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의 공존 동유럽을 가다
전쟁과 평화의 공존 동유럽을 가다
  • 이원우
  • 승인 2013.08.0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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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과 프라하를 잇는 직항 노선은 현재 주 6회 운영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과 체코항공이 제휴를 맺으면서 증편된 결과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 중 하나에 몸을 실어 10시간 넘는 비행을 시작한다. 보잉777기 사고의 여파인지 난기류의 흔들림에 승객들은 쉽게 민감해진다. 현실과 꿈의 경계, 오늘과 내일의 시차가 흐릿해질 때쯤 체코의 루지네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한글 안내다. 영어, 체코어, 러시아어 등과 함께 공항 내의 모든 표지판에 한글 안내가 병기돼 있다. 프라하가 신혼여행의 ‘대세’라는 말은 들었지만 중국어와 일본어를 누르고 새겨진 한글은 반갑다. 공항 내의 TV조차 SAMSUNG이다. 체코가 이렇게 한국과 가까웠던가?

다시 두 시간 반을 달려 체코 제2의 도시이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의 출생지인 브르노로 향한다. 한국의 여름에 비해 청명한 공기와 긴 낮. 토요일 저녁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체코 사람들. 동유럽 특유의 덜컹대는 고속도로. 7시간의 시차 적응을 신경 쓸 것도 없이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든다.

이동은 다음 날 새벽에 기상한 뒤로도 계속된다. 네 시간 반을 달려 폴란드 국경을 넘는 길에야 책을 꺼내들 마음이 생겨난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이탈리아 출신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와 그 처절한 기록을 글로 남긴 프리모 레비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영혼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길에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의 민낯’을 보다

“어떤 수용자들은 오로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짐승처럼 달리면서 오줌을 눈다”는 내용이 나올 때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다. 오시비앵츠라는 폴란드식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독일어로 호명되는 곳. 현지 가이드는 “이곳에서 일본인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정문의 기만적인 문구를 통과하자마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생히 남아 있는 비극의 흔적. 가스 때문에 하얗게 탈색된 채 무참하게 잘린 머리카락, 손바닥에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유대인 아이들의 신발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600만 명 학살의 주범인 가스실에도 들어가 볼 수 있다. 괜히 기분까지 매캐해진다.

희생된 유대인들의 신발

중간 중간 촬영을 금지한 전시장도 있었지만 굳이 촬영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나마 현재 남아 있는 제1수용소는 프리모 레비가 수용됐던 제2수용소에 비해 쾌적했던 편이라고 한다.

패전 직후 독일군은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은폐하려 했지만 9개의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현대의 독일은 이 불편한 역사를 그대로 남겨두기를 선택했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결국 9와 0의 차이가 아닐까.

음울한 기분을 뒤로 하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려 당도한 곳은 크라쿠프 구시가지. 이곳에서 폴란드의 감자전이라 할 수 있는 플라츠키를 맛보고 그 짠맛에 깜짝 놀란다. 황급히 커피를 시켜보지만 유럽 특유의 늑장 서비스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식사를 마친 뒤까지도 입 근처에 남아 있는 소금기를 머금은 채 중앙 광장으로 향한다.

진정한 관광객이 되기 위해 중앙 광장에서 운행하는 이두마차에 탑승하는 호사를 누려본다. 그러나 출발과 동시에 내가 폴란드를 구경하는 건지 폴란드가 나를 구경하는 건지 모호해진다.

누가 와서 뭘 하든 별 신경 안 쓰는 눈치였던 북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동유럽인들은 먼 곳에서 날아온 동양인을 굉장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한다.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는 광경은 여행 끝날까지 이어진다.

비 내리는 슬로바키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

편협한 선입견과는 달리 동유럽의 태양빛은 매우 뜨겁다. 단 습기가 없기 때문에 그늘만 찾으면 땀이 나지는 않는다. 아예 ‘지하세계’로 내려가 보면 어떨까 마음을 정하고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 그 100m 밑으로 내려가 본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소금으로 이뤄진 깊은 지하의 불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신에 대한 열망이다.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의 존재를 찾았던 이들의 공간에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제1호의 칭호를 부여했다.

장마철의 한국이 폭우를 맞고 있던 그 시점에 폴란드의 자코파네 국경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침 동유럽의 유일한 산악지대라는 슬로바키아 타트라 산맥으로 향하고 있던 터다. 트레킹을 할 무렵부터는 날이 개면서 훌륭한 정경이 펼쳐진다. 눈이 오면 더 절경이라는 이 풍경을 사방에 두르고 10km쯤을 왕복한다.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의외로 별로 험준한 느낌은 아니어서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듯 산길을 걸을 수 있다. ‘동유럽의 알프스’라는 닉네임은 태어나서 한 번도 산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는 유럽인의 기준인 걸까. 졸졸 흐르는 석회질의 옅은 에메랄드 색 개울을 뒤로 하고 대망의 헝가리로 향한다. 국경 근처에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에서 본 듯한 해바라기 밭이 펼쳐져 시선을 붙잡는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부다페스트 겔레르트 언덕의 풍경은 심상치 않다. 슬로바키아 자연의 정취를 일거에 압도할 만큼 화려한 풍경은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은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가르는 경계선이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도나우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부다 지역에서 부다 왕궁, 어부의 요새, 마차시 성당을 구경하고 페스트 지역에서 성이슈트반 성당과 영웅광장을 구경했지만 부다페스트의 진면목은 역시 유람선에서 바라본 야경이다. 따가운 햇살 속에서 바라본 건물들이 어느덧 화려한 조명과 함께 밤을 밝히고 있다. 셔터를 누르면 그대로 엽서가 되는 풍경.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며 특별한 기억을 남겨놓는다.

언제나 귓가에 음악이 흐르는 나라, 오스트리아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다음 목적지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대한 기대치도 높여 놓는다. 두 시간 반을 달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비엔나의 벨베데레 성당.

이곳은 히틀러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KISS’ 원본이 소장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원본을 보면 시야가 마비된다는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하기엔 관광객들이 너무 많다. 혹은 이미 복제본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대신 오스트리아 최대 규모의 슈테판 대성당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린 장소. 영화 <비포 선 라이즈>의 배경이 된 곳.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한 장의 엽서가 완성되는 건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인 쇤브룬 궁전도 마찬가지였다. 서툴게나마 한국어 가이드가 운영되고 있어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40여 개의 궁전 내 방들을 구경할 수 있다. 조명이나 수도시설을 포함한 인프라는 별로 부럽지 않지만 궁전의 스케일이나 장식품들의 화려함은 명불허전이다. 비엔나에만 머물러도 1주일 이상은 즐길 수 있겠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린다.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다음 날 한 시간을 달려 당도한 곳은 움베르트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쓰기 위해 샅샅이 취재했다는 바하우의 멜크 수도원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자 유럽 최고의 바로크 양식 건축물이기도 하다.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웅장한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 앞에서는 입이 떡 벌어진다. 10만 권에 이르는 장서들이 소장된 도서관도 볼거리다.

동유럽식 돈가스쯤에 해당하는 슈니첼로 식사를 마치고 ‘소금창고’라는 의미의 잘츠카머구트의 볼프강 호숫가에서 뱃놀이와 할슈타트 마을 관광에 나선다. 역시 찍으면 곧바로 엽서가 되는 전형적인 동유럽의 관광지다.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인지 별로 감흥이 없다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맥락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햇빛을 맞아 선탠을 하러 나온 유럽인들. 햇빛을 피해 양산을 펴드는 관광객들.

잘츠부르크 시내 관광에 나설 무렵 동유럽의 직사광선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져 그늘을 찾는 게 또 하나의 관광 목적이 돼버리고 만다.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볕을 피해 들어갈 상점을 고르려고 간판을 보니 상표명은 하나도 없고 그림이며 조각들뿐이다.

문맹률이 높았던 중세시대, 사람들이 쉽게 상점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한 데서 유래한 전통이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국회의사당과 오페라극장 중 오페라극장 재건을 먼저 선택한 나라답게 거리 구석구석에 예술의 정취가 스며 있다. 저녁 일곱 시 무렵부터는 번화가에 위치한 상점조차 하나둘씩 문을 닫아 관광지답지 않은 한적함도 느낄 수 있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마을의 모습

사람들이 체코 프라하에 열광하는 이유

마지막 여행지는 다시 체코의 프라하. 긴 거리를 달려온 탓에 야경 관광부터 시작한 것이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 됐다. 카를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프라하의 야경은 신혼부부들이, 사진작가들이, 드라마를 만드는 방송국들이 왜 프라하를 선호하는지를 자동적으로 설명해 준다.

부다페스트의 야경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핑크빛 석양과 함께 폭발하고 있다. 같은 다리 위에서 같은 풍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낯선 이방인과 동질감을 느끼게 될 정도다. 동유럽에서의 마지막 야경이 평생의 추억을 예고하며 천천히 저물어 간다.

체코 프라하 카를 다리에서 바라본 야경

마지막 날 바라본 프라하의 낮 풍경은 야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시 내의 기차인 트라미(트램) 안은 물론이고 식당 안에서조차도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할 정도다. 거리에는 젊은 나이의 걸인들도 상당히 많다.

프라하 성안의 최대 볼거리인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다. 이 성당이 완성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600년. 전체 길이 124m, 너비 60m, 높이 100m에 이르는 이 걸작이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픈 관광객의 마지막 발걸음을 붙잡는다.

성 밖으로 나와 향한 곳은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 벨벳혁명, 슬로바키아와의 분리 선언 등 체코 현대사의 주 무대가 된 곳이다. 발걸음을 옮겨 구시가지에서 28초간의 시계 쇼를 본 뒤 전날의 야경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카를 다리를 건넌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창밖 풍경 속에 다시 한 번 삼성의 갤럭시S4 광고 현수막이 나풀거린다.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의 체코 진출은 이곳의 교민 숫자를 폭증시켜 현재 체코에는 1,400~1,500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다. 체코의 인구와 면적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은 숫자다. 체코 공항의 한글 안내를 이제야 이해하는 기분으로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역시 제1·2차 세계대전이었다.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폴란드 같은 곳도 있고 곧바로 항복을 선언한 덕(?)에 상흔이 거의 남지 않은 체코 같은 나라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에서든 각자 나름대로 상처에 대응하는 과정을 찾아낼 수 있다. 그 관찰 역시 이번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야경 역시 동유럽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고 문화유산과 소매치기가 공존하며 짠 음식과 시원한 맥주가 공존하는 곳. 미묘한 불균형의 공백을 자기만의 상념으로 채워가는 경험이야말로 10시간의 비행과 7시간의 시차를 감수하고도 기꺼이 동유럽으로 떠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글/사진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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