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가는 길
일본이 가는 길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8.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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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과 국수주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이러한 국내 여론에 일부 일본 정치인들과 우익인사들이 다시 비난으로 대응하면서 한일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나치 개헌론’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독일에서 마저 강력한 비난을 사서 아베 신조 총리의 운신을 더 좁혀놓았다. 도대체 일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은 과거와 같은 ‘대동아공영권’ 재건을 꿈꾸는 것일까.

그런데 막상 일본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일본 대응 여론을 ‘지나치다’라고 이야기한다. 일본과 일본 국민들에 대해 너무 단선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일본을 너무 극단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헌법 개정이라는 말이 나오면 ‘일본이 군국주의로 흐른다’고 우려하는데 50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쟁 포기를 선언한 헌법 9조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조차도 군국주의와 징병제에 대해선 대부분 반대한다. 조금 냉정하게 일본의 움직임을 봐 줬으면 한다.”

도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中京대 종합정책학부 사토 아키히로 교수는 일본의 국수주의화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이지만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 상황이 우리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과거의 ‘대동아공영 재건’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토 교수는 먼저 북한과 중국의 존재가 일본의 국수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위협’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북한 핵미사일과 중국의 세력 확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런 분위기가 일본 우익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사토 교수는 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일본 국수주의화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일본내에서도 소득 격차가 커지고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는데 그런 불만이 쌓이면 내셔널리즘이 일어나기 쉽다는 이야기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과 국교를 단절해도 좋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라고 말한다.

동아시아 문제에 정통한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빅터 차 교수는 최근 여러 강연회와 기고문에서 “아베 내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역사 문제에서 우경화 입장을 밀고 나가거나 과거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행태를 보일 것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한 뒤, “많은 사람의 관측과 달리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군사력 증강

빅터 차 교수는 아베의 정책 우선순위에 들어 있는 중요한 문제를 국방으로 지적한다. 그는 “일본은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야 할 영역으로 강화된 해군력, 무인정찰기, 미사일방어망, 자율적 공격능력 등을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본 집단 자위권의 성격을 규정하며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궁극적으로 한국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주장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빅터 차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에 한국은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중개하에 일본과 적극적인 군사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일본 군사력 증강은 한국의 안보와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미·일간의 대화 채널을 저극 가동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토 아키히로 교수가 일본의 입장에 서 있다면 빅터 차 교수는 그러한 일본에 한국이 대응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은 어떨까.

이 문제에 관해 정통한 견해를 갖고 있는 전문가가 있다. 바로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전 NSC 아시아 국장이 그 주인공이다. 마이클 그린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성향의 동아시아 전문가로서 현재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일본실장이자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해 국내 반전 평화단체인 ‘평화네트워크’가 동아시아 전문가들을 차례로 기획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마이클 그린의 주장은 미국의 입장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견해로 평가됐다.

그는 한마디로 지금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우경화’가 아니라 ‘보수화’이며 이는 일본이 자기 방어권을 가진 ‘보통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해설한다.

마이클 그린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며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중국과는 서로 협력과 길항의 관계인 동시에 북한과는 적대적 관계임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동아시아 질서는 과거 냉전과는 다른 질서다. 오히려 세력균형을 통해 과거 냉전시기 보다 국지전이 없는 평화가 더 잘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 마이클 그린의 시각이다.

그러한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이 인도네시아보다 적은 국방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이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군사력을 확충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집단 안보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기 원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마이클 그린 역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한국이 우려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본은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한국에 적대적 행위를 가함으로써 한국이 중국 쪽에 기울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고 못박는다.

그는 “만일 중국이 센카쿠열도에서 중국 함정을 진입시킨다면 일본은 해군력을 동원해 교전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독도에 해군 함정을 보낸다고 해서 일본이 이에 맞서 해군력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일본은 중국과 무력으로 맞서더라도 한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이유도 힘도 없다는 이야기다. 바로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미국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아베 내각의 신사참배와 침략 부정과 같은 일련의 국수주의 경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고 있을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력한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해 8월 미일동맹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조셉 나이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아시아담당 국장, 빅터 차 CSIS 한국 국장 등 미 외교가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든 이 보고서는 일본이 당면한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일본이 당면한 문제들

보고서는 ‘일본은 지금 일류국가로 존속하느냐 아니면 이류국가로 떠내려 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출생률 감소, 200%에 달하는 GDP 대비 부채 비율, 6년 간 6명의 총리가 왔다갔다하는 정치적 불안정,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한 비관주의와 내부지향적 태도로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글로벌 비전을 갖고 국제이슈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류국가로 존속할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워싱턴 DC를 방문한 아베 총리는 CSIS에서 이 보고서를 일컬으며 “일본은 이류국가가 결코 되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돌아온 것처럼 일본도 돌아올 것”라고 강조했다.

CSIS 보고서가 일본이 일류국가로 존속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제안한 내용 중 하나에 일본은 민감한 역사적 이슈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를 훼손시키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즉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력이 북한의 핵위협을 억지하고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최적의 환경일 뿐 아니라 해외개발 원조 등 국제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던 것.

보고서는 이를 위해 “한일 양국이 역사적 이슈로 인한 긴장으로 정작 중요한 국제안보 이슈에 힘을 모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는 한미일 3국이 별도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슈를 해결하도록 하는 등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일본 아베 내각의 망언들에 대해 공개적인 코멘트를 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아베 내각의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동북아에 큰 논란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해 아베 내각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불편해하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베 내각이 현재와 같은 망언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은 미국의 여론이 아베 내각의 반역사적 태도에 대해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월 아베 총리의 2차대전 전범 옹호 취지의 발언에 대해 “아베 총리의 ‘역사적 상대주의’ 발언은 미국 진주만 공습, 필리핀의 ‘바탄 죽음의 행진’, 중국 난징대학살 등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경악하게 할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잔혹 행위를 오래 전 용서하긴 했으나 결코 잊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방향 결정할 것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날 사설에서 “한국·중국은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격분하고 있으며 이는 이해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역사는 물론 늘 재해석되곤 하나 사실(fact)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개헌에 나치의 수법을 활용하면 어떻겠는가’라고 했던 아소 다로 부총리의 발언은 결정적으로 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공분마저 초래했다.

독일과 유럽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비난이 연이어 터져 나오자 아소 다로는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분위기는 아베 총리로 하여금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는 전망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국수주의는 다분히 일본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성향을 띠고 있다. “과거 일본의 국수주의는 일본인들의 자신감에서 비롯됐지만 지금의 국수주의는 열패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토 아키히로 교수의 진단은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 정계의 망언과 내셔널리즘은 향후 아베 내각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 부흥과 개혁의 결과가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자민당과 연정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공명당이 아베 총리의 평화헌법 개헌과 군사력 증강에 마냥 지지를 보내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베의 자민당은 단독으로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으며 야마구치 공명당 당수는 참의원 선거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며 “개헌과 같은 문제보다도 국민 생활과 경제에 신경을 쓰는 것이 먼저”라고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가 결국 경제문제에 실패할 경우 공명당 역시 동반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문제로부터 아베 총리는 경제개혁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 현재 200%를 넘는 국가부채는 일본 소비와 투자를 짓누르고 있으며 중앙은행을 통한 부실기업 채권 매입은 일본 국채의 신인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IMF와 국제 투자기관들은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10년만기 국채 금리는 참의원 선거전 0.5% 정도수준이었으나 최근 아베노믹스로 인해 금리가 상승하여 8월 7일 현재 0.765%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국채의 금리가 치솟는다는 것은 그 만큼 국채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야기가 되고 일본 국가 신인도에 그만큼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 정부가 과도하게 시중에 돈을 풀어댔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베 내각은 정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세 인상을 히든 카드로 꺼내들었다. 동시에 경제특구와 연금개혁 등 사회보장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 국민들이 그러한 경제개혁의 고통을 인내해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아베노믹스가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아베 총리는 개헌에 보다 박차를 가하겠지만 지금처럼 국수주의적인 발언을 통해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려 할 것으로는 전망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경우 그 여파는 미국의 리먼사태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그렇게 되면 아베 총리는 물론이고 일본과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과 유럽이 모두 불황의 허약한 상태이고 중국마저 경착륙 우려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세계 경제 2위인 일본의 아베노믹스 실패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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