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탐구한 의학정신
인간을 탐구한 의학정신
  • 미래한국
  • 승인 2013.09.25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귀의 고전 읽기: <히포크라테스 선집>
 

인문서적 중심의 고전읽기의 세태에서 ‘서양의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히포크라테스의 저작 60여 편 가운데 5편이나마 발췌된 번역본이 나와 반갑다.

모든 의학도가 의사로 입문하면서 수행하는 ‘선서(orkos)’를 비롯 ‘공기, 물, 장소에 관하여’‘신성한 질병에 관하여’‘전통 의학에 관하여’, ‘인간의 본질에 관하여’ 등의 기술에서 고대 그리스 의학의 특징과 수준, 의사들의 의학 지식과 역량,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한 탐구와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선서’에서 독을 사용한 안락사의 금지와 낙태의 금지를 서약하도록 한 점은 히포크라테스가 고대 그리스 의사들에게 매우 엄격한 윤리규범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신으로 추앙된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이다. 대대로 의업을 가업으로 전승한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활동하면서 그리스 고대 의학의 꽃을 피워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질병이 신적인 요인에 유래한다는 과거로부터 전승 지식을 부정하고 자연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보는 합리적 접근을 시도했다.

질병의 원인이 풍토, 기후 등 자연환경과 인간마다의 체질적 특징, 음식물의 섭취 등 섭생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환경과 인간, 음식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발병의 원인과 그 치료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나아가 그는 환경적 요인이 인간의 건강과 본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하게 통찰했다. 기후나 풍토, 국가의 제도가 인간의 신체적 건강은 물론 용기, 인내, 노력, 기개 등 본성의 생성과 발휘의 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유럽인들에 비해 호전적이지 못하고 유순한 것도 일정한 계절이 가장 큰 원인이고, 게다가 자율적이지 못해 왕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파악한 점도 인상적이다.

특히 “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다스리며 자신들을 위해 어려움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며, 정치제도가 사람들의 본성의 변화도 가져올 수 있다는 통찰도 탁견이다. 현대에도 우리는 국민성이 국가제도와 이념의 영향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의 사고와 행태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자연환경이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그의 관점은 환경의학의 고전적 정신으로 인정받고 있고, 개개인의 환자에 대한 정확하고 엄밀한 관찰과 임상례를 강조한 것은 실증의학의 방법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그의 의학 정신과 접근방법, 인간의 몸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19세기까지 2400여 년 동안 서양의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서양의 모든 의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초자연적인 주술이나 정화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배격하고 인간의 질병도 자연적 현상의 하나로 파악해 그 원인을 규명하고 궁극적인 치료법을 모색하던 히포크라테스의 합리적 정신은 그리스인들의 과학정신의 대변이라고 할 만하다.

더구나 의술을 개인적 비의로 전승하던 동양과 달리 자신의 관찰과 임상 경험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분석해 실제 의술의 시행에 활용하고 후세 의사들에게 전수하던 경험주의적 태도와 성과 또한 ‘서양의학의 아버지’로서 보여준 손색없는 고귀하고 탁월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