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과 욱일기, 흥분하면 지는 거다
망언과 욱일기, 흥분하면 지는 거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8.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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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일본의 이른바 망언은 대개 한일(韓日) 내지는 일중(日中) 사이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에 아소 다로(麻生太郞)가 그 차원을 글로벌로 끌어올리는 ‘작품’을 선보였다. “헌법 개정을 위해 독일 나치의 수법을 배우자”고 한 것이다.

일본이 뭐라 떠들고 한국 중국이 아무리 날카롭게 반응을 해도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입장에선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를 들먹이면 사태가 좀 달라진다. 유럽에서 누가 그런 발언을 했다가는 체포당하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유대인들의 분노야 당연하고, 독일의 입장에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 일이다. 나치한테 놀아난 양식 없는 바보 같은 놈들이라는 얘기가 되는 셈 아닌가?

미국도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혀를 차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미국은 제2의 이스라엘로 불릴 만큼 유대인들이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 유대인들에게 아소 다로의 말이 어떻게 들렸을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미국 LA에 본부를 둔 유대인 인권단체 ‘사이먼 위젠탈 센터’에서 날카로운 어조의 비판 성명이 나왔다. “도대체 어떤 수법이 나치로부터 배울 가치가 있느냐? 나치 독일의 등장이 세계를 2차 세계대전의 공포로 몰고 간 것을 아소 씨는 잊었느냐?”

‘사이먼 위젠탈 센터’, 실존인물(Simon Wiesenthal 1908~2005)의 이름을 땄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 곳곳을 전전하며 사선(死線)을 넘어온 인물이다. 일가친척 89명을 수용소에서 잃었으나 그 자신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그 뒤 남은 인생 전부를 나치 전범 추적과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에 바쳤다. 그가 법정에 세운 사람은 1100여 명. 살아생전 이미 전설이 됐고 생전인 1977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센터’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센터’는 유대인의 단순한 이익단체가 아니라 매우 강경하고 전투적인 ‘운동조직’이다. 아소 다로의 이번 발언은 이들 강경한 유대인 그룹들을 화나게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일본이 그렇게 새삼 상처를 할퀸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수준

사실 서구에서라면 ‘나치의 수법’ 운운은 상대를 몰아세우고 매도하기 위해서나 구사하는 논리일 것이다. 어떤 바보도 스스로 먼저 “우리는 나치의 수법을 배워야 한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2인자 그것도 이미 한 차례 총리까지 지낸 최고위급 정치인이라는 자가 앞장서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월간 ‘정론(正論)’ 최근호에서 미츠하시 다카아키(三橋貴明)라는 평론가가 한국에 대해 한마디 했다. “한국의 반일성향은 일본을 부러워하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이 무슨 소리를 하든 한국은 냉철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지적이야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반일성향이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일본의 논평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일본 문제와 관련해 우리로선 가장 걱정되는 대목은 열등감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우월감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를 빌자면 세계에서 일본을 가장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라고 하지 않나?

냉정히 말해 일본은 종합 국력에서 여전히 한국에 크게 앞서 있다. 잃어버린 10년 20년을 말하지만 역으로 보면 그 세월을 버텨올 만큼 일본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중들뿐만 아니라 책임 있는 엘리트층에서도 곧잘 일본을 얕잡아보곤 한다. 상대를 만만하게 보면 당사자만 손해다. 당연히 우리로선 고민꺼리지만 이번 아소 다로 발언을 보면 이유가 좀 헤아려진다. 경멸이다.

일본으로 인한 트라우마? 따지고 보면 부차적이다. 콤플렉스? 그런 것도 없다. 문제는 일본이 갖추고 있는 실력에 비해 전혀 존경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늘 일본을 좀 우습게 아는 우리 탓도 있겠지만 냉정히 말해 일본 탓이 워낙에 크다. 아소 다로의 발언은 뭐랄까? 망언이라기보다는 불쾌하면서도 뭔가 매우 덜 떨어진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나치를 배워라, 우린 미국을 배운다

위엄이 느껴지면 없는 실력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덩치 값은 커녕 한심한 느낌마저 주고 있으니 있는 실력마저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미츠하시 다카아키 씨를 걱정스럽게(?) 만들 만큼 일본을 감정적으로 대해선 안 될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아직 일본을 제압할 실력이 안 되니 때로는 굴욕을 감수하고 일본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꽤 속이 쓰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은혜’는 실력을 키워 나중에 ‘정중히’ 되갚아 주기로 하자! 일본은 나치의 수법을 배우는 데 관심이 많으니 우리는 나치를 때려잡은 미국의 수법을 잘 배우면 되지 않겠나?

8월 6일 산케이신문은 아베 내각이 이른바 ‘욱일기’ 사용을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기사에서 “상식을 일탈한 한국의 반일 풍조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 품새가 고약하지만 뒤집어보면 우리가 열만 받을 일도 아니다. 일본이 ‘견제’를 언급할 정도로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얘기이기도 한 것 아닌가? 이른바 한국의 반일풍조라는 게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님은 일본 자신이 잘 안다. 일본은 한국이 약할 때는 그야말로 ‘그러든가 말든가’였다. 그러나 이제는 축구장 소동에도 발끈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 일로 일본이 국제적으로는 얻을 게 없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얻을 게 분명하다. 주변국 특히 한국이 흥분해주면 그렇게 된다. 혐한감정을 자극해 내셔널리즘을 더 강화하고 재무장 개헌론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콤플렉스라면 지금은 확실히 일본 쪽이다. 예전에 하잘 것 없어 보이던 존재가 잘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개인이든 국가든 그런 반응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이러다 진짜로 뒤처지는 건 아닌지?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러기엔 갈 길이 아득하지만 일본은 민감하다. 그래서 이제는 한류 붐도 한국음식 유행도 마뜩치가 않다. 그게 혐한이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한일관계를 결정 지을 2개 기둥

일본이 민감하다 해서 굳이 할 말조차 안할 이유는 없다. 그런다고 좋아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쿨’할 필요가 있다. 산케이는 “미국은 욱일기에 항의는커녕 오히려 경의를 표한다”고 했지만 간지러운 얘기다.

미국의 태도는 ‘그냥 무시’라는 게 정확하다. 어차피 패배자의 깃발 아닌가? 욱일기 문제는 일본이 우리의 ‘스테레오타이프’한 반응을 기대하고 애써 우리를 도발하는 측면이 강하다. 거기에 말려들 이유가 있는가?

깃발을 더 세게 흔들어댄다고 국력이 갑자기 더 세지고 세계인들이 더 존경해 주는 게 아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더 실질적이 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에서 우리의 입지는 결국 두 가지, 첫째 우리 자신의 국력이 얼마나 강한가 둘째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 있다. 일본이 뭘 어떻게 하든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행보를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바로 일본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이다.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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