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한국이 이렇게 보인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이렇게 보인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3.08.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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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치가미 히사시 일본공보문화원장
일본공보문화원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원장

8월이다. 어김없이 한일관계가 뜨거워지는 시기다. 신문 지상은 ‘야스쿠니’와 ‘독도’로 다시 한 번 물든다. 기사를 읽는 한국인들 역시 한마음으로 흥분하게 된다.

최근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나치식 개헌’ 발언과 한일전 축구장 해프닝에 이은 일본장관의 ‘민도(民度)’ 발언으로 어느 때보다 국민감정이 불편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중국과는 정상회담을 했지만 일본과는 예정조차 없다. 전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좌도 우도, 보수도 진보도, 정부도 민간도 없는 이 ‘통일된 분노’가 일본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일본 정부는 우리 박근혜 정부의 외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래한국>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68주년일인 지난 8월 6일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원장을 만났다.

일본 외무성 최초로 한국과 중국의 일본대사관 공사(公使)를 모두 지낸 그는 ‘개인의 생각’이라며 내내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유창한 한국어로 두 나라의 간극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한국인들의 ‘사실’ vs 일본인들의 ‘사실’

- 민감한 시기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치가미 원장님은 80년대 외무성 관료로서 한국에서 공부했고 90년대 말에 다시 주한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2011년 세 번째로 한국에 부임해 오셨습니다. 최일선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해왔을 텐데 먼저 그동안 양국관계의 변화 과정에 대해 얘기를 해주시죠.

1984년에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 정치 등에 대해 잘 몰랐고요. 그에 반해 한국 분들은 일본을 알고 있는 편이었죠.

그런데 25년 이상 지나면서 변화가 감지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마치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일본이 일본이다’랄까, 실제 일본이 어떤가 보다도 ‘우리의 정서’가 우선되는 양상조차 보입니다.

일본의 일반 국민이 그것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좁은 민족주의는 어느 나라에도 있겠지만, 양국의 정부나 미디어가 그것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컨트롤하며 좋은 방향으로 지성적으로 조언하고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일본에 대한 실제가 아닌 오해로서 대표적인 사례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일본정부는 역사를 외면한다’ ‘위안부 문제나 난징사건을 부정한다’는 지적은 전혀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 비판은 좋으나 먼저 사실, 팩트(fact)를 보아 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 일본이 군대 보유나 헌법 개정 움직임 등 상당히 오른쪽으로 가고 있고, 그래서 한국이나 주변국들이 일본의 극우화를 우려하는 건 ‘팩트’와 차이가 있나요.

한국 분들이 자국을 기준으로 일본을 보시면 크게 다를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국민의례를 하죠. ‘나는 자랑스러운…조국과 민족의…’ 이것은 전후 일본에는 없었습니다. 매우 위험한 국가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년 시절에는 국가 안보, 애국이란 말도 위험한 우익 반동이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국가, 민족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 교육도 해온 한국과 대조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평화주의의 이상은 매우 좋은데, 반면에 냉전시대의 분쟁, 대립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한국보다 중국이나 북한에 친근감이 강한 사람이 많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그 후 많이 개선되고 현실화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 계승”

- 일본이 철저한 평화주의에서 현실감각을 찾고 있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관점인데요.

한국 분들이 혹시나 일본이 ‘원래 오른쪽에 있던 나라가 더 오른쪽으로 가면서 위험한 나라가 돼간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이 바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날인데, 전후 일본이 어떤 나라였는가, 그 기본을 잘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아들, 남편들이 많이 전사한 데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가 ‘불바다’가 되거나 원폭 피해까지 입었습니다. 일본이 일대 전환점을 거쳐 철저한 평화와 경제 발전 쪽으로 갔던 것입니다.

좋은 방향이었지만 부작용이 있었고, 6·25 전쟁 당시 한국을 ‘전쟁하는 나라’ ‘무서운 나라’로 바라봤을 정도입니다. 자유 진영을 사수해준 것이지만, 그런 시각은 적었습니다. 심한 얘기라고 보시죠.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일본은 그 후 변화해 안보 의식이나 현실적인 국제 감각이 어느 정도 향상됐습니다. ‘우익’이 돼가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앞으로도 평화를 사랑하고 남의 아픔을 아는 나라일 것입니다.

- 50년대 이후 보수 자민당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는 좌경화, 평화 최우선주의 분위기였다는 말이 다시 한 번 주목됩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은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용인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유민주주의 나라인 만큼 여러 가지 목소리,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단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관된 역사 인식은 무엇입니까.

1995년 무라야마 수상 담화가 제일 알려져 있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으며,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내용입니다. 고이즈미 수상도 비슷한 표현의 담화를 냈습니다.

-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마음이 아닐 것이라는 보도가 최근 있었습니다.

수상 본인께서 5월 15일 국회 답변에서 역대 정부의 입장 전체를 계승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원장님은 역사 인식의 기본문제에 대해 최근 한국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우리 독자에게도 설명해 주시지요.

‘역사는 기억에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역사 인식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글러크(Gluck) 교수의 말씀인데요.

그 분에 의하면, 전승국도 패전국도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인 기억, ‘민족의 스토리’가 앞서 나라에 따라서는 그것을 학교 교육에서도 주입한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이런 민족의 스토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는 국민정서와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역사를 민족주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점이 아닐까요. 유럽에서 역사 교과서 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것도 각국에 이와 같은 공통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죠.

- 그렇다면 일본의 ‘역사’와 ‘기억’의 구분은 어디까지인지, ‘전후 일본은 철저한 평화주의 나라가 됐다’ 이 말이 핵심인 듯한데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시지요.

전후 일본은 누구 못지않게 전쟁을 미워하며 전쟁에 이른 길을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국가나 민족에 등을 돌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소련이 만일 침공해오면 항복하자는 ‘적기(赤旗) 항복론’까지 있었고, 나라를 지켜주는 자위대를 나쁘게 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런 지나친 경향을 수정하고 80년대, 90년 전후부터 안보문제나 한반도의 현실을 똑바로 보는 자세가 강해졌습니다.

“DJ 진보 정부도 중시하던 한미일 관계는 지금 어디에?”

- 최근 한국의 외교, 안보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80년대 한국 분들로부터 ‘한반도 안보는 한미동맹뿐 아니라 미일동맹이 있어야 충분한 태세가 된다’ ‘긴급사태는 어떻게든지 막아야 하지만 만일의 경우 물자도 인원도 일본의 미군 기지를 경유해서 한국에 올 것’이라고 자주 들었습니다.

그 때 제가 들은 한반도 안보는 지금도 같은 구도일 텐데요. 한중미 협력 얘기는 좋지만, 안보라는 것은 나라의 기둥이라 쉽게 흔들면 안 될 것이죠. 미국과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말은 김대중 대통령 때도 당연한 얘기였는데, 요즘은 다른 분위기도 있는 듯합니다.

- 최근 ‘욱일기’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욱일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군국주의의 상징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한국의 몇몇 신문 기사에서도 보듯이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정기 넘치는 아침의 태양’에 불과합니다. 진보적인 아사히신문의 사기(社旗)도 욱일기 문양을 쓰고 있습니다.

- 베이징에서도 공사로 근무하셨습니다. 중국에 대한 외교는 한일 양국에 매우 중요하지 않습니까.

네, 매우 중요합니다. 살아보니 중국의 엘리트들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중국도 잘 된다는 합리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대두하는 중국이 힘으로 동아시아의 현실을 바꾸려고 하는 측면도 있다고 해서 필리핀, 베트남 등 아세안 각국, 그리고 인도, 미국, 일본 등이 우려나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동아시아의 큰 구도일 것이고요.

아세안 각국은 경제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깊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외교안보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긴밀히 공조하면서 의연한 대중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한일축제한마당 행사의 한일 양국 참가자들

- 원장님은 일본공보문화원에서 문화교류나 학생교류를 통해 상호이해 증진에 진력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업무인데요, 그것을 통해 느끼는 소감을 말씀해 주시지요.

보람이 큽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도 착실히 한걸음씩 한일 양측의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사이에는 미디어나 인터넷 또는 관광 여행을 통해 정보량이 넘쳐서 서로 잘 안다는 느낌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웃 나라일수록 부정적인 이미지나 부정확한 얘기를 많이 접하게 돼 선입견을 갖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이웃 나라에 훌륭한 문화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편견이 그만큼 뿌리 깊은 셈이죠. 그러니까 우리의 교류 업무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 마지막으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양국은 산적한 현안들,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등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오늘 내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양국 다 국민감정이 고조(escalation)되지 않도록 컨트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 나라 다 큰 손실이 초래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안보, 중국, 역사의 세 가지 요소로 한국의 일본 인식의 과제를 지적했습니다. 일본도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많습니다만 희망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 대학생들을 많이 만나는데, 좁은 시각의 민족주의는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열린 눈을 지닌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선입견이 아닌 사실을 직시하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경의를 서로 잊지 않도록 합시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은 매일 우리가 땀 흘려 만드는 것이니, 10년 후에는 오늘 일도 역사가 돼 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양쪽에 필요할 것입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사진/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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