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필 소신인가 배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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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우
  • 승인 2013.07.3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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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의원-강용석 변호사-남경필 의원 … 우파진영 내부에 존재하는 色다른 목소리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부갈등(姑婦葛藤)은 언제나 있었다. 서로 간섭하지 않을 것 같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시어머니-며느리 사이는 껄끄럽다.

언뜻 양자 갈등처럼 보이는 이 싸움에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제3자가 존재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더 밉다는, 이른바 ‘말리는 시누이’다.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등장하지만 막상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부 며느리에게 불리한 것들뿐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시(媤)월드’ 라는 신조어에는 며느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더 이상 시어머니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이 반영돼 있다.

좌우 진영이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정치 현장을 ‘시월드’로 간주한다면, 여기에도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더 미운 ‘말리는 시누이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상징인 새누리당이나 그 전신인 한나라당에 속해 있었으면서도 주요 국면에서 보수주의의 기본 원칙이나 새누리당의 당론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는 이들이다.

언제나 소장파(少壯派)의 얼굴을 하고서 출현하는 이와 같은 부류는 이번 NLL 논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들 역시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민주당과 이른바 친노(親盧) 세력에 대한 전에 없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적전분열(敵前分裂)의 제공자로밖에 보이지 않아 화합은 갈수록 요원해진다.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3인의 발언과 그 맥락을 짚어본다.

‘출당 요구’ 받은 하태경 의원

최근 우파진영 지지자들로부터 가장 매서운 공격을 받고 있는 사람은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다.

지난 12일 애국시민단체 대표 5인(박명규 공영방송정상화국민행동 기획위원,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 최인식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당 지도부에 성명서를 제출했다. 제목은 ‘새누리당은 종북뻐꾸기 하태경 의원을 즉각 제명하라!’였다.

하 의원은 어쩌다가 ‘종북뻐꾸기’라는 말을 듣게 됐을까. 가시적인 사유는 최근 NLL 논란에서 보여준 일탈 때문이다. 그는 논란이 촉발된 지난 6월부터 꾸준히 새누리당의 기조와 반대되는 주장을 펼쳐왔다.

“국정원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기밀문서를 야당에 넘기고(?) 조직의 명예를 국가 안보보다 중시하는 것이 개탄스럽다.” (6월 24일 페이스북)

“회담 내용 공개에 찬성하셨던 분들 우리가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6월 27일)

“죽은 노통을 부관참시 하는 재미에 자신들이 국익훼손의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자칭 애국세력의 각성을 촉구한다.” (7월 6일)

하태경 의원이 보수진영의 일반적인 여론과 색채를 달리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부터 사람이 달라졌다”는 일각의 비판과는 달리 그는 의원 당선 이전부터 가끔씩 ‘색다른 노선’을 타곤 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충돌 … NLL로 폭발

2011년 10월 31일 서울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인권 미팅>. 당시 정국은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열풍으로 매우 뜨거운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하 의원(당시 열린북한방송 대표)은 “박원순 시장이 시장후보로 나왔을 때 ‘통영의 딸’에 대한 박 시장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은 공격”이라고 말하며 많은 이들의 의문을 샀다. “변호사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했던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당시 현안이었던 ‘통영의 딸’ 관련 질의를 한 것은 알 권리”라는 것이 반론의 근거였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는 주로 ‘종북’ 문제에 관한 논쟁이 많았다. 특히 작년 봄 “종북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진짜 종북을 잡기 어려워진다”는 그의 발언은 엄청난 논쟁을 유발했다.

작년 6월 1일에는 “대통령이 종북 문제를 주장한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석기, 김재연 등 통합진보당 의원의 제명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정희나 임수경은 종북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3년에도 파문은 이어졌다. 1월에는 트위터에서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폐지-연방제를 주장한다고 해서 종북좌파로 볼 수 없다”고 말했고 4월 ‘우리민족끼리 회원 명단 공개’ 파문이 일었을 때에는 “우리민족끼리 가입했다고 다 종북으로 보는 건 오산”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입자 명단에 현직 경찰, 전직 대통령, 연예인 이름 등이 나오면서 ‘가입=종북’이라는 공식은 깨졌지만 우파진영 내부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물타기를 시도한다’는 비판 여론이 식지는 않았다.

현재의 ‘反하태경 기조’는 그의 전향(轉向)마저 의심하고 있을 정도다. 1980년의 광주를 목격한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89년과 1991년 투옥된 바 있으며 91년에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통일운동 주도 혐의로 2년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대북 단파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을 이끌며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북한인권 및 탈북자 문제에 공로를 가지고 있는 그의 경력은 당선 이후 계속된 논쟁으로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2012년 8월 18일 유성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전대협 동우회에서 “새누리당은 블루오션”이라고 한 발언은 결정적으로 그의 이념 정체성을 의심케 만든 분기점이 돼 버렸다. 하 의원은 작년 8월 진행된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념적으로 제가 우파냐 하는 문제는 조금 복잡합니다. 제가 좌파를 100% 버린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은 유지하고 아닌 것은 버렸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캡쳐

한편 최근 하 의원은 NLL 사건에서 ‘문재인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서 새로운 논쟁을 만들어 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는 7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노 前 대통령 발언이 NLL 포기인지 아닌지 논쟁은 빨리 접되 사초 폐기 또는 훼손 문제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추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썰’ 한 번에 핀치 몰린 강용석 前 의원

하태경 의원이 우파진영의 반응과 관계없이 본인의 생각을 일관적으로 밝히고 있다면 강용석 前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적극적으로 여론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주도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최근 들어 엇박자를 낸 케이스다.

강용석 前 의원이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된 계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2010년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사건’이다. 그 이전까지의 강 前 의원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서울대와 하버드를 거쳐 변호사가 된 훈남 변호사’ 정도의 이미지였다.

2010년 7월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남녀 대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나운서 발언’을 중앙일보가 보도하면서 강 前 의원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법원까지 그에게 유죄를 선고(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하면서 ‘정치적 사형선고’에 필적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 상황에서 강 前 의원은 박원순, 안철수 등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2012년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그를 아깝게 생각하는 우파 성향 유권자들은 상당히 많았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나온 궁여지책임을 감안하더라도 강 前 의원의 맹렬한 의혹 제기는 ‘파이터 정치인’이 실종된 우파진영에 신선한 자극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보수 대표’ 자처하며 “NLL 포기 아니다”

“대통령이 꿈”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그가 총선에서 낙선하자 박원순, 안철수 등에 대한 공격도 잦아들었다. 대신 그가 택한 것은 방송이었다. 2012년 가을부터 시작된 JTBC <강용석의 고소한 19>는 언변 좋고 상식이 풍부한 그의 장점을 충분히 드러내며 2013년 3월 시청률 2%(AGB닐슨코리아)를 돌파,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이에 JTBC는 그에게 <썰전>이라는 또 다른 기회를 부여했다. ‘고소한 19’가 강용석 한 사람에게 핀트가 맞춰진 방송이었다면 2013년 2월부터 방송된 ‘썰전’은 좌파와 우파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함께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강 前 의원은 소위 우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JTBC가 손석희 前 성신여대 교수를 영입하는 등 우파진영에서 그다지 우호적인 시선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우려하는 시선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강용석의 정치 얘기’에 목말라했던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고소한 19’의 최고 시청률이 2%였다면 ‘썰전’은 평균 시청률이 2%였으며 매회 최고치를 경신했다.

 JTBC <썰전> 19회 방송화면

사달은 NLL 문제를 다룬 19회에서 났다. 이 방송에서 강 前 의원은 “노무현의 NLL 발언을 ‘포기’로 볼 수 없다”, “서상기와 정문헌은 사퇴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우파진영에 일대 혼란을 야기했다.

이를 의식한 듯 20회 방송에서는 뒷수습을 시도했지만 “지난 발언 이후 팬카페 대문 사진이 내 얼굴에서 연평해전 전사자 사진으로 바뀌었다”고 말했을 때 전사자들의 사진이 코믹한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화면은 더 큰 분노를 야기했을 뿐이었다.

5선이 되도록 ‘소장파’ 남경필 의원

우여곡절이 있지만 하태경 의원과 강용석 前 의원에 대해서 우파진영 내부에는 여전히 두둔하는 여론 또한 존재한다. 하태경 의원은 아직 초선의원이고 강용석 前 의원의 경우에도 “방송은 정계 복귀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뚜렷하게 밝힌 만큼 언젠가는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분은 새누리당 남경필 5선 의원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남 의원은 1998년 부친인 故 남평우 의원의 사망에 따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 아버지의 지역구(수원시 팔달구)를 물려받으며 ‘최연소 국회의원’(만 33세 4개월)으로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때부터 지난 2012년 총선까지 5선을 내리 수원시 팔달구에서 당선되며 의정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강창희 현 국회의장이 6선 의원임을 감안하면 5선인 남경필 의원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의원이 새누리당 내부에서 보여주는 언행이 얼마나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과 비판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이번 NLL 논란에서도 남경필 의원은 초선의 하태경 의원과 궤가 같은 주장을 펼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국익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우려스러운 일이다.”

“우리 정치권이 이미 과거 역사가 된 일로 미래의 발목을 잡아 소탐대실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개혁’의 이름으로 ‘오로지 득표’?

NLL 문제와 관련해 쏟아져 나온 남 의원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그의 언행을 관찰해 온 사람들에게서 더 강경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남 의원은 의정 활동 기간이 긴 만큼 많은 의문점을 생산해 왔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논의도 개시될 필요가 있다”(2004년),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단계, 즉 연방 또는 연합의 단계가 필요하다”(2005년), “북한 측에 현금 지원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2007년)는 발언은 새누리당 의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케 만드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그는 2008년 의원총회에서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로 개성공단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한나라당이 (삐라 제재를 위한) 법률적 검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북한인권 운동가들을 ‘멘붕’에 빠뜨리기도 했다.

2010년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한 남경필 의원

우파진영의 멘붕은 좌파진영의 ‘희소식’이 되는 게 한국 정치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남경필 의원은 2010년 김어준, 김용민 등이 진행하는 <뉴욕타임스>에도 거리낌 없이 출연하며 상대 진영과의 접점을 넓힌 바 있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가 생긴 이래 1년이 넘게 한나라당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한나라당 의원이 어쩌자고 여길 오셨어요 그래?”
“아, 같이 씹으려고 왔습니다.”

본지 <미래한국>이 진행한 좌담회에서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남 의원에 대해 “유권자 60%가 지지할 만한 사안에 대해서만 발언하며 정작 위기 땐 보이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 실제로 남 의원이 좌파진영에게 손을 내민 시기는 예외 없이 일반 유권자들의 성향이 왼쪽으로 기운 경우였다.

일탈해야 돋보이는 정치인의 딜레마

강용석 前 의원은 ‘썰전’ 20회 방송에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텍스트를 해석했을 뿐”이라며 기존의 견해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우파진영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하나의 의견만을 말해야 하는 것은 개인(個人)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배신’으로 치부하는 진영 논리를 한국 보수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이번 NLL 논란은 영토와 영해 문제, 나아가 북한 문제와 직결되는 근본적인 사안이기에 우파진영의 감정도 매우 격앙돼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정쟁에 악용하고 원칙 없는 모습을 보였을지언정 당의 입장과 유권자들의 감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지속하는 이들에게 유독 날선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단순한 고부갈등 그 이상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말리는 시누이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는 ‘하용필’ 3인방. 그들의 입장이 소신(所信)인지 아니면 보수진영에 대한 배신(背信)인지 여부는 아직 누구도 100% 확인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에게 우파 성향의 유권자는 전에 없는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노한 유권자는 반드시 투표장으로 간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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