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의 수난은 계속된다
사학의 수난은 계속된다
  • 이원우
  • 승인 2013.09.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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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조례 논쟁 가운데 조용기 박사 <한국사학수난사> 출간


지난 4월 경기도교육청이 발의한 ‘사학기관 운영지원·지도 조례’가 도의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됐을 때부터 사학조례 문제는 전국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혁신학교가 그랬듯 경기도가 만든 ‘원안’을 각 지방자치 교육단체들이 응용해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아보였던 것이다.

일명 ‘사학조례’라고 불리는 이 조례안의 제목만 놓고 보면 사학들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수 언론매체들 역시 ‘공립학교와의 교육격차를 없애기 위해 사립학교 지원을 확대하고 사학기관의 비리와 비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는 것을 조례의 취지로 소개했다.

자세히 뜯어보면 사학에 대한 교육청의 ‘지원’에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어 있다. 사학의 핵심 권한인 교원채용을 행정지원과 연계시킨다거나 ‘사학지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교육청이 사학운영에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는 식이다.

교육청이 사학에 대한 지원에 ‘평가’를 연계시킨다는 14조와 20조의 조항 역시 조례의 숨은 의도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일련의 내용에 대해 사학들의 활동 반경을 제약하는 것은 결국 2014년 6월의 교육감선거(지방선거)를 시야에 넣은 것이라는 평가마저 존재했다.

경기도 사학조례 서울로 수출(?)

본 조례에 대해 보수 성향의 교육단체 및 학부모단체는 격렬하게 반발하며 시위활동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조례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급기야 서울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조례가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 사학조례가 교육청 주도 하에 실시된 반면 서울 사학조례는 시의회 내의 좌파성향 의원들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서윤기 서울시의회 교육의원 등 15명은 이미 올해 2월 19일 ‘서울특별시 사립학교 재정지원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지난 7월초 서울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한국교총과 서울교총,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의 단체는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서울 사학조례 통과 저지는 물론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남훈 서울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회장은 서울 사학조례에 대해 “법에 근거한 감독·통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임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사립학교 재정지원 시 현물 교부 가능(제2조)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대한 지원 등 자사고에 대한 재정결함액 지원 원천배제(제5조) △단순 권고 불이행을 이유로 한 지원금 반환조치 및 학생수 감축 등 부당한 제재(제11조) △사립학교법 및 시행령 위반 시 재정지원 결정에 반영(제6조) 등의 조항을 지적했다. 안양옥 교총회장, 홍순영 서울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회 회장, 김한석 서울교총 사무총장 등도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보수단체들의 격렬한 반발로 심의가 미뤄졌던 이 조례는 서울시의회 9월 회기에 다시 심의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보수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고 있다.

‘10년 수난사’ 조망한 조용기 박사

통상 사학 규제에 대한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으레 사학이란 부패와 부정을 저지르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의 부정입학 의혹으로 시작된 영훈·대원국제중 입시비리 사건은 국제중 존폐 논란으로까지 확대된 상태다. 이 사건 역시 사학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7월 <한국사학수난사>를 펴낸 우암학원 설립자 조용기 박사는 일련의 문제를 사학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조망한다. 조선시대 말 봉건사회에 새로운 사조와 학문을 선도하고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자존과 독립운동의 온상 역할을 수행한 것이 사학의 출발점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해방 직후 78%에 달하던 문맹률을 낮추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역군으로 양성한 것에 사학이 수행한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그러던 사학이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된 시점을 조 박사는 19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와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의 10년 세월로 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두 정권에 연이은 10년간의 수난사(受難史)를 다루고 있다.

1999년 전교조의 합법화는 교원노조와 진보적 시민단체 등을 교육계 전면에 내세워 교육 현장을 투쟁의 전초기지로 삼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바로 그 전교조가 태동과 동시에 사학을 비리척결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사학 문제가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 책은 해방 후부터 한국의 중등교육에 투신해 농촌계몽운동과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는 등 90평생 중 70여년을 교육의 현장에서 분투해온 저자의 눈물겨운 회고담이기도 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처음으로 시도돼 참여정부 시절을 통틀어 가장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됐던 사립학교법 ‘개악’과 재개정 투쟁은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가장 앞줄에서 사립학교법을 위해 싸웠던 한 투사(鬪士)의 치열한 투쟁기다. 그는 지금도 전남 곡성의 23평짜리 아파트에서 매일 3시간 이상 독서를 하고 강의와 집필활동을 펼치며 사학의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학조례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서 보듯 자유로운 교육의 상징인 사학에 대한 견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사학을 부패의 온상으로 간주하는 세간의 고정관념 역시 사학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인 바, 이 책 <한국사학수난사>는 과거 10년간의 고난을 상기시킴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타개해 나갈 지혜를 주문하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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