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그리고 정치판
달밤, 그리고 정치판
  • 미래한국
  • 승인 2013.10.08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문종 의원의 여의도이야기


‘십오야 밝은 달은 구름 없는 탓이고, 이내 몸 외로운 것은 임 없는 탓이라.’

올 추석, 유난히 크고 밝은 달이라더니 휘영청 고운 달빛이 황홀하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달에서 세상 만물을 다 녹여내는 미소를 본다. 모든 걸 헤아리는 토닥거림으로 세상에서 제일 푸근한 휴식을 주는 어머니 품 속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달은 조금은 삭막하다. 태양의 조력 없이는 발광이 불가능한 달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달빛에 취한 우리 눈에 태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도 온통 달 얘기뿐일 때가 많다. 달이 빛으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위에 오른 건 태양의 역할이 있기 때문인데 이를 간과하는 게 문제다.

우선은 태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를 외면하려 든다. 스스로 달빛을 만들어내고도 기꺼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태양의 통 큰 지원이 더 이상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왜곡과 자화자찬으로 스스로를 미화하는 민망함은 그래도 양반이다. 심지어 자신의 치적을 위해 태양의 존재 자체를 통째로 편집해버리는 몰염치도 불사하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그 끝이 좋은 것도 아니다.

누워서 침 뱉는 격이지만 정치판에서 가장 두드러진 행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민심을 돌아보지 않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달이 스스로를 태양으로 착각하면서 벌이게 되는 블랙 코미디를 보는 기분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살벌하다. 지나친 자만과 함께 하는 권력은 반드시 독이 되기 마련이다. 실제 그런 착각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다 정치 낭인이 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같은 시행착오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반복되고 있으니 난감하다. 정치 연륜을 더해갈수록 민심을 천심으로 받들던 선인의 고민이 선명해지는 이유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정치 항로에서 ‘달이 태양을 만나는’ 인연은 분명 행운이다. 다만 무턱대고 반길 명제만은 아니라는 망설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예상치 못한 후유증이 치명적 결함으로 작동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전부를 내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신을 소멸시킬 각오나 희생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 과대 포장에 편승하려는 얍삽함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여 나름 생각해 낸 답의 키워드는 감사와 최선, 그리고 융통성이다. 서로의 인연이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 후광 이후를 대비하는 노력을 보다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다.

겸허한 마음으로 수혜에 감사하고 최적의 결과물로 보답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는 한편 고정 틀을 벗어난 융통성으로 다가올 미래를 독립적으로 대비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태양에게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갖가지 능력에도 불구하고 완벽을 기할 수 없는 원천적 장애가 있다. 눈부심 때문에 누구와도 시선을 나눌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이 그것이다. 달은 태양보다 위대하진 않지만 태양은 불가능한 ‘시선을 통한 교감’이 가능하다.

수많은 시인의 가슴을 울려 사랑의 시를 쏟아내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거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운무의 조화로운 자태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갑자기 신명이 난다.

최소한 구름이 달을 덮는 불상사만 아니면 우주의 조화로운 합체가 또 다른 상상력과 즐거움의 영역을 열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충만해진 탓도 있다. 정치 영역에서도 그런 어울림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홍문종 국회의원(새누리당 사무총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