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교과서 막아낸 美 학부모들
왜곡 교과서 막아낸 美 학부모들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3.10.18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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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내 문제의 수정헌법 2조를 촬영한 사진. 이것은 나중에 페이스북에 올려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브리에 게츠는 텍사스 덴톤에 있는 가이어 고등학교 10학년(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 여학생이다.

지난 9월 브리에는 집에서 미국 역사 교과서로 역사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국 역사: 고급과정 시험’이라는 제목의 교과서 102페이지에서 미국 수정헌법 요약을 읽다가 수정헌법 2조에서 멈췄다. 요약된 수정헌법 2조가 ‘주 민병대가 총기를 보유 및 소지할 권리’로 정의됐기 때문이다.

원래 수정헌법 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고,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 개인의 총기 보유 및 소지권을 인정하고 있다. 연방대법원도 2008년 처음으로 수정헌법 2조는 총기를 보유하고 소지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교과서에 요약된 수정헌법 2조는 개인이 아닌 주 민병대만 총기 보유 및 소지 권리가 있는 것처럼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브리에는 아버지에게 이에 대해 말했다. 아버지는 이 역사 교과서가 개인의 총기보유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 수정헌법 2조의 정의를 왜곡하고 있다며 문제의 교과서 페이지를 사진에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학교는 곧 이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왜곡된 내용을 주입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학부모의 전화로 시작된 교과서 수정

학부모들은 학교 측에 문제의 역사 교과서 내용을 빨리 조사하고 왜곡된 부분을 고치라고 촉구했다.

학교에 항의 전화해 “역사 교과서 102페이지에서 나온 수정헌법 2조에 대한 정의가 부정확하다. 주 민병대만 총기를 보유하고 소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누가 이 교과서를 쓰도록 결정했는가? 공개답변서를 제출해달라. 다음번 학교위원회에 다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팀을 구성해서 학교위원회나 학교이사회 모임 때 몰려가 항의하고 주변 친구, 가족, 언론들에게 이를 알리기도 했다.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고 상황이 커지자 학교 측은 대변인을 통해 문제의 책은 보조적인 교육자료이지 공식적인 미국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며 해명했다. 학교 측은 “교실에서는 다른 미국역사책을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다”며 “역사 교사들은 수정헌법 2조에 대해 바른 정보를 가르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역사책 공동 저자 중 한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정직하지 못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요약이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 내용을 고친 새 역사책이 2014년 5월에 발간되도록 할 것이라며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사건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내용이 왜곡됐을 때 학부모가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역할이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2010년 텍사스 역사 교과서 사건은 또 다른 방증이다. 텍사스에서는 10년마다 초중고 교과서 내용을 15명으로 구성된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수정한다. 2010년 당시 교육위원회 대다수를 차지하던 공화당 소속의 보수 교육위원들은 480만명의 텍사스 초중고생들이 보는 교과서, 특히 역사 교과서가 진보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졌다며 교과서 내용 중 100여 군데를 수정하는 ‘균형 작업’을 시작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건국아버지들의 기독교 신앙이 강조되고 건국문서들이 성경의 원칙, 특히 모세가 세운 원칙에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을 추가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18세기, 19세기 계몽주의를 불러 일으킨 인물에서 빠지고 대신 존 칼빈을 넣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토마스 제퍼슨은 정교분리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보수 교육위원들은 비판해왔다.

△1960, 70년대 힙합 문화를 중요한 미국 문화운동으로 넣으려는 진보적 교육위원들의 주장을 무산시킨다.

△1980년대와 90년대 보수주의자들의 부상, 즉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 헤리티지재단,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전국총기협회 등의 내용을 추가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뿐 아니라 독일계 및 이탈리아계 미국인도 수용소에 갇혔다는 사실을 추가한다. 그동안 일본계 미국인만 수용소에 넣었다는 아시안계 차별에 대한 비판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다.

△역사책에서 시대를 구분할 때 BC와 AD 대신 BCE와 CE로 대체하자는 진보위원들의 주장을 무산시키고 그대로 BC와 AD를 사용한다. BC와 AD는 Before Christ와 Anno Domini의 약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역사를 구분하는 의미다. 하지만 BCE와 CE는 각각 Before Common Era와 Common Era로 예수 그리스도를 뺀 개념이다.

△학생들이 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의 중요성을 배우는 주간을 ‘자유를 기념하는 주’(Celebrate Freedom Week)라고 부르며 기념하도록 한다.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경제학자로 자유시장경제이론의 양대 거목인 밀튼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를 추가한다. 그동안은 아담 스미스, 칼 막스, 존 케인즈만 있었다.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표현 대신 자유기업시스템(Free-enterprise system)을 사용한다. 자본주의라는 말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하려는 의도다.

△정부의 과세와 규제가 민간 기업들의 활동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추가한다.

△민주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정책이나 소수민족우대정책이 ‘예기치 않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내용을 추가한다.

△모든 사회문제를 국가나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10대 자살, 폭력, 성, 마약 등의 사회문제에 개인 책임을 강조한다.

△미국 정부를 표현할 때 ‘민주적 사회’(democratic society) 대신 ‘헌법적 공화국’(Constitutional Republic)’을 사용하도록 한다.

△UN 등 국제기구가 미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을 추가한다.

이 역사 교과서 수정안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진보적 교육위원과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수정안은 그해 5월 채택됐다.

당시 이를 주도한 돈 멕레로리 교육위원회 의장은 “그동안 진보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균형을 잡게 됐다”며 “이것은 자랑스러운 미국인 의식과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멕레로리 의장은 치과의사이자 학부모로 역사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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