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문화 권력 찾아오기
보수의 문화 권력 찾아오기
  • 미래한국
  • 승인 2013.10.0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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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
 

보수진영은 문화적 기재로 자신들의 가치를 전파하는 데 그동안 대체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의 문화 상품 시장은 진보진영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문화 상품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은 지나친 정치적 해석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가치 전달력이 매우 강력한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은 사실상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한국 차세대 영화감독의 양 축이라 할 수 있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이 공식적인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만약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영화감독의 길을 택했을 필자는 이러한 문화의 좌편향 기조에 오랫동안 걱정을 해 온 터였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육영수 여사의 삶을 다룬 ‘추억의 흰 목련’ 뮤지컬을 접하게 됐다. 이 뮤지컬은 2008년 ‘육영수’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선을 보이며 화제를 모았던 연극이었다.

이것을 젊은층의 기호에 맞게 뮤지컬로 재연출한 것이 ‘추억의 흰 목련’이다. 이 뮤지컬은 원래 여러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작년 7월 단 이틀 공연으로 끝났던 공연이었다. 당시 투자자를 찾지 못한 조승현 작가는 사비를 털어서 배우들을 위해 이틀이나마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 점을 아쉬워하던 몇몇 사람들이 필자를 찾아와 이번엔 제대로 공연을 하고 싶은 뜻을 비치며 정치적, 재정적, 홍보 관련 문제 등 여러 조언을 구했던 것이다. 당연히 필자 또한 보수진영의 문화 전략 부재를 염려하던 차에 본 뮤지컬의 고문이 될 것을 흔쾌히 승락하고 이 공연을 성공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제작단계에서부터 주연배우가 바뀌고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홍보 과정에서도 지나친 역차별에 의해 관련 부처로부터 일체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더욱 아쉬웠던 점은 여당 국회의원 몇 명 외엔 대부분의 여당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 보수단체들 조차 이 뮤지컬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문으로서의 책임감에서 필자가 운영하는 미래경영연구소를 통해 40% 특별할인가 예매 업무를 수행했다. 이것은 어떤 대가나 보수 없이 오직 뮤지컬의 홍보를 위해 그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연구소에서 자원봉사하는 연구원들이 수고가 많았다. 어쨌든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시 40% 할인가 예매 업무를 할 때 어떤 분이 수십만원을 연구소로 보내오며 그 돈을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 뮤지컬을 관람하도록 후원해달라고 부탁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모 보수단체 10여명의 회원들을 위해 뮤지컬 표를 예매했는데 결국 그 단체에서 약속을 어기고 한 명도 관람하러 오지 않은 일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열악한 환경에서 거대 재력가의 후원도 없이 아주 적은 예산으로 뮤지컬을 제작했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성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홍보 부족으로 5~20%에 머물던 관객수가 공연기간 종반에 다다르자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며 매회 50~60%(500~600명) 좌석이 판매됐던 상황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에 이 뮤지컬의 성공 가능성을 본 주최측은 이 뮤지컬을 좀 더 보완해 전국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렇게 시작된 보수적 문화 상품을 우리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이것을 통한 보수의 숭고한 가치 전달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시대가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가치가 문화를 선점하지 못하면 저열한 가치가 화려한 문화상품으로 대중을 호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는 문화예술에 대해선 굉장히 관조적이고 건조한 사람들로 인식된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보수의 건전한 개혁적 가치를 젊은층에 확산해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제는 문화예술에 생경했던 보수진영도 ‘보수의 문화 전략’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지난 세월 가난했던 대한민국을 일으키기 위해 문화예술이 너무나 사치스러웠던 나이든 층에게 이제는 젊은이들과 같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보답의 측면도 있는 것이며 나아가 윗세대와 아래 세대간의 세대 통합의 의미도 있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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