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왜 배신 당했나
보수주의는 왜 배신 당했나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8.0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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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골드워터의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읽고
 

2006년 1월 워싱턴 DC 외곽에 위치한 미국의 한 대표적인 보수주의 단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사무실에는 3명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한 명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처 영국 총리였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누구냐”고. 안내를 담당했던 여직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라고 대답했다.

발음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필자는 “누구라고요?”라고 다시 물었다. 20대 후반의 이 미국 아가씨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스타카토식으로 한 음절씩 끊어서 또박또박하게 “배.리.골.드.워.터”라고 발음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서 어색한 미소를 짓곤 한다.

골드워터도 모르면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이 어쩌고저쩌고 엉터리 영어 발음으로 떠들어대는 한 동양인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이는 마치 한국에 온 서양인이 한국 유교에 대해 공부하겠다면서, 이이(李珥)나 이황(李滉)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NLL 논쟁과 새누리당의 모습

최근 NLL 논쟁을 지켜보면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유를 수호하는 데 있어서 극단주의는 악(vice)이 아니고,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온건한 것은 덕(virtue)이 아니다”는 골드워터의 말이 떠올랐다.

골드워터는 미국 공화당 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인물이다.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골드워터는 민주당의 존슨 후보에게 남부 5개주와 고향 애리조나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패배하는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골드워터는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미국 보수주의 정치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아니 골드워터가 뿌린 보수주의 정치운동의 씨앗이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으로 꽃피웠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3단계 추진 로켓에 의해 발진돼 1980년대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으로 안정적 궤도에 오르게 된다. 첫째는 1955년 <내셔날 리뷰>(National Review)의 창간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소수 지식인들의 지적 운동에 불과했다.

그나마 경제적 보수주의, 전통주의적 보수주의, 반공적 보수주의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으며 심지어 일부에서는 보수주의란 용어 자체를 사용하기를 꺼려했다. 이런 와중 창간된 <내셔날 리뷰>는 이러한 보수주의 지식인 운동을 묶어내고 미국 지적 흐름에서 이단적 위치를 차지하던 미국 보수주의를 주류 흐름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1960년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의 결성이다. 이 조직을 통해 미국 보수주의는 젊은 피와 결합되면서 일부 지식인들의 서재에 존재하던 ‘지적 흐름’이 ‘운동’(movement)으로 발전되게 된다.

마지막 추진 로켓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정치세력화’였다. <내셔날 리뷰>로 지적 흐름을 형성하고 YAF을 통해 청년대중운동으로 전환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배리 골드워터라는 보수주의 정치인과의 만남을 통해 ‘정치세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1964년 미국 보수주의 운동 세력은 이른바 ‘리버럴 컨센세스’(Liberal Consensus)에 함몰돼 있던 미국 공화당을 보수주의 진영으로 견인해 냈던 것이다. 물론 표면상의 결과는 1964년 대선에서의 참패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공화당의 몰이념적 무사안일주의가 개선되고 ‘골드워터의 아이들’(the children of Goldwater)이라 불리는 훗날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의 중심세력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고전(古典)

1960년에 처음 발간된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의 원저자는 브렌트 보젤(Brent Bozell)로 알려졌는데 보젤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월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의 절친한 친구이자 매부(妹夫)이다.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을 재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골드워터를 ‘정치스타’로 만들었다.

이 책은 ‘인간의 본성’ 에 대한 논의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각각의 사람들은 ‘유일한 창조물’(unique creature)이며 인간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자신의 ‘개인적 영혼’(individual soul)이다. 인간을 무차별적 대중(undifferentiated mass)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고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간 본성의 경제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며 따라서 한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필요를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정치적 자유는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인간의 발전은 외부 세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발전에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독재자(autocrat) 뿐만 아니라 ‘민주적’ 자코뱅주의자들(‘democratic’ Jacobins)과도 전쟁 상태에 있어왔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 폭군(individual tyrants)은 물론 ‘대중들의 폭정’(a tyranny of the masses)에도 반대함을 분명히 있다.

최근 새누리당의 일부 전·현직 의원들의 NLL 관련 배신 발언에 대해 실망하거나 아니 분노한 보수진영 인사들이 많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을 욕하고만 있을 것인가? 이러한 언행의 근원을 살펴보면 보수진영을 경멸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양심이나 영혼보다는 대중적 인기와 표가 더 중요한 이들에게 보수진영은 위협적인 세력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다.

사실 필자가 더 분노를 느끼게 만든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이들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져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대다수(?) 의원들이다. 이들은 동료 의원들이 혈투를 벌이고 있어도, 아니 그 의원들에 대해 다른 동료(?) 의원이 등에 칼을 꽂아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이들에게 양심과 원칙이란 사치품일 뿐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기에 작년 대선 이후 잠시 미뤄졌던 보수진영의 정치 세력화 논의가 다시 재개될 때가 된 것 같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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