복종하고 뒤에서는 다른 말을 하면서도 이런 일이 장차 화가 되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탓이오.”

- “크게 거둬들이면 민생은 더 각박해지고, 작게 거둬들이면 민생은 더 두터워지기 마련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이치가 이와 같다.”
- “윗사람이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으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이를 좇는다.(上之所好 下必從之).”

- “일반 백성들조차 말 한 마디를 잘못하면 사람들이 이를 기억하는 까닭에 이후 치욕과 손해를 보게 되오. 더구나 한 나라 군주의 경우이겠소? 단 한 마디라도 실수해서는 안 되오. 그로 인한 폐해가 매우 클 수밖에 없으니 어찌 백성의 경우와 비교할 수 있겠소?”

- “‘1년에 두 번 사면하면 선한 사람은 침묵한다’고 했소. 무릇 잡초와 가라지를 기르면 곡식에 피해를 주고, 범법자에게 은혜를 베풀면 선한 사람을 상하게 하오.”

-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실천이 어렵다. 실천이 어려운 게 아니라 끝까지 견지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難 行之惟難 非行之難 終之斯難).

배진영 월간조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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