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역사 문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 이원우
  • 승인 2013.10.18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리 아닌 ‘사람’의 문제 … 문화 투쟁의 하나로 접근해야
 

언젠가 저명인사들이 모이는 시상식장에 불청객으로 찾아간 일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학자가 상을 수상하기 위해 시상대에 올랐다.

그런데 살짝 긴장하셨는지 6·25에 대해 언급하던 중 남침(南侵)과 북침(北侵)을 바꿔 말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에서 최고 반열에 드는 역사학자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장내 아나운서가 나중에 수정하고 끝이었다. 아무도 그 학자가 6·25 남침을 진짜로 몰라서 틀리게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지면을 빌려 교수님께 조언의 말씀을 올리는 바 ‘똥침’을 연상하시면 더 이상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한 가지 가정을 해 보자. 만약 이석기나 이정희가 남침과 북침을 잘못 말했다면 엄청난 화제가 됐으리라는 건 대선 TV 토론회에서의 ‘남쪽 정부’ 해프닝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얘기하다 보면 누구나 남쪽 정부라는 말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정희가 썼기 때문에 ‘촉이 왔던’ 것이다. 이석기의 집에 김일성의 좌우명인 이민위천(以民爲天)이 걸려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우리는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사례들은 우리가 일련의 문제들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논리의 문제는 껍데기일 뿐 본질이 아니다. 역사와 정치, 나아가 문화는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유영익,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

소란 속에서 국사편찬위원장에 취임한 유영익 교수에 대한 왼쪽 진영의 공격의 양상을 보면 이쪽도 철저히 사람 중심으로 타격점이 형성돼 있었다. 유 위원장의 주 전공인 이승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입으로는 역사를 공부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승만을 역사로 바라보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불완전한 모습들을 들이대며 굳이 실망할 이유를 만들어 낸다.

유영익 논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승만의 불완전한 면모를 알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신중한 학자의 저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최근작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한 구절을 보자.

“필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12년에 걸친 장기 집권에서 적지 않게 실정을 저질렀음을 인정한다. 예컨대 건국 초에 친일파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환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 발발 직후 서울 시민보다 먼저 수도를 빠져나가면서 중앙방송으로 그릇된 전황 방송을 하도록 방치하고 또 예고 없이 한강교를 폭파함으로써 수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것도 국가 최고 통치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본다. (…) 이 밖에도 흠잡을 점이 더 있을 것이다.”

유영익 교수가 이승만을 비판하는 딱 이만큼이나마 이승만의 업적을 인정하는 사람이 왼쪽 진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해 전화로 유영익 교수를 인터뷰 했었다. 그런데 이승만의 성격이 독선적이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시는 바람에 등줄기에 땀이 났던 기억도 있다. 요는 이승만이 뛰어난 인재(偉才)였다는 거다. 이승만을 헐뜯기 위해 연구에 투신했다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학자 유영익의 설명이 그렇다.

따지고 보면 역사에서 독선적인 인재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을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를 안다면 그에 대한 경외심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의 시대는 민주주의가 아니었으니 용서할 수 있다고? 이승만의 시대도 결단코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승만은 낙후된 그 시대에 지나치게 선진화된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려고 발악했던 이상주의자였다. 우리는 이렇게 독선적일지언정 시대를 읽는 혜안으로 흐름을 바꿔 놓았던 사람들의 기록을 역사(歷史)라고 부른다.

교과서 투쟁은 ‘문화 투쟁’으로 수렴돼야

이승만을 제외하고 나면 그 당시 대한민국(이 될지 아닐지도 불확실했던 나라)을 자유민주주의의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의 숫자는 제로로 수렴한다. 박정희가 1을 10으로 만든 사람이었다면 이승만은 0을 1로 만든 사람인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문제의 원인 역시 ‘사람들’에서 찾고 싶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이승만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니 비슷한 관점으로 한국사회 흐름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과서가 왜곡된 방식으로 기술되기 시작한 건 이 문제의 말단에 해당할 뿐이다.

결국 교과서 투쟁은 문화 투쟁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바람직하게 서술된 교과서를 보급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승만을 비롯한 위인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과의 문화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과서대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과서가 아무리 옳은 얘길 하고 있어도 그것과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 100편이 극장에 걸려 있으면 아이들은 답안지에선 전자를 따르지만 실생활에선 후자대로 생각한다. 교과서 투쟁에서 이긴들 문화 투쟁에서 패배한다면 전투에서 이겼으나 전쟁에서 지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순서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