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가 로마제국에 있었다면…
오바마케어가 로마제국에 있었다면…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10.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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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래의 분기점 ‘셧다운’


영원한 제국, 로마의 멸망을 설명하는 이론들은 많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야기는 납중독이라거나, 노예공급이 중단됐다거나, 사치와 향락 때문이라는 감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로마의 멸망을 설명하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들이다.

경제사가들은 로마의 멸망을 3가지의 키워드로 설명하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그것은 빵, 서커스, 그리고 은화다. 현대로 치자면 복지(빵)와 공공시설(서커스), 그리고 무분별한 통화팽창(은화)에 해당한다.

로마의 멸망 원인은 과도한 복지였다

실제로 로마는 ‘팍스로마나’라는 제국의 번영기에 제국 시민들에게 무료로 집과 빵을 제공했다. 로마의 수도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점령지 도시에도 상수도와 하수도, 원형경기장과 극장, 공중 목욕탕 등 호화로운 공공시설을 지으며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었다.

그것은 제국의 유지가 군사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로마 시민들은 풍요로움과 평등을 만끽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로마의 황제들은 더 많은 은화의 공급을 위해 은 함량을 떨어트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은화의 순도는 100%에서 점차 떨어져 순도 1%의 저질 주화가 대량 통용됐다. 결과는 막대한 인플레이션이었다.

문제는 로마의 원로원이었다. 원로원은 재정 긴축을 시행하려는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반대해 권력투쟁을 벌였고 그를 쫓아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선동됐다. 로마제국은 재정난으로 더 이상 변방을 지킬 수 없었다.

세금을 높이자 농민들이 로마를 탈출했고 속주들은 바바리언들에게 자발적으로 넘어갔다. 로마는 제국을 포기하고 그들의 출발점이었던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로 돌아가야 했다. 그곳에 높은 성벽을 두르고 숨었다. 그것이 바로 껍데기만 남은 서로마제국이었다.

오늘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부 셧다운제도는 로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미국은 건국 과정에서 정부의 독재를 우려한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대신 연방제를 택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United we fall, Divided we stand)라고 독립선언서에 썼던 미국의 초대 대통령 제퍼슨은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감시의 의무’라고 했다. 미국의 셧다운제도는 바로 그러한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장치다. 그것이 로마제국과 미국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국의 셧다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념과 가치의 충돌에 주목해야 한다. 셧다운은 민주당과 공화당간에 정부예산 증액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다. 하지만 이 셧다운은 단지 예산 갈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갈등의 기저에는 타협이 어려운 이념이 자리한다.

미국의 공적 의료보험인 ‘오바마케어’가 그 이념 갈등의 전선(戰線)이다. 선봉에는 공화당내 약 30%에 해당하는 티파티(Tea Party) 출신의 전사(戰士)들이 있다. 이들은 리버테리언(Libertarian)이라고 불리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룹이다. 독일 기민당과 같은 중도세력도 아니다. 미 건국의 이념, 즉 ‘개인의 자유’가 정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그렇다고 무정부주의자들도 아니다. 그들은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아젠다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생각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큰 정부를 지지한다는 이야기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美 민주당의 주된 세력은 다름 아닌 미국의 산업노조다. 그렇기에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자유주의보다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 민주당이 리버럴(Liberal)이라고 불리는 것은 프랑스 혁명 이념의 수용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가치가 그것이다.

美 공화당과 민주당 차이의 핵심은

이에 반해 공화당은 미국의 독립혁명이라는 보수적 전통을 고수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모럴이다. 그렇기에 미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평등이란 법 앞에 평등이지 민주당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당연히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은 전통적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선택할 자유(freedom to choose)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미국의 모든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미 공화당에는 ‘RINO’, 즉 ‘무늬만 공화당’이라고 비난받는 세력들도 있다. 이들은 실용주의에 가깝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인 티파티는 지난 총선에서 이 리노그룹을 공화당에서 축출하는 이념전쟁을 치렀다. 그 결과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미국의 셧다운은 그러한 민주당과 공화당내에 있는 이념갈등이 일으킨 사건이다.

미 정부의 셧다운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의 파국을 원하는 정치세력은 없다. 하지만 누가 양보를 하느냐에 따라 향후 미국의 정치이념은 큰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진영과 자유주의진영 간에 균열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고 충돌할 만큼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 심판대가 바로 이번 셧다운이다.

만일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양보안으로 셧다운이 해결될 경우 미국의 정치이념은 과거 레이건 시절의 ‘작은 정부’론에 더 큰 무게를 두는 쪽으로 이동하겠지만 반대로 공화당의 양보로 셧다운이 해결되는 경우 미국은 본격적인 복지 아젠다가 다음 총선과 대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유럽형 복지를 미국이 채택하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선거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점은 미국의 앞날에 큰 분수령이 되고도 남는다.

미국의 역사는 더 이상 기원전(BC)이나 기원후(AD)가 아니라 2000년의 테러전(BT)과 테러후(BT)로 나뉜다는 농담은 그래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확실히 9·11 테러 이후, 이전의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과거와 같은 회복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공화당 티파티 의원들은 이를 과도한 정부의 시장규제와 재정확대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이번 미국의 셧다운은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앞날에 큰 변화를 의미하는 하나의 이정표라고 해석해야 한다.

미국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국가채무로부터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지혜롭게 피할 것인가라는 문제라는 이야기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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