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뺨치던 암표상의 추억
평론가 뺨치던 암표상의 추억
  • 미래한국
  • 승인 2013.08.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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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說과 口樂


한국영화가 호시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시장점유율이나 매출규모로 따져도 외국영화를 제치고 앞장을 선다. 그래도 영화관 앞에 길게 줄을 서거나 그 앞에 ‘만원사례’ 같은 간판을 붙이는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통한 전국 동시 상영이 일반화하고 예매 시스템이 활용되면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영화관 앞에서 서성이며 은밀하게 ‘표 있어요!’를 속삭이며 다가가던 암표상들도 사라졌다.

암표상의 감각은 거의 제갈공명 수준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평가는 쉽다.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든 가능하다. 흥행결과는 특히 더 분명하다.

그러나 암표상들은 미리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를 버리고 허접한 작품을 골랐다가는 완전히 허탕치는 장사를 해야 한다. 두어번만 허탕쳐도 그나마의 사업 기반을 다 날려야 한다. 어느 영화가 성공할지 귀신도 알 수 없는 일을 미리 판단해야 한다.

다음은 표를 확보하는 일이다. 영화관 매표원들과 사전에 동업관계를 만들어 둬야 한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의 표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암표상들의 판매 상품은 그야말로 표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구하느냐 문제는 중요하다. 표를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다음 단계의 판단은 ‘도대체 몇 장이 적당한 수준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암표상들의 영업 시간은 극히 짧다. 영화 시작하기 전 30분 정도가 고작이다. 100장을 구해놨는데 30장 밖에 팔지 못하면 나머지 70장은 휴지조각이 되고 고스란히 손해로 되돌아온다.

반대로 100장을 팔 수 있는데도 30장 밖에 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수익을 놓치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에 적절히 팔 수 있는 양을 가늠하는 것은 성공할 영화를 미리 점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누구에게 표를 팔아야 할까? 구매자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노련한 경험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표를 사지도 않을 손님과 흥정을 하며 시간을 버리다가는 다른 표도 팔지 못한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구매자를 선택하고 구입을 설득해야 한다.

우선대상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온 남자 손님이다. 웬만큼 비싼 값을 붙여도 군말 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여자 친구 앞에서 쪼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마초’의 허세를 자극하는 것이다. 가격은 시작시간이 멀수록, 영화의 인기가 높을수록 비싸고, 상영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가격은 내려간다.

처음에는 암표상들이 주도권을 쥐고 가격을 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세는 다급해진다. 상영 시작 시간이 되면 암표 가격은 의미가 없어진다. 원래 가격이나 암표가격이 같아질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내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표상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표를 처분해야 손해를 덜 보는 것이다. 영화 시작 후에도 손에 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사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암표상들이 얄미운 존재들이지만 제작자나 극장 입장에서는 반가운 손님 같기도 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정상 가격에 살 수 있는 표를 미리 빼돌려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니 요즘 말로 하면 심각한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제작자나 극장 입장에서는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암표상들이 따라 붙었다는 것은 그 영화가 재미 있고 인기가 높다는 것을 과시하는 증명이다. 한국영화의 호시절 속에서 옛날의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조희문 편집위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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