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에는 평화가 없다
‘평화협정’에는 평화가 없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7.26 23:17
  • 댓글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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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존 루이스 개디스의 <조지 케넌>을 읽고
 

최근 종편에 출연한 일이 있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의 공개과정의 비적법성에 대해 묻기에 “만약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을 일본 식민지로 만들겠다고 합의한 대화록이 있었다면, ‘현행법’을 어겨서라도 이를 공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 아니면 기계적으로 ‘현행법’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라고 대답했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자 함께 출연한 한 문화평론가가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읽어 보았느냐? ‘NLL 포기’란 말이 어디 있느냐”며 따지듯 물었다. “밑줄까지 쳐가면서, 그것도 3번 자세히 읽어 보았다”고 대답하자 이 출연자는 “난독증이 있는 것 아니냐? 내가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쳤는데 그렇게 독해하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논쟁해 봐야 설득되지도 않을 것 같아서 더 이상의 논쟁은 피했으나 매우 씁쓸했다.

이번 NLL 논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는 단순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특정 이슈에 대한 사소한 다툼도 아니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대한 ‘펀더멘털 디바이드’(Fundamental Divide)로 야기된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내부에 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정체성과 같은 큰 문제에 대한 ‘펀더멘털 디바이드’가 존재한다면 사실상 국민국가(nation state)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내전(civil war)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많은 정치학자들의 기본 견해이다.

NLL 논란과 ‘평화주의자’들

올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이다. 이날을 맞이해 많은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정전협정 60주년을 이른바 ‘평화협정 체결 투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주장은 얼핏 들으면 솔깃하게 들리기도 한다. “왜 보수적 어른들은 ‘평화’를 싫어하느냐? 평화협정을 통해 남북한이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질문을 대학생들로부터 종종 받는다. 평화란 매우 좋은 말이다. 이 말 자체에 반대할 수는 없다. 아니 전폭적으로 찬성한다.

그런데 문제는 평화협정이 평화를 담보하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이란 무엇인가? 북한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남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다. 즉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며 대한민국은 졸지에 괴뢰로 전락돼 버린다.

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존립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즉 주한미군의 철수가 ‘미북 평화협정’의 본질인 것이다. 이러한 ‘평화 없는 평화협정’의 결과는 역사가 잘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 예가 1973년 베트남 평화협정이다. 미군은 철수했으며 북베트남은 1975년 협정을 휴지로 만들고 무력을 통해 남베트남을 적화시켰다.

약속을 지킨 적이 없는 악당과의 평화조약은 악당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만약 북한이 평화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가 있다면 1991년 12월에 공동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부터 존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남북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에 대한 이 문서는 북한에게 휴지였다. 우리는 이 합의서에 따라 한반도에 배치돼 있던 미군 핵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 봐도 명백해진다.

이 문제는 정치 및 이념을 떠나 가장 기본적인 인륜적 문제이다. 그러나 북한은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이따금 이산가족상봉을 ‘허락’하고 있다. 이같이 기본적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의 평화협정은 정치공세, 아니 정치 계략에 불과하다.

현재 한반도 평화의 안전틀은 현존하고 있는 정전협정이다. 이름만 거창한 ‘이빨 없는 조약’(toothless treaty)이 평화를 보장한 적은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다. 진정한 신뢰 구축이 이뤄지기까지는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경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평화수역’에서의 어선(혹은 어선을 가장한 군함)끼리의 사소한(?) 충돌이 전면적 대립으로 비화될 불씨가 될 공산이 클 것이며 섣부른 ‘어로공동구역’은 ‘어뢰공동구역’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냉전 설계자’ 케넌의 大전략

 

이러한 현실 문제를 바라보며 미국의 대표적 냉전(Cold War) 연구가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예일대 교수가 쓴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을 읽어 보았다. 조지 케넌은 이른바 ‘냉전의 설계자’로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관이자 대외 전략가이다.

케넌은 1946년 2월 모스크바 주재 미대사관에 근무하던 시절 ‘장문의 전문’(Long Telegram)으로 알려진 소련정세분석문을 전송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7년 7월 X라는 익명으로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지(誌)에 ‘소련 국가행위의 근원(The Sources of Soviet Conduct)’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한다. 바로 이 두 편의 글이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을 형성한 봉쇄정책의 기본골격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흔히 냉전이란 용어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냉전은 열전(Hot War)을 방지하기 위한 평화 전략이었으며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 없이 소련을 굴복시킨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이었다. 사실 냉전체제 이전에 유럽이 이토록 장기간의 평화와 번영을 향유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은 다른 말로 ‘긴 평화’(Long Peace)로 불린다.

케넌은 낭만적 평화주의가 어떻게 평화를 위협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경고한다. 케넌은 국제문제 분석에서 “가장 큰 적은 인간 본성의 비완벽성(imperfection)을 부정하면서 완벽함(perfection)을 약속하는 추상(abstraction)"이라고 지적한다.

케넌에 따르면 ‘평화주의자들’은 ‘국제적 남극대륙’(international Antarctica)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극대륙은 무균사회이다. 그렇기에 성장도 없다. 또 사람이 없기에 질병도 없다. 아니 삶(life) 자체가 없기에 고요와 평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완벽한 사회는 삶을 제거하지 않은 한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냉전과 봉쇄는 전면전을 할 수도 그렇다고 위선적 평화를 계속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온 전략이다. 케넌에게 냉전은 정치전쟁(a political war)이며 장기적 소모전(a war of attrition)이었다.

케넌의 국제정치 현실주의에 대해 미국 보수우파가 항상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만은 아니다. 첫째, 케넌의 현실주의에는 외교문제 행동 판단에서 선과 악의 기준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케넌은 “공산주의 문제에서만큼은 도덕주의자(moralist)”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공산주의는 서구문명에 대한 도전이며 “믿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적(enemy)”이라고 말한다. 단 이러한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는 냉엄한 현실주의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 정전 체제구축 주장한 장본인

둘째, 봉쇄(containment)가 아니라 해방(liberation)이 기본전략이 돼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케넌은 “봉쇄와 해방이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답변한다. 단 주관적 감정을 앞세워 국제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목표와 방법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폴란드 등 동구유럽을 소련의 세력권 안에 넘겨주는 등의 현실적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에서는 한반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케넌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한반도의 국제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38도선 부근에서의 정전체제 구축을 주장한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이다.

이 문제에 대해 케넌은 국제전략을 주관적 원망이 아닌 객관적 힘의 역관계에서 바라봐야 하며 한정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서 화가 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북진통일을 할 수 없는 객관적 정세 속에서 정전협정체제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케넌의 냉엄한 현실주의를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케넌의 모든 분석이 정확한 것만은 아니었다. 또 중요성에 대한 주관적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 정책과 전술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대전략이 서구유럽과 대한민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줬다는 점은 명확해졌다.

단 유럽에서의 냉전은 서구유럽의 승리로 끝났으나 불행히 한반도의 냉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 케넌의 전략적 사고의 기본틀은 무엇인가?

개디스 교수는 1)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주의 2)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게 된 것에 대한 절망 3)양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국제 시스템에 대한 향수 4)대륙세력(land power)에 대한 불신과 해양세력(sea power)에 대한 존경 5)마르크스와 프로이드에 대한 의심 6)이사야 벌린(Isaiah Berlin)과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고전, 그리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American Founding Fathers)에 대한 존경 7)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엘리트주의 개입(enlistment of elitism)이라고 지적한다.

“평화는 의지 대 의지, 힘 대 힘, 이념 대 이념이 맞서는 유쾌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는 케넌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이야기를 마치겠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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