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새벽은 오는가
국정원의 새벽은 오는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10.0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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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해체에 가까운 것이죠.”

송봉선 고려대 교수(전 안기부 북한조사실 단장)의 평가는 짧았다. 지난 9월 24일 민주당이 발표한 국정원 7개 주요 개혁과제에 대한 해설에서였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북한과 이석기 류에게 적화혁명의 고속도로를 깔아주자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본지 좌담, 12~15페이지)

대공수사권을 포함한 국가정보원의 모든 수사권을 폐지해 검찰에 넘기고 정보파트를 분리하며 국정원의 명칭을 ‘통일해외정보원’으로 변경해 해외와 대북 정보만을 담당하게 하겠다는 민주당의 국정원 개혁법은 누가 봐도 무리라는 평가다.

물론 야당과 좌파 진보진영의 국정원에 대한 공세가 모두 틀렸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지난 기간에 국정원이 보여준 여러 아마추어적인 문제들과 실수들은 국민 여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그렇기에 대통령도 국정원 스스로 개혁을 주문했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 해체에 가까운 민주당의 개혁안은 과연 민주당이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대한민국 정당인지 의심스럽다. 민주당 스스로 ‘종북’임을 인정한 통합진보당 이석기와 RO 조직을 잡아낸 것이 다름 아닌 국정원이기 때문이다. 송봉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 ‘자유의 적’들에게 관용은 없다

“세계 각국 정보기관 요원들은 정치권을 최우선 대상으로 활발한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도 우리 정치권이 최우선 목표대상이지요. 현재 진행 중인 이석기 사건도 국내 정치정보 및 보안정보 활동을 하지 않고서는 밝혀 낼 수 없었습니다.”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이 정치권을 최우선 대상으로 정보활동을 한다는 송 교수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까. 지난 해 2월 독일은 좌파 정치인 대규모 사찰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독일의 헌법수호청이 ‘좌파당’의 당수 게지네 뤼치와 그레고어 기지 원내대표, 그리고 페트라 파우 연방하원 부의장 등 굵직한 정치인들을 사찰해 왔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사건을 특집으로 다뤘다. 당사자들의 항의는 격렬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 사찰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 여당인 그뢰에 기민당 사무총장은 “체제 변경을 요구하는 자가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헌법수호청장의 태도였다. 니더작센 헌법수호청의 바르겔 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놓고 “좌파당 의원들에 대해 비밀정보기관적 감시를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던 것.
독일 집권 여당과 헌법수호청이 당당할 수 있는 데는 배경이 있다.

라이프치히 소재 연방행정재판소는 2010년 7월 좌파당의 원내대표인 보도 라멜로 의원에 대한 감시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핵심은 ‘자유의 한계’였다. “체제변경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연방법원은 판결문에 명시했다.

그러한 독일의 헌법수호청은 설립된 해인 1950년부터 1993년까지 377개의 반체제 단체와 이적단체, 극렬분자 단체를 찾아내 이들 조직을 해체하고 그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또 1986년까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 350여만 명에 대해 ‘헌법 충성도’를 심사, 그 중 2250명을 탈락시켰다. 현직 공무원과 교사에 대해서도 ‘헌법 충성도’를 조사해 2000여 명을 중징계하고 256명을 파면시켰다.

독일이 이렇게 반체제 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의 적’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 국정원이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 그 기능이 거의 무너졌다는 사실에 있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前 국정원 제1차장)은 지난 달 본지 좌담에서 “600여명의 베테랑들이 해임돼 큰 타격을 입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헌법수호청의 활약

또한 유동열 연구관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전국 보안경찰 규모가 4400여명에서 2000명대로 줄어들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기무사 방첩처장을 지낸 차주완 박사는 당시 정부가 방첩처 내 방첩 수사단을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증언했다.(본지 12~15페이지)

결국 김대중 정권 하에서 국정원은 체제반역자들을 검거하는 데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지금의 민주당이 과거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 무력화를 넘어 아예 해체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국정원 무력화에 대해 “북한이 원하는 바”라고 말한다. 특히 민주당이 추진하는 국정원의 대북심리파트 해체에 대해서 “물러서면 안 된다”고 주문한다.

“대북심리국을 없앤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북한이 노리고 있는 부분입니다. 안 그래도 심리전에서 비교가 안 되는 전력인데 그나마 대응 체계를 없애면 우리가 앞장서서 북한의 목적을 달성해 주는 것이죠. 죄 지은 것처럼 뒤로 물러서면 절대 안 되고, 이런 부분이 왜 필요한지를 당당하게 설명해야죠.”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기 때문에 해체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현재 국정원 직원이 정치에 개입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 있는 등 벌칙이 엄격하며 직원들도 정치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갖고 있다는 것.

더욱이 5년 후 정권이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치개입 활동을 지시할 지휘관도 없고 그런 지시를 이행할 직원도 없다는 것이 국정원 직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바람직한 개혁 방안은?

이러한 가운데 최근 남재준 원장의 국정원 자체 개혁안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 주목을 끌고 있다.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은 ▲새로운 안보 위협 차단 ▲반체제 활동 대응 ▲국익 보호 ▲통일 대비 ▲경제안보 및 사이버안보 강화 등으로 나눠 기존 조직을 전면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잡혀 있다.

이 가운데 반체제 활동 대응의 경우는 종북세력 감시와 간첩 검거 등이 핵심이다. 특히 개혁 내용 가운데 ‘사이버테러 대응’은 매우 유효적절한 방첩 활동인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국정원의 사이버 안보 정책은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법과 인터넷 언론의 자유침해 문제로 그동안 뚜렷하게 설정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를 틈탄 북한의 사이버 테러와 대남 심리전의 발호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관련된 상황을 보자.

지난 12일 열린 자유민주연구학회 세미나에서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이 밝힌 북한의 사이버 공격내용은 충격적이다.

 

임 원장의 ‘북한의 대남 사이버 테러 실상과 대책’이라는 발표문 보고에 의하면 북한은 공격 탐지와 공격자 식별이 어려운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대남 사이버전(戰)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주로 악성코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전자기 폭탄(EMP),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지속 타깃형 해킹(APT), 사이버 심리전 등 여섯 가지 유형의 공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력, 조직, 무기, 전략 등 모든 측면에서 사이버 전쟁 준비도가 북한에 비해 떨어지는 상황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2009년 대한민국과 미국의 주요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11만 대 좀비 PC가 동원된 북한의 7·7 디도스 공격은 최대 544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후에도 북한의 집요한 사이버 공격으로 방송사 및 금융회사의 전산망이 마비됐던 지난 ‘3·20 사이버테러’가 있었고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등 5개 정부기관과 11개 언론사가 피해를 본 ‘6·25 사이버테러’가 발생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北 사이버 공격 심각

북한의 GPS 교란 공격도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2012년 4월부터 5월까지 개성 지역에서 교란 전파를 발생시켜 항공기 1016대와 선박 254척의 피해를 입혔다. 2010년 이후 GPS 교란공격도 꾸준히 진행해 국제민간항공기구가 북한의 GPS 교란 행위를 국제민간항공기협약 위반 혐의로 간주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임 원장은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의 위협성을 강조한다.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의 기조는 친(親)북한, 반(反)대한민국, 반(反)미국, 반(反)자본주의로 집약됩니다. 한국내 군·국가기관, 공공망 등에 대한 해킹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허위정보 및 역정보를 유출하는 등의 공작도 전개하는 것이죠.”

북한의 이러한 사이버 공격과 관련해 미국은 최근 자국의 사이버 방어를 공격 수준으로 격상했던 사실이 알려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8월 IT전문 매체인 씨넷과 몇몇 외신들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2011년 이란, 러시아, 북한, 중국 등에 대해 231건의 사이버 공격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던 것. 미국은 이 과정에서 6억5200만달러(약 7230억원)를 투자해 공격을 수행했으며 공격프로젝트는 일명 ‘지니’로 불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첩보기관들이 약 520억달러(약 57조6680원)의 숨겨진 예산을 책정했던 것으로도 보도됐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우리 국정원 예산을 모조리 까발려야 할 뿐만 아니라 국회 통제를 강력하게 받아야 한다는 민주당 개혁안에 여러모로 생각해 볼 점을 제공한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정원의 예산 규모나 추이가 공개되면 그 활동의 범위와 내용도 제3자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정보예산을 다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그런 점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주목을 받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최근 미·일 양국 정부 간에 논의된 ‘사이버 방위 협의’ 신설이다. 이 내용은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복수의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4일 보도했다.

‘미·일 사이버 방위 협의’는 중국,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안보 분야 협력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를 통해 미·일 양국은 사이버 공격과 관련된 정보 공유·대응 훈련 외에 전문가 육성, 민간기업과의 공조·협력 강화 등을 모색한다.

10월 초 도쿄에서 열리는 외무·국방장관간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 회의 때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 방위상이 합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미·일 정부는 미군과 자위대간의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시 사이버 공격에 대한 공동대처 방법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이렇듯 미국과 일본은 동맹체제를 사이버 안보분야에 까지 확대할 정도로 긴밀해 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조국 새벽론’이 회자된다.

“국정원의 역할은 조국의 새벽을 준비하는 일이며 이는 곧 다가올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라는 남 원장의 생각은 과거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을 한 차원 더 진화시킨 것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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