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COI 한국 방문, 북한인권 공개 청문회 최초 개최
유엔 COI 한국 방문, 북한인권 공개 청문회 최초 개최
  • 김민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3.08.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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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비 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COI위원들이 증언을 경청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 문제를 조사 중인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지난 8월 20일부터 5일 간 서울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공개 청문회를 진행했다. 유엔이 북한인권 문제로 청문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제22차 유엔인권이사회(UNHCR) 본회의에서 통과돼 시작된 북한 COI는 현장 방문과 증언 청취 등을 통해 2014년 3월 최종 보고서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마이클 커비 위원장(전 호주 대법관)을 비롯한 마르주키 다루스만(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소냐 비세르코(세르비아 인권 운동가) 등 COI 위원들이 참여해 탈북민 증인들과 질의응답을 벌인 이번 공개 청문회도 이런 조사 활동의 일환이다. 북한 COI에 따르면 북한 측에도 방문 조사를 요청했으나 거부된 상황이다.

공개 청문회 사흘째인 지난 22일 오전에는 지난 2001년 9월 한국에 입국한 32세 청년 탈북민 김혁 씨의 면담이 진행됐다. 김 씨는 북한에서 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꽃제비 생활과 고아원을 전전하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 온 게 발각돼 3년 동안 함경북도에 있는 12호 교화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탈북민이다.

김 씨는 고아원 생활에 대해 “97년 여름 기아 상황이 심각해 고아원의 아이들 70여명 가운데 24명이 열병, 폐결핵 등으로 죽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교화소 경험에 대해선 “24명이 잡혀가서 단 2명만 살아남았다”며 “교화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마뱀, 쥐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주변의 풀을 뜯어 먹었다”고 밝혔다.

증언중인 꽃제비 출신 탈북민 김혁 씨(좌)

김 씨는 또 “95~96년 북한에선 최악의 기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위성사진을 보면 청진 주변의 산이 모두 묘지로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교화소에서 나온 후 살기 위해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개 청문회는 김 씨의 전반적인 경험담을 듣고 위원들이 1대1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대법관 출신인 커비 위원장은 보고서에 명문화하기 위해 시기와 장소, 전후 상황 등을 꼼꼼하게 질문했다.

예컨대 고아원장의 이름이나 간부들의 생활 수준, 재판진의 구성, 변호인의 역할, 구체적인 죄목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특히 ‘꽃제비가 된 이유가 기아 때문인지, 가정 불화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북한 정권이 꽃제비들의 교화를 위해 지원을 한 것은 없는지’ ‘왜 교화소 내에서 저항을 하지 않았는지’ 등을 질문하며 혹시 증언에 허점이 없는지도 확인 과정을 거쳤다.

조사 이후 ICC 회부 가능

김혁 씨는 면담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얘기 도중 흐름이 끊겨서 고문 받았던 경험을 자세히 말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실제 교화소에서 인간 이하의 고문과 대우를 받으면서 만약에 살아남으면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토로했다.

유엔 북한 COI는 조사 결과에 따라 북한 정권 주요 인사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수 있어 기존 선언적 북한인권보고서와는 다른 실질적 압박이 따르게 된다. 실제로 COI 조사 이후 리비아의 카다피가 2011년 ICC에 제소된 사례가 있다.

신임 인권대사 이정훈 연세대 교수는 “청문회를 보면 조사위원들이 증언자들에게 반 인도주의적 범죄 행위를 저지른 관련자들의 실명을 꼼꼼히 확인한다”며 “실제로 유엔에서 가해자나 범죄자로 본인 이름이 명시된 보고서가 채택이 된다면 행동에 많은 제약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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