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의 카리스마를 사랑한 남자
총의 카리스마를 사랑한 남자
  • 미래한국
  • 승인 2013.08.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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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총 마니아 김명환 기자
브라우닝 하이파워 권총의 플래스틱 모델을 들고 있는 김명환 실장

지난 8월 14일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휴전 그리고 대한민국 60년’ 행사의 일환인 ‘공동경비구역(JSA) 포토 존’ 이벤트. 실제 현역 경비병 2명이 경계를 서는 포즈로 있으면 관람객들이 와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군화부터 벨트, 철모까지 실제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총이 문제였다. 경비병들이 차는 K5 권총이 있어야 하는데 부대 밖으로 갖고 나갈 수 없었다. 난감해진 주최 측. 이들이 찾은 곳은 무슨 연구소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표적 총기 마니아 중 한 사람인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 김명환 실장이었다.

김 실장은 사정을 듣고 최대한 비슷한 모델을 추천했다. 권총집 안에 있는 것이니 손잡이 부분이 흡사하면 됐다. 그게 ‘베레타 M84’ 모델이다. 김 실장은 마침 본인이 갖고 있던 베레타 M84 에어소프트건(일종의 성인용 장난감)을 빌려줘 박물관측의 고민을 해결해 줬다.

지난 20년 간 마니아로서 총기를 연구하고 장난감 총을 수집해 온 김명환 실장은 사실 조선일보에서 더 많은 시간 동안 주로 영화를 담당해 온 문화 전문기자다.

덕분에 기사로서 영화평을 쓰는 일 외에 틈틈이 총기 관련 컨설팅으로 영화계를 돕기도 했다. 본인을 “우리나라 신문기자 중에 총기에 대해 제법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평한 김명환 실장을 만나 총과 영화에 빠진 20년을 들어봤다.

- 기자일도 바쁘실 텐데 언제부터 총기에 관심을 가졌나요?

영화 전문기자로서 지적 관심을 갖게 된 게 출발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총기가 워낙 많이 나오잖아요. 하나 정도 내 분야를 만들고 싶기도 했죠. 일례로 영화 <레옹>에선 총기가 24가지가 나와요. 이걸 어느 장면에 뭐가 나왔는데 여기엔 이런저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는 식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지식은 세계 수준인데 총에 대해서는 오류가 많아요.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경찰이 수사 결과 발표할 때 모델명도 없이 그저 ‘45구경 권총’이라 해도 그런가보다 하면서 어떤 총인지도 궁금해 하지 않거든요. 전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단지 총이 아름다워서 좋았을 뿐

- 도대체 총의 무엇이 매력적으로 느끼셨습니까. 실제로 사격도 하시나요?

전 그저 총에 대한 지식을 알아가는 게 좋고, 디자인에서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총 자체의 카리스마에 감탄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지금은 국립기관이나 영화사에 조언할 정도의 수준까지 됐네요.

그런데 정작 사냥 같은 총기 사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파리 하나 못 죽이거든요. 가지고 있는 몇 자루 비비탄 장난감 총들은 아까워서라도 사용할 수 없어요. 비비탄을 발사하면 내부가 닳거든요. 전 컬렉터로서 보기만 해요.

- 장난감 총 컬렉션 규모가 제법 되겠습니다.

세어 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상당 부분은 유치한 수준이에요. 우리나라는 실물과 혼동될 우려가 있는 모의총포는 법으로 규제하거든요.

물총이나 딱총 같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옛날 장난감 총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 군인이 사용하는 총들을 본딴 장난감 총 등을 모았어요. 나중에 희귀 컬렉션을 좀 더 보강해서 장난감 총 전시관을 여는 게 꿈이에요. 파주 헤이리에 가보면 다양한 박물관이 있잖아요.

- 총기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 전문가로서도 활동하신다면서요.

전에는 개인적인 관심에 불과했는데 3~4년 전부터 전시회 같은 일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DMZ 관련 전시회를 하는데 적합한 총기의 종류를 추천해 주고 제가 갖고 있던 장난감총을 대여해 줬어요. 그리고 2011년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일제시대관을 오픈하는데 총기 관련 컨설턴트 역할을 했고요.

- 모은 장난감총 중 특별히 관심가는 애장품이 있나요?

스토리가 있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골동품 취급하는 분에게 어렵게 구한 북한 물총이 있어요. 레어템이죠. 이름은 다람이 물권총이에요. 캐릭터로 다람쥐가 그려져 있고요. 이걸 보면 북한 군대는 민첩한 다람쥐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2차 대전 때 미군이 유럽의 독일군 점령지대에 비행기로 살포한 리버레이터라는 권총이 있어요. 레지스탕스 지원용이었죠. 그런데 혹시 독일군 손에 들어가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조잡하게 만들었는데 성능이 너무 조악해서 결과적으로 레지스탕스들도 그 권총을 쓰지 않았대요. 그게 결국 레어템이 된 것이죠. 전 인터넷으로 이 역사적 모델의 플래스틱 모형을 구입했어요.

- 마니아로서 어떤 총을 최고로 평가하세요?

아마 많은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는 것은 1947년에 개발된 소련의 AK-47 소총일 겁니다. 화약을 탄피에 채워넣는 방식의 근대 총 역사는 한 160년 정도 됐을 거예요. 이 중에 최고의 히트작이 AK-47입니다. 현재까지 9000만정 정도가 제작된 것으로 추산되고 지금도 사용됩니다.

- 우리나라 개인화기 수준은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미국의 M16을 쓰다가 자체 생산한 소총 K2로 교체했죠. M16은 일반적 환경에서 정밀도는 최고예요. 그런데 너무 정밀하게 만들어서인지 밀림 같은 거친 환경에서 약점을 드러냅니다.

과거 베트남전에서 M16이 갑자기 작동이 안 돼 낭패를 겪었던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AK-47은 신기할 정도로 내구성이 강합니다. K2는 M16과 AK-47의 장점을 믹스해 사격성과 내구성을 조화시켰어요. 결론적으로 성공작입니다.

- 영화기자를 오래하셨으니 영화와 총에 대한 일화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96년 영화팀장을 할 때였어요. 당시 할리우드 영화 <브로큰애로우> 홍보를 위해 내한한 오우삼 감독을 단독 인터뷰한 경험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우삼 감독은 <영웅본색> 등 영화 속에서 총기 사용을 가장 적절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만나게 돼 반가웠어요.

그래서 오우삼 감독에게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들고 나왔던 권총 ‘베레타M92’와 브로큰애로우에서 존 트라볼타가 권총으로 여자 주인공을 위협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베레타M93R’이 최고였다고 극찬했죠. 그랬더니 어떻게 권총명을 정확히 꿰고 있느냐며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꽤 친해졌어요. 오우삼 감독이 그 후 10년 동안 매년 1월 1일 연하장을 보내 왔어요.

- 영화에는 총이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데요. 적절하게 사용된 예를 총과 영화의 전문가로서 소개해 주시죠.

사실 영화 속의 총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고정 칼럼을 하나 만들기도 했어요. 물론 영화 속의 다른 물건도 소개했지만요. 오우삼 감독과 함께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이 총을 잘 사용해요.

특히 <니키타>를 보면 여자 주인공이 처음 살인에 사용하는 권총이 무지막지하게 커요. 실제로 그 총은 현존하는 권총 중에 가장 크고 무거운, ‘데저트 이글’이라는 이스라엘 제 권총이에요. 27cm가 넘고 무게가 거의 2k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예쁘장한 총이 나왔으면 오히려 처연한 느낌의 그 장면이 안 살았을 거예요.

오우삼 감독과 권총 얘기로 친구처럼

- 반대로 나쁜 사례도 소개해주시면요.

2004년에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화라면 총기 고증은 했어야 하는데 저격 장면에서 사용한 총이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사용했어요. 당시 안 의사의 총은 벨기에의 ‘브라우닝 M1900’이 맞는데 ‘브라우닝 하이파워’가 나와요. 이건 현대 군용 권총이거든요.

- 총기 마니아인 게 영화계에서도 꽤 알려졌을 것 같은데,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신 적도 있나요?

봉준호 감독의 2007년 영화 <괴물>의 프로듀서가 갑자기 SOS를 친 적이 있죠. 송강호와 가족이 사냥용 산탄총으로 괴물에 저항하는 장면의 군중신을 찍어야 하는데 갑자기 전에 사용한 총을 못 쓰게 된 거예요. 그래서 촬영한 것과 같은 총을 찾아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총이 없으면 촬영은 못 하고 군중신을 위해 부른 엑스트라들에게 비용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 총은 ‘레밍턴 샷건’이었는데, 그건 시중에 모형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것과 85% 정도 비슷한 ‘이사카 M37’ 모형을 권했죠. 덕분에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 김명환도 나옵니다.

- 요즘 영화를 보면 총격 장면이 매우 실감나는데, 실제 총을 사용하나요?

최근 영화 <베를린>을 봐도 권총 분해 결합이나 총격 장면이 실감 났죠. 요즘 영화에선 진짜 총을 개조해서 써요. 할리우드에서 수입하는 건데, 총구를 막고 일부만 개방해 놓는 작업을 해서 화염은 나가고 총알은 못나가게 한 총이죠.

- 오랜 기간 한국영화를 지켜본 영화기자의 입장에서 최근의 한국 영화를 평가해 주시죠.

요새 개봉하는 한국영화를 보면 최대 공약수만 찾다가 영화 자체의 새로움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작 영화, 한탕주의 영화로만 가는 거죠. 색다른 재미와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영화가 거의 안 보여요. 그러다보니 웃기면서 싸우는, 코믹 액션 영화만 유행하죠. 결국 뻔한 영화에 질린 관객이 영화관을 아예 떠날 수 있어요.

- 한국영화가 현실성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최근 흥행몰이를 한 <더 테러 라이브>에선 한 청년이 마포대교와 빌딩을 자유자재로 폭파했죠.

관객들이 너무 관대한 것 같아요. <더테러 라이브>를 보면 대통령이 테러범 요구에 따라 방송국에 대기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마포대교를 동강낼 정도의 폭약이면 민간용의 경우 양이 아주 많아야 해요. 군용이라면 테러 조직과의 연계라든지 등의 영화적 설명이 필요하고요. 말도 안 되는 설정입니다.

- 그래도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은 계속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게 관객이 많이 본 영화가 결코 훌륭하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가 대중과만 소통하면 그만 아니냐고 하는데, 영화는 그것보다는 절대적인 예술성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들 어디서 본 것 같아요. <7번방의 선물>은 <아이엠 샘>과 비슷한데, 게다가 바보 연기를 한 류승용의 연기는 정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썩 참신하지 않은 연기였죠. 오히려 예전 개그맨 맹구가 더 신선했어요.

글·사진/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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