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연평해전을 지우려 했나”
“우리는 왜 연평해전을 지우려 했나”
  • 미래한국
  • 승인 2013.07.26 2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영화 김학순 감독
<NLL-연평해전> 김학순 감독

‘기득권에 대한 저항’. 우리 사회, 소위 진보진영의 논리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허울뿐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곳이 있다. 바로 가장 진보적일 것 같은 영화계다.

이곳에선 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배우도, 투자자도, 배급사도 외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계에 쌓인 ‘진보 산성’을 넘어 어렵게 제작 중인 영화가 있다.

2002한일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께 서해 연평도 인근.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참수리 고속정 357호를 기습 공격한다. 북한군의 집중 공격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다 6명의 해군이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다.

하지만 이 전투는 같은 날 오후와 다음날 열린 2002한일월드컵 3·4위전과 결승전의 열광에 묻혀 제대로 조명이 안 된 채 우리 뇌리 속에서 지워졌다.

김학순 감독의 3D영화 <NLL-연평해전>은 제목 그대로, 이 잊혀진 전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미래한국>이 김학순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월드컵이라는 축제 분위기에 도취돼 우리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애써 외면한 우리 사회 아이러니의 실체에 대한 고민이고 반성”이라고 영화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왜 갑자기 연평해전인가

- 왜 제2연평해전인가요? 당시에도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사건인데요.

그전부터 남북문제에 천착해서 영화를 하려 했어요. 그러다 이 전투를 다뤄야겠다 생각했어요. 6·25전쟁은 오래 전 일이지만, 이건 최근에 벌어진 일이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현실이잖아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휴전 상태라는 현실을 일깨운 거예요. 그게 딱 터지고 피부로 느끼게 해준 거죠. 내 가족도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 그러면 영화 작업을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일 것 같습니다.

저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2008년일 겁니다. 지인과 대화 도중에 제2연평해전이 머리를 때렸어요. 2002년 6월 29일 한쪽에선 월드컵으로 열광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실상 서해 NLL에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처절한 죽음의 참상이 연출됐잖아요.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똑 같은 시간에 이뤄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은데다가, 도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쳤나 싶었어요. 우리가 그렇게 무심한 민족이었나요.

-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전사자들의 영결식 대신 일본으로 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환호하는 장면이나 남북정상회담에서 웃는 모습과 연평해전의 비극적 상황이 대비되면, 감독님이 말씀하신 아이러니한 면이 부각되겠네요. 좌파진보진영에서 말하는 당시 남북협력의 허구성도 드러날테니까요.

특정인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전사자나 애국자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말하는 차원에서 그런 대비 효과를 생각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상권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재단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시나리오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뺀 상태입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영결식은 이틀 뒤인 7월 1일 거행됐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유가족이 과거 정부의 무관심에 실망한 것은 당연한 일.

조타장 한상국 중사의 부인은 사후 일련의 예우에 배신감을 느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한상국 중사는 제2연평해전 40여일 만에 침몰한 참수리357호 조타실에서 발견된 전사자다. 내장이 드러나는 복부 관통상을 입고도 함정이 전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키를 움켜쥔 상태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이런 전쟁의 영웅들과 그들을 보낸 가족들의 이야기다.

- 영화를 만들려면 가족들 인터뷰를 했을텐데, 반응은 어땠나요. 마음의 상처가 클텐데요.

영화로 만들려고 생각한 것은 유가족 때문입니다. 아들이나 남편이 죽은 상실감 자체도 큰데, 이들이 더 슬픈 이유는 가족이 군인 신분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사한 거잖아요. 게다가 월드컵이다 남북정상회담이다 해서 전사자에 대한 예우도 충분하지 않았고요.

2009년부터 결혼식 같은 행사 때 찾아가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혹시 영화화가 안 되면 다큐멘터리라도 내려고 했거든요. 무슨 행사가 있으면 여섯 전사자 가족분들이 다 모일 정도로 참 끈끈하게 지내세요.

쓸쓸한 영결식

- 최근 NLL 논쟁과 겹쳐서 영화가 정치적이라는 오해도 받을 것 같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떳떳합니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유가족의 아픔이라는,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뿐이죠. 우리가 왜 이들의 아픔과 희생을 잊고 있는가.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NLL은 우리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NLL은 영해의 문제인데, 이걸 평화지역이네, 이걸 없다고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이죠. 남한과 북한은 휴전 상황 아닙니까. 서해를 내주면 코앞에서 우리나라 관측이 가능한데, 북한 입장을 들어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 감독님 말씀을 들으면 영화의 모티브는 남북이 대치하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미국영화 보면 애국영화가 많습니다. ‘챈스 일병의 귀환’이라는 영화를 보면, 한 사병 전사자 유해를 운구하는 데 국가가 예우를 다하고 정성을 쏟는 게 나옵니다. 애국자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거죠. 우리나라 현실과 대비해서 감동적이면서 안타까움을 주는 영화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이런 영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헐뜯고 손가락질 하는 패배의식에 젖은 영화가 대다수죠. 그래서 전 작정했습니다. 전 대놓고 애국영화 만들겠습니다.

어디 가서 애국자라고 말도 못하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죠. 미국에선 애국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애국심을 더 갖게 되는데, 나라를 사랑하게 하는 영화가 왜 나쁘겠습니까.

- 영화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일단 재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보고 느낄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관객에 외면당하면 아무 소용없죠.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부분은 전쟁의 리얼리티와 그 속에서 생기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리얼리티를 잘 전달하고 인물의 감정을 잘 끌어내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남한과 북한의 전투이니 일단 아군과 적군이라는 선악 구도는 명확해요. 여기에 또 하나는 우리 병사들 자체 내의 고민들, 개인들의 인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윤영하 당시 대위는 군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려 했는데, 대위에서 목숨을 잃었죠.

- 단순한 전쟁 영화도 촬영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해전을 소재로 한 것이어서 더 힘들 것 같습니다.

고속정에 막상 타보면 무척 빨라서 중심 잡기도 어렵습니다. 자칫하다 카메라를 물 속에 빠뜨릴 수도 있죠. 그래서 연기하기도 쉽지 않은데, 특히 배우들이 멀미 때문에 고생이 심해요.

한 번 나가면 대개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촬영을 하는데, 구토를 하면 만사에 다 힘이 빠지죠. 윤영하 역을 하는 해병 수색대 출신 주인공 정석원 씨도 처음엔 고생 많이 했어요. 사실 해병은 배에 탈 일이 별로 없거든요.

문제는 재미와 리얼리티

- 신인급 배우들이 많은데,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에요. 최대한 리얼리티에 가까운 연기를 뽑아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맞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맞는 표정이나 대사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서로 얘기하고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계 어떤 분은 보시고는, 신인들이라 군인인지 연기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게 장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연평해전>은 제작 자체가 일종의 전투였다. 남북 대치 상황의 실상을 알리는 영화를 만들면 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영화판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주변의 충고를 극복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물론 선뜻 나서는 투자자는 없었다. 배우 캐스팅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미경 씨(故박동혁 병장 어머니 역할) 등 뜻 있는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해 촬영 중이다.

- 사실 영화계는 소위 애국영화가 만들어지기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투자 문제나 배우 캐스팅은 어땠나요?

네. 이번에 아주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애국영화라고 해서 스태프나 업체도 함께 하기 꺼렸어요. 배우들이야 뭐 당연한 일이죠. 영화 쪽에 워낙 좌파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다 아는 사이니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를 받기 위해 많은 기업을 노크했는데 성과가 없었어요. 성사될 듯하다가도 결국엔 막판에 틀어졌죠. 사실 정치적인 내용은 아닌데, 정권이 바뀌면 곤란해질까봐 망설이는 경우도 있고, 어떤 회사는 여론 때문에 주가 하락을 걱정하기도 하죠. 이해는 해요. 여론 선동이 무서운 것 저도 잘 아니까요.

- 감독님 자신은 두렵지 않았나요. 영화계에서 자리 잡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영화계는 흔히 알려졌듯이 소위 좌파 진보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저에게 어떤 역작용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 때문에 영화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도 생각은 진보예요. 뭐냐면, 누가 ‘너 이런 영화하면 영화판에서 쫓겨나, 왕따 당해’ 라고 하면, 전 ‘그럼 이런 영화 누가 할 건데’ 이러는 식이거든요. 전 창작자로서 비겁하고 싶지 않아요. 누가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제 할 것은 해야죠.

- 문화계에서 좌파세력이 오히려 기득권이 돼 다른 생각이나 작품이 발 디딜 영역이 없다는 문제 제기가 많습니다. 이른바 문화권력 문제죠.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일종의 척후병 같은 영화입니다. 물론 총 맞을 수 있지만, 꼭 있어야 하는 역할이죠. 이 영화가 문화계나 국민들 의식에서 좌우 균형을 맞추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진보, 보수는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균형이니까요. 이제 사회가 서서히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는데, 여기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사채까지 시도하다 국민모금으로 역전, 연말이나 내년 초 개봉

- 사회 분위기가 그런데 우리 젊은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아무래도 전우애가 크겠죠. 그리고 군대에 들어가면 정신 교육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죠.

- 사실 얼마 전까지도 촬영 지속 자체가 어려웠으니 척후병이 총에 맞은 격이었네요.

2011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를 3D로 만든다는 계획이 좋게 평가 받아 10억 원을 지원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이때 스태프도 구하고 해군이나 국방부에서 지원 받기로 했습니다.

해군은 함정 수십 척, 항공기, 헬기, 막사, 제복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정말 해군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영화예요. 해군 덕분에 블록버스터가 됐으니 금액으로 환산할 수도 없죠. 그런데 이렇게 준비하다 올해 초 막상 촬영을 시작하려 하니 애초 영진위에서 받은 자금을 많이 썼더라고요.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서 금방 마이너스가 됐어요. 배우, 스태프 다 해서 120명 정도가 진해에서 숙식하는데 비용이 엄청나더라고요. 은행권에서 빌리다 빌리다 해서 마지막에는 사채에까지 손을 댔어요.

사채 계약서에 도장 찍고 갖다 주기만 하면 돈을 빌리게 되는 상황까지 몰렸던 거죠. 그리고 그 돈 다 쓰면 촬영을 무기한 접게 되는 것이었고요. 그때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 그런 상황에서 천만다행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면서 대규모 펀딩에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정말 드라마틱했습니다. 한 신문사에서 저희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개탄하는 칼럼이 나갔는데 그 기사가 계기가 돼서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어요.

물론 촬영은 열심히 하곤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를 접고 올라갈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인터넷크라우드 펀딩과 성금 합쳐서 16억 원 정도가 모아졌어요. 게다가 국내 메이저 배급사에서 유통을 해주기로 했고 새롭게 투자 협의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 이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는데 현재 촬영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대체로 50% 정도 진행됐습니다. 해전 등의 중요한 촬영이 많이 남았죠. 지금은 촬영을 일단 중단하고 스태프 구성이나 일정 등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도와주셨으니 리얼리티와 완성도 높은 영화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개봉은 연말이나 내년 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