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가지략센터로 환골탈태하라
국정원, 국가지략센터로 환골탈태하라
  • 미래한국
  • 승인 2013.08.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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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병호 울산대 초빙교수‧前 안기부 차장


“과거의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으로 되돌려 기본이 바로 선 국가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나서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68주년 경축식 축사에서 밝힌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나라의 기본을 흔드는 비정상적인 잘못된 관행과 제도가 뻔히 보이는 데도 방치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중 국가정보원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는 최근 사태도 잘못된 관행을 오랫동안 방치해온 대표적 케이스의 하나다. 따라서 국정원은 ‘기본’을 바로 세우는 국정기조를 적용할 구체적 대상 제1순위다.

정보 업무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고도로 프로화돼 있는 전문 영역의 업무다. 그런데 그동안 국정원의 경우 특히 인사분야에서 이 자명한 기본원칙이 훼손되는 관행이 지속적으로 자행돼 왔다. 야구팀 감독이 훌륭하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축구팀 감독으로 부임한다면 그 축구팀이 온전히 운영될 리 없다.

역대 정부는 이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아랑곳 하지 않는 인사 관행을 국정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시행해 왔다. 경제부처는 경제전문가로, 국방부는 군 출신 전문가로 지휘를 맡기면서 국정원은 대통령 측근이면 아무나 맡아도 된다는 행태를 견지해 왔다.

국가정보(National Intelligence)란 국가안위 정보다. 일반 정부부처의 일반정책 수립에 유용한 정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안위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확보키 위해 도청, 매수, 절취 등 특수한 방법이 총동원된다. 국정원은 바로 이러한 특수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라고 마련된 국가적 장치다. 다양한 국가이익 중에서 국가생존이익(national survival interest)은 어떤 방법을 쓰든 반드시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생존 이익을 다루는 정보기관

냉전이 끝나자 미국 CIA의 역할을 경제정보로 확대하자는 주장이 한때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CIA 직원이 GM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 수는 없다는 반박 논리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경제적 국가이익 확보가 중요한 일이긴 해도 국가 존망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한 정보기관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는 대통령 외교 성과와 4대강 홍보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정보업무 본질과 기본의 분명한 일탈이다. 정보기관 수장이 국가정보 운영의 기초적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국정원 운영이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작금의 국정원 사태는 바로 이와 같이 정보기관 운영의 기본을 오랫동안 등한시한 부실한 운영이 정치권의 빌미가 돼 전개된 한편의 저질 정치 드라마다.

국정원 개혁은 그간 등한시 해온 국가정보의 개념과 국정원 업무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정원 국내파트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조직 개편에 앞서 ‘국정원의 기본’ 즉 국가안보를 위한 프로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것이 먼저라는 의미다.

그 바탕 위에서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 자연히 일반 정책 정보에 손을 대는 관행도 사라지고 동시에 정치 개입 시비 여지도 근본적으로 차단된다. 워터게이트사건 직후 1975년 미 의회는 프랑크 처치위원회를 발족시켜 CIA 불법 활동을 낱낱이 조사했다.

이에 대해 사무엘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는 이렇게 비판했다. “처치위원회는 CIA 활동의 부도덕성(immorality)에만 초점을 맞춰 조사 활동을 벌였다. 장차 미국이 직면할 국가정보 소요에 대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국정원의 개혁은 헌팅턴 교수의 지적처럼 앞으로 우리나라가 직면할 정보적 도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감당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미래지향적 개혁이어야 한다. 국정원이 앞으로 직면할 정보적 도전은 실로 막중하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 때 완성된다.”

박 대통령 8‧15 경축사의 또 다른 구절이다. 남북관계에서 우리 군의 역할은 전쟁 억지다. 말하자면 현상유지 정책수행 기능이다. 반면 통일은 자유민주적 통일 여건을 확충해 나가는 공세적 작업을 통해 이뤄내야 하는 현상 타파의 과제다. 국정원만이 주도적으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대북기능이다.

한반도 주변 국제질서의 재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 속에서 통일의 기회가 움트고 있다. 이 기회를 낚아채기 위한 국가정보 역량 강화는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특히 국정원의 국가정보 종합판단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 시키는 방안 강구가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가 수준의 안보문제 싱크탱크가 부재한 실정이다.

강하고 예리하고 현명한 일류 정보기관의 꿈

학계나 정부부처별로 싱크탱크는 산재하지만 이들의 지혜를 흡수 융합해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이 때문에 국정원의 정보판단능력의 획기적 제고가 절실하다.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의 모토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라는 성경 구절이다.

국정원은 이번 시련을 계기로 단순히 간첩을 잡는 기능 차원을 초월하는 박 대통령이 지적한 ‘진정한 광복’을 위한 ‘국가지략센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강하고 예리하며 현명한 (Strong, Sharp, Smart) 3S의 일류 정보기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이 국정원에 대해 거는 진정한 기대다.

이를 위해 여야 정치권도 백해무익한 정치개입 시비 소동을 접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정원의 강화를 통한 ‘기본이 바로 선 국가 만들기’는 국가안위에 직결된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주미 대사관 공사
주 말레이시아 대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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