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냉정과 열정 사이’
중국에 대한 ‘냉정과 열정 사이’
  • 이원우
  • 승인 2013.08.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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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읽는 남자: <정글만리> (조정래 著)
<정글만리> 조정래 著, 해냄 刊, 2013

한국 땅에 연간 몇 명 정도의 관광객이 오는지 혹시 알고 계신가요? 2012년에 최초로 1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서울시민 전체에 육박하는 인구가 매년 한국 땅을 다녀가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그렇다면 관광객들의 국적은 어떻게 분포돼 있을까요.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1위 자리가 최근 중국의 몫으로 바뀌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남자’가 쉰여섯 번째로 책으로 다루고자 하는 책 역시 중국에 대한 책인데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한국인들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구축한 조정래 작가의 신작 <정글만리>입니다. 현재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차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누르고 차트를 독점한 ‘정글만리’ 1-3권의 독주 체제로 재편됐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본래 이 작품의 제목을 ‘정글 만리장성’으로 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중국을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소설이고, 모든 사건들이 다 중국을 무대로 진행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에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을 하는데요. 한국, 중국, 일본, 프랑스 등 국적도 다양한 사람들이 어림잡아 20명 이상 나옵니다. 작품은 그들 모두의 내면까지 아우르는 전지적 시점으로 쓰였는데요. 어떤 하나의 뚜렷한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된다기보다는 중국이라는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여러 인물들의 입을 빌려 알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이렇게 큰 인기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높은 소설입니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 곳곳에 청소년드라마나 공익광고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없진 않지만 내용을 확실하게 전달한다는 작가의 덕목은 확실하게 지키고 있네요.

다만 이 소설의 ‘쉬움’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서술로 흐르기도 합니다. 가장 어색한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반일 감정과 반미 감정에 호소하는 대목인데요.

이를 테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인의 이름은 ‘도요토미 아라키’와 ‘이토 히데오’ 등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정래 작가는 일본 기업이 독일 기업에게 의료기기 시장에서 밀리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는데요. 이 설정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이 과거사에 대해 확실히 사과하는 독일 기업에 패배했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황토고원을 비롯한 중국의 자연경관, 문화재 등을 묘사하면서 느닷없이 미국과 비교를 하는 장면도 묘한 우월감의 표출처럼 보이네요.

중국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곳으로 꼽히는 시안(西安)을 관람하는 미국인들에 대해서 “역사가 고작 200년밖에 안 된 그들이라면 3000년 세월의 무게만으로도 주눅 들고 고요해질 수밖에 없을 거였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중국 문화재를 보고 조정래 작가가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요.

중국을 강조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미국과 일본에 대한 열패감을 중국이라는 대리인을 통해서 해소하려는 시도라면 또 다른 형태의 사대주의 아닐까요? 조정래의 ‘정글만리’였습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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