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요? 재미있게 사는데는 성공했죠”
“성공이요? 재미있게 사는데는 성공했죠”
  • 이원우
  • 승인 2013.07.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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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33년만에 ‘먼나라 이웃나라’ 완간한 이원복 만화가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딱 일곱 글자만 있으면 된다. ‘먼나라 이웃나라.’

제1권 네덜란드 편으로 시작된 대장정은 지난 봄 제15권 에스파냐 편이 발간되면서 대단원에 막을 내렸다. 총 판매부수 1700만부 돌파. 일본어, 영어, 태국어, 중국어, 대만어 등 5개 국어로 번역되고 현재 불어판이 번역 중인 이 시리즈의 완간(完刊)은 당연히 수많은 매체들의 관심을 받았다.

<미래한국>은 조금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만화가로 성공하기 이전의 이원복, 청춘의 이원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생각하는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가수 이효리의 결혼발표 뉴스를 알고 있을 정도로 뉴스에 빠르고 한 마디 답변에도 유머를 잊지 않는 유쾌한 자유인이었다.

- ‘먼나라 이웃나라’ 완간 이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셨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얘기하시느라 고단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비슷한 얘기를 한 게 아니라 똑 같은 얘기를 했죠. 질문이 같은데 답변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웃음)

- ‘먼나라 이웃나라’만 해도 15권인데다 ‘가로세로 세계사’, ‘신의 나라 인간 나라’ 등 굉장히 여러 작품을 하고 계십니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일을 하시는지요. 혹시 워커홀릭이십니까?

전혀요. 몇 시간 일하는지 재 보진 않습니다만 많이 해야 하루에 두세 시간이 아닐까 해요. 심지어 일을 안하는 날도 많습니다.

- 수십 권의 책을 내신 분에게 듣기에는 놀라운 답변인데요.

저는 워커홀릭의 정반대에 가까워요. 많이 일하는 것 같지만 33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합 40권 정도의 책을 낸 거거든요. 그렇게까지 많은 건 아니에요. 책이 계속 언급이 되고 매스컴이 노출이 많이 되니까 워커홀릭일 거라고 추측들을 하시지만 저 한가합니다. (웃음) 워커홀릭이라면 6개월에 한 권씩 책을 냈겠죠.

조찬회·동창회에 안 나가는 이유

- 가만히 쉬고 싶으셔도 주변에서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의도와 관계없이 바빠지지는 않으시나요?

아뇨. 남는 시간 많아요. 거기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자, 대한민국 남자들이 시간 없는 이유를 보면 딱 두 개예요. 골프를 치고, 인맥관리를 하죠. 저는 둘 다 안합니다. 골프는 물론 바둑도 안하고 조찬회, 만찬회, 동창회 이런 데를 일절 안 나가요. 제 시간이 없어지니까요.

제가 만약 기업을 하거나 비슷비슷한 업종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많은 신경을 썼겠죠.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누가 도와주고 싶다고 도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료조사며 그림이며 스토리며 전부 혼자 하기 때문이죠.

- 듣고 보니 장점도 꽤 많은 듯한데요. ‘혼자 있음’의 미학이라면 또 어떤 게 있을까요.

팀워크 중심으로 일하게 되면 팀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고 이견도 얼마든지 생기죠. 33년씩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독립군으로 하기 때문에 쉬었다가 또 했다가 이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저의 삶 자체를 ‘먼나라 이웃나라’와 동기화시키고, 힘들 땐 잠시 아무 것도 안하면 그만인 거죠.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저한테 무슨 도움을 받겠다고 전화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가끔 신문 좀 봐 달라고 전화가 오는 정도네요. (웃음)

 

- 33년이면 한 세대에 필적할 만한 시간인데요. ‘먼나라 이웃나라’ 완간의 감상은 어떠신지요.

제가 올해 66센데 33년을 ‘먼나라 이웃나라’와 함께 보낸 셈이죠. 전체 인생을 기준으로 해도 절반인데 철든 이후의 인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제 모든 인생이 ‘먼나라 이웃나라’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어요.

- 그 이전의 이원복 교수님은 어떤 인생을 사셨습니까? 지금도 자식이 ‘만화 그린다’고 하면 부모들은 걱정부터 하는 게 보통인데, 만화가 되기가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부모님의 반대는 전혀 없었어요. 부모님이 안 계셨으니까요. 저는 7남매의 막내였는데 첫 누님과 제가 무려 열일곱 살 차이가 나요. 전쟁 직후여서 다들 바쁠 때였고, 막내 동생을 돌볼 여유가 없었죠. 그 덕에 저는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 덕을 못 봤지만 대신에 엄청난 자유를 누린 셈이죠.

- 한국의 청춘들과 반대네요. 요즘 2030들은 부모님들에게 받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청춘들의 그런 모습은 당연하다고 봐요. 한국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엄청난 방어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끝까지 다 해 주는 부모님들과 함께 살아온 거예요. 서양 애들은 18세가 되면 다 밖으로 나가는 게 상식인데, 힘들긴 하지만 부모에게 빚 안지고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게 되죠.

한국의 실업률이 높고 직장이 없다고 난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난리에요. 왜 그런 걸까요. 힘든 일은 안하겠다는 거거든요. 여기에는 부모님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다는 심리도 깔려 있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알긴 하지만 그대로 행동하기엔 용기가 안나는 거죠.

성공은 ‘우연’, 그리고 ‘재미’와 함께 온다

- 교수님은 그런 부담에서야 자유로우실 수 있었겠지만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이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땐 만화가 직업이 된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어요. 호구지책이었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명칭은 ‘만화쟁이’였고요. 제가 학부를 (서울대) 건축과로 간 이유는 단지 갈 데가 없어서였어요.

지금과 달리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엔 공대를 가는 게 일종의 트렌드였습니다. 60년대 산업 붐이 일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건축공학을 기웃거려는 봤는데 도저히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거기 가면 언덕 위에 하얀 집 지을 줄 알았는데 난해한 방정식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웃음)

- 오히려 너무 안 맞았기 때문에 만화의 길로 더 굳건하게 나가실 수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무슨 비장한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공부하기는 싫은데 먹고는 살아야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였죠. 그림 그리는 재미, 돈 생기는 재미에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경로는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들에게서도 흔히 관찰돼요.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마이스터라고 하는데, 그들이 어렸을 때 “내가 장차 최고의 시계 마이스터가 되겠다”고 거창하게 시작하는 건 아니거든요. 우연히 도제로 들어가서 구박받고 절대 복종해 가면서 어깨 너머로 하나둘씩 배운 기술이 진일보해서 마이스터가 되는 겁니다.

만화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성공을 한 인생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지만 저는 적어도 재미 있게 살았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 삶을 사는데 ‘성공’한 거죠.

- 성공에 있어서 ‘우연’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흥미롭습니다.

행운은 늘 누구에게나 따라다닙니다. 예컨대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이 명제는 우리가 인생을 긍정적으로(positive) 볼 수 있는 열쇠가 되죠. 저의 경우 만화를 했다는 것도 운이 좋았던 겁니다. 그리고 더 운이 좋은 건 이 길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고요.

- 똑같이 만화라는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보시나요? 이를테면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만화를 보는 웹툰 시장이 상당히 활성화돼 있습니다.

요즘 만화의 가장 큰 특성은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진행된다는 거죠. 옛날 만화는 잡지든 신문이든 매개가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그 매개가 작가를 고르고 독자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했어요. 매체가 작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전달될 기회도 없었고요.

웹툰이란 것은 인터넷이란 공간 속에서 독자와 작가가 직접 만납니다. 그렇다보니 보는 순간 와 닿고 ‘필’이 닿아야 인기를 끕니다. 저도 요즘 웹툰 중에서 ‘트라우마’ 같은 작품은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웹툰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직설적이고 호소력이 큰 매체예요. 그림 수준이야 기가 막히게 잘 그린 것도 있고 말도 안 되게 못 그린 것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디어’ 하나는 끝내주죠. 요즘 말로 “쩐다 쩔어” 하는 아이디어가 속출하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요.

동양의 부상은 갈등의 격화 예고

 

- 언제나 이렇게 ‘흐름’을 보시는군요. 여기서 화제를 역사의 흐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역사만화가 이원복 선생께서 보시는 세계사의 흐름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키포인트는 동양의 부상이죠. 인류보편적 진실로 믿었던 서양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부상한다는 건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하게 됩니다.

아주 쉬운 예로 9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스 로마신화’가 대인기였어요. 서양 문화가 헤게모니를 지배하던 시기의 얘기죠. 그 흐름이 요즘에는 사라졌습니다. ‘동양의 고전을 놔두고 왜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지?’라는 식이에요.

갈수록 동양 고유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는데, 이건 특히 한국에서 내적 갈등이 격화된다는 징후입니다. 서구의 개인주의와 우리의 공동체주의가 부딪치는 거죠. 새 정권에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생기고 저도 과거 사회통합위원회에 있어 봤지만 이건 위원회로 해결될 일은 아니에요. 리더들이 사회통합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헌신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정치 얘기가 나와서 말씀입니다만 ‘먼나라 이웃나라’를 두고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이원복은 보수다” 등의 감상이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스로의 성향을 ‘보수’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얘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봐요. 다만 저는 제가 소위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것은 아니나 보수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굳이 표현하자면 뉴트랄(neutral), 리버럴(liberal) 정도일까요.

왜 오해를 받는가 하니 일단 한국에선 나이가 들면 다 수구꼴통 취급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참여정부 시기에 제가 대통령에 대해서 몇 번 긁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더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은 ‘중간’이 살기 참 힘든 곳이에요.

- 만화가 이원복에 대한 음모론(?)이 또 있습니다. “1700만부의 책을 판 이원복은 엄청난 거부”라는 것인데요. 정말입니까?

하하. 그런 얘기 나오면 따로 부정은 안해요. 가난하다고 엄살떨 이유야 없죠. 그런데 이거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1987년에 처음으로 ‘먼나라 이웃나라’가 발간됐을 때 책 정가가 2000원이었어요. 제 인세는 5%로 돼 있었으니 한 권당 100원이었죠. 만 권 팔면 100만원입니다. 이 돈은 당시 독일 항공권 가격이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초창기에는 수입을 전부 다 ‘하늘’에 탕진했죠.

90년대 후반부터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뭐 엄청난 거부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세 식구가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 독일 유학 시절 독일인들의 혈세로 공부를 했던 것의 은혜를 갚는다는 차원으로 저 역시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내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는 ‘뒤’를 볼 때

- 독일인들에게 받으셨으면 독일에 돌려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독일은 너무 잘 살더라고요. (웃음) 그 대신 독일인들이 나에게 한 것처럼 제3국 아이를 돕는 거죠. 최근에 네팔 학생을 한국에 데려와 우리 학교(덕성여대)에서 공부를 시키는데 전액을 지원해 주고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해주면 한국과 네팔을 위해서 모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이 친구가 열심히는 하는데 어학성적이 안 나와서 요새 걱정이네요. (웃음)

- 봉사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교수님의 작품 흐름을 봐도 시선은 소위 ‘제3세계’로 가 있는 듯합니다. ‘가로세로 세계사’는 아프리카까지 다루신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세계를 이끌어 가는 나라가 됐으니까 뒤에 있는 나라들을 보고 그들을 공부하자는 취지죠. 이제 세계에는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하는 나라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남아메리카, 인도, 파키스탄 등 다룰 곳은 무궁무진하죠.

- 휴가철에 외국으로 떠나는 독자들도 많을 텐데요. 추천해 주실 만한 여행지가 있으신지요.

PIIGS 국가들(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거든요.

이들 국가에는 금융위기를 겪었다는 것 이외에도 씨에스타(siesta)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미국에서 빌 게이츠가 햄버거 뜯으면서 일할 시간에 낮잠을 자는 게 로마시대부터의 전통입니다. 그 문화적 우월감을 유지하면서 극단적인 경쟁시대를 살 수 있을지를 직접 보면서 성찰한다면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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