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가치판단 기준은 인권”
“유엔의 가치판단 기준은 인권”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3.10.11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인터뷰] 오준 유엔 대사
오준 유엔 대사

국제사회 다자외교 현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06년에 이어 2011년 재선에 성공했고, 우리나라는 199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년 임기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돼 활동 중이다. 2010년에는 G20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외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 핵무기의 위협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금지나 인권, 환경 이슈 등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의 공조가 절실한 시기에 다자외교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치가 향상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유엔에서의 외교 활동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미래한국>이 추석연휴 첫날, 출국을 앞둔 오준 유엔 신임 대사를 만나 다자외교 최일선에 나서는 소감과 계획을 들었다. 오준 대사는 유엔군축위원회(UNDC) 의장, 유엔 차석대사 등을 지낸 외교부내 다자외교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 먼저 유엔 대사로 임명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유엔에서 다루게 될 주요 현안과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죠.

유엔 대표부에서 근무하는 건 이번이 4번째입니다. 대사로는 처음이고요.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가입 후 22년째인 우리나라가 현재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데 국가적으로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앞으로 1년 4개월 남았는데 유엔 대사로서 가장 비중 있는 업무가 될 것 같습니다.

유엔은 68년 전인 1945년 세 가지 핵심 목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어요. 평화·안보와 개발, 인권 등 세 가지가 핵심 목표입니다. 2차 대전으로 세계가 잿더미가 됐을 때는 평화·안보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유엔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어요.

- 우리나라에서 볼 때 역시 북한의 핵무기를 비롯한 남북한 관계 문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역시 북한 관련 안건들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 제재 문제이죠. 그리고 북한인권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인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엔에서 북한 관련 업무는 남북한 관계 상황과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한 관계가 좋아지면 유엔의 대북정책도 좋아질 것이고 북한이 대결과 핵개발에 치중하면 유엔의 제재가 강화되는 것이죠. 그러니 한반도의 현실과 유엔정책은 직결될 것입니다.

‘다자외교로 북한인권 압박효과 거둘 것’

- 우리 정부는 남북한 관계가 상대적으로 좋을 때 북한의 인권 문제를 오히려 외면한 경험이 있습니다.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에서 관심이 더 많죠.

말씀 드렸듯이 인권은 유엔의 3대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권을 사회 분야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핵심 분야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본 거죠. 평화 안보 외에 다른 분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때인데도 인권이 국제사회에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본 유엔 창설자의 혜안입니다.

전 최근의 유엔의 가장 중요 역할을 택하라면 인권을 꼽겠습니다. 장애인, 여성 문제 등 소위 사회적 약자 보호와 관련 지난 10년간 유엔의 성과가 매우 컸습니다. 특히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오히려 유엔의 다자적 환경에서 관심 갖고 압박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DMZ 내 평화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고 반기문 총장도 방한시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유엔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이 있을까요?

DMZ 평화공원은 남북한 관계 개선의 상징적인 것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남북한 양측이 그 의미를 인정할 가능성이 많고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도 남북한 간에 합의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유엔의 역할을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북한 급변사태를 예측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유엔 차원에서도 대응 방안을 갖고 있습니까?

유엔에서는 그런 정책을 분쟁외교나 예방외교라고 합니다. 분쟁이 발생할 것 같을 때 이를 예방하는 게 유엔의 임무입니다. 그리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상황을 수습하고 대응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분쟁이 생긴 후에 결정됩니다. 미리 계획을 세울 수는 없어요. 누가 공격할지 모르고,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유엔은 공격을 일으킨 대상을 응징해야 하죠. 반면 우리 정부는 비상사태를 대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고, 여기에 유엔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방안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보리의 가장 중요한 이슈들은 무엇입니까.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시리아 문제입니다. 화학무기가 사용됐다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공식 확인을 했어요. 이것은 중요한 국제법 위반입니다. 그리고 세계 각 지역의 여러 분쟁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어요.

 

유엔, 강대국 권한과 주권 평등 사이에서 균형 잡아야

- 그런데 일각에서는 유엔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과 나아가 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안으로 APEC 등의 지역 또는 경제 협의체가 부상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유엔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사실 유엔 무용론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유엔은 국제사회의 주권 국가들이 합의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무용하다면 유용하게 합의해서 만들면 됩니다. 이것은 마치 국회가 무용하니 필요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물론 왜 그런 무용론이 나오는지는 이해합니다.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은 모든 국가가 1인 1표였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현실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강대국이 국제연맹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미국은 국제연맹 창시자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입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중요한 문제가 국제연맹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2차 대전을 막을 수 없었던 거죠.

유엔은 이런 국제연맹 실패의 교훈 위에서 세워졌습니다. 유엔은 강대국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권한을 줬습니다. 그게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가 상임이사국인 안전보장이사회죠. 여기서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고 비토권까지 있습니다. 여기서 평화 안보 문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유엔 목표의 다른 두 개 축인 개발과 인권 문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분야에 대해선 유엔도 강대국의 특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강대국들은 유엔 밖에서 비공식적인 협의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엔이 유효한 역할을 지속하려면 강대국의 특권을 인정하는 것과 각국 주권의 평등을 보장해 주는 정책의 밸런스가 중요합니다.

“다자외교 현장에선 정해진 업무 없어…진취적이어야 성과 나와”

- 유엔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이 상당히 강화되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약소국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지표에서 선진국 내지는 강소국 반열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유엔 내에서 볼 때 강대국과 약소국이 고정된 게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입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 현실이라는 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개념이고 이런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좋은 예입니다.

- 대사님은 외교부내에서 주로 다자외교 보직을 맡아오셨는데요, 개인적 선호나 계기가 있었나요?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적성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다자외교에 맞습니다. 양자외교의 경우에는 정해진 자기 자리가 있어요. 예컨대 말레이시아 경제 참사관이라 하면 그 쪽 나라에 카운터 파트가 있죠.

그런데 다자외교에는 이런 정해진 업무나 상대가 없어요. 누구나 동등하게 발언을 하고 역할을 할 기회가 있어서 여기서 남보다 한 발짝 나가서 발언하고 조금 더 기여하면 각국의 동료 외교관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자기가 하기 나름인 거죠. 제가 그러한 것을 즐기고 나름 성과를 내니 외교부에서도 저에게 그런 업무를 맡기는 것이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일종의 선순환이죠.

- 워크홀릭(일중독)이신가요?

워크홀릭과는 반대예요. 근무시간에 전력을 다하는 집중형입니다. 집중해서 일을 해야 일의 성과가 좋아요. 야근을 하면 제 자신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선 일을 하기가 싫어요. 물론 야근형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저 같은 집중형은 야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집중해서 일하고 다시 집중하려면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 외교부내 음악 동아리에서 드럼을 치신다고 들었습니다.

외교부 내 음악 동아리가 있어요. 밴드 뿐 아니라 클래식도 포함되죠. 주한 외교관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함께 공연을 자주 했습니다. 연말 자선 음악회를 한 5번 정도 했어요. 대학 때부터 드러머로 밴드활동을 했어요. 불가사리라는 의미의 스타피시라는 이름이었죠.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게 직장 생활에 활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에 근무할 때는 ‘케이 사운즈’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했죠. 또 다른 취미는 그림 그리기, 특히 유화 그리기예요. 싱가포르에서 해마다 연하장을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서 보냈어요. 이런 취미생활을 하는 이유는 나 혼자 할 수도 있지만 외교에도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죠.

- 아버님도 외교관이셨죠. 해외생활을 어려서부터 하셨겠네요.

외교관은 누구나 해외 근무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해외에 거주하는 외교관이 한 60% 정도 될 겁니다. 저의 경우에는 반반 쯤 돼요. 부친은 2대 LA 총영사를 지내신 외교관이셨어요. 그때는 전 재외공관이 7~8개 불과할 때였어요. 아버님도 해외 생활을 많이 하셨는데 전 아버님이 한국에 오신 후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는 한국에 쭉 있었습니다.

개방적이고 다양성 존중의 성향 필요

- 대학생, 청년들 사이에서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선망의 대상입니다.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시죠.

1995년 유엔 창설 50주년을 기념해서 제1회 전국대학생 모의유엔회의를 개최했어요. 저도 그 행사에 참여하면서 우리 대학생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죠. 꼭 외교관이 아니더라도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적인 일을 할 가능성은 많아요.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도 있고요. 이를테면 세계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방식,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휴대폰을 만들 수 없잖아요.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국제적인 일을 하게 돼 있는 거죠.

전 어릴 때부터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자기와 다른 문화나 종교나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존중해 주라는 조언을 많이 합니다. 세계인이 되기 위한 품성을 하나만 꼽자면 전 다양성의 존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남이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기 때문에 세계의 갈등이 생긴다’ 같은 생각을 어릴 때부터 자기 몸에 배게 해야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의 교육과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모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에서도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겠죠. 그걸 구분하는 게 또한 유엔과 세계인의 과제일 것도 같습니다.

네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어디까지가 다양성이고 기본 인권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권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여자에게 특정 복장을 입게 한다면 이런 것은 인권 침해인지 다양성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신체를 훼손하는 식의 일도 있어요. 이런 것은 당연히 문화적 다양성이 아니죠.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인권 문제와 다양성 인정을 구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사진/은재필 기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