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의료 경보가 울린다
저질의료 경보가 울린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10.22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인터뷰] 성종호 전국의사총연합 공동대표
성종호 전국의사총연합 공동대표

포괄수가제 종합병원으로 확대 시행, 부작용 이제부터

의료서비스에 상관없이 정해진 진료비를 부가하는 포괄수가제가 지난 7월부터 전국의 종합병원 이상 모든 병원으로 확대 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병·의원급에서 먼저 시작한 지 1년 만이다. 현재까진 백내장수술, 탈장수술, 제왕절개 분만 등 7개 질환이 포괄수가제에 포함된다.

정부에서는 기존 행위별수가제가 불필요한 진료를 양산해 환자 부담을 늘린다는 이유로 포괄수가제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의료의 질 하락을 우려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포괄수가제 확대 실시 직전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전공의들이 흰가운을 입은 채 광화문에 모여 ‘포괄수가제 반대’와 ‘의료수가 현실화’를 외치며 거리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포괄수가제가 대학병원을 포함한 모든 병원에서 실시되고 있는 지금, 과연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은 없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성종호 전국의사총연합 공동대표를 만났다.

돈 때문에 질 낮은 치료할 의사는 없어

- 7개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지난해 7월부터 병·의원급 병원에서 시작된 데 이어 종합병원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의료 현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병의원에서 1년 시행하고 지난 7월부터 종합병원에서 확대 시행되고 있습니다. 우선 경영 환경으로 보면 안과가 타격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백내장 수술에 대한 포괄수가제 수가가 낮게 책정돼서 수술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작년 한 해만 문 닫은 백내장 수술실만 21곳이라고 하고요. 결과적으로 안과 레지던트 지원율도 지난해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전문의를 따고 나와도 의사로서 생활할 수 없도록 국가가 시스템을 만들어놨기 때문입니다.

- 포괄수가제 확대 실시를 앞두고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광화문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역시 포괄수가제가 의료 질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인가요?

전공의들의 항의는 본인 수입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지금도 터무니없이 적은 근무수당으로 일하고 있고, 포괄수가제가 시행된다고 월급이 줄어드는 것도 없어요. 전공의들이 말하는 것은 환자를 대할 때 양심의 문제입니다.

특정 질환에 대해 수가가 정해져 있으면 최선의 치료가 어려워진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자궁근종 수술의 경우 배를 여는 절제술 외에 로봇을 이용하거나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 등이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흉터가 작고 임신 가능성이 높은 치료인데도 말이죠.

종합병원, 원가 절감 위해 의료 질 하락 불가피

- 그렇다고 의사들이 환자의 치료 효과나 삶의 질을 도외시하고 수가만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이런 점을 예상하고 포괄수가제를 밀어붙이는 것 아닐까요?

산부인과의 경우 제왕절개와 자궁근종이 모두 포괄수가제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동시 수술을 하면 둘 중에 하나만 수가가 인정되고 하나는 비용을 받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이 경우에 수가를 포기하고 말지 따로따로 수술할 의사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 입장은 다른 얘기입니다. 개원의를 제외한 의사는 병원에 고용된 전문 노동자일 뿐이죠. 대형병원 운영자는 수익 창출이 목적인 경영자입니다. 의사와 병원 간에는 항상 의견 다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의사가 아무리 최선의 치료를 원한다 하더라도 병원에서 원가 절감 정책을 시행하면 어쩔 수 없이 의료 질 하락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 종합병원급으로 포괄수가제가 확대된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대형병원에선 포괄수가제에 해당하면 처방 코드 자체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비용이 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죠. 수술실에서 수술도구도 별도로 준비하고, 입원 기간도 최대한 짧게 적용합니다.

병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원가 이상으로는 수술이나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 속에서 의사가 아무리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려하더라도 병원 경영자나 심사과에서 압력이 들어오게 됩니다. 의사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7개 질환이지만 앞으로 553개 질환으로 확대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획일화된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국민들이 정당한 의료서비스의 선택 기회를 국가와 제도가 박탈하는 것입니다.

 

- 포괄수가제에 대해 의사들은 반발이 심한데 대형병원에서는 의외로 조용한 것 같습니다.

대형병원은 이제껏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어요. 주차장, 장례식장, 임대소득 등의 부가 사업을 하고 있죠. 물론 원가 절감은 기본입니다. 그리고 흉부외과 등의 수술에 전공의 대신 간호사나 일반인 중에 PA라는 보조원을 쓰는 경우가 있어요.

현행법으로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하고 있죠. 대형병원에서는 포괄수가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비용 절감을 위해 PA 합법화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대형병원 위주인 병원협회가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 포괄수가제를 찬성하는 측에 따르면 해외 선진국에서는 대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환자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강제시행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80% 정도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강제 시행은 아닙니다. 강제 시행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만 포괄수가제를 안 하면 불법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영국은 세금을 더 거둬 공공의료에 투입하고 독일은 건강보험료를 더 걷습니다. 유럽은 국가의료서비스든 국가의료보험이든 공공기관이 더 많으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공의료는 적자가 나도 국가가 지원을 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죠. 반면에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병원들이 원가 절감에 나서고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이 오는 것이죠.

- 정부는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의 반발에도 왜 포괄수가제를 강행하는 것일까요?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 목적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하려는 경제적 목적이 클 겁니다. 그런데 포괄수가제는 장기적으로 오히려 국민 의료비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비급여의 21%를 급여에 포함시켰다고 하는데 이 말은 국민들이 병원에 이 정도 금액을 덜 내도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부족분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메울 테니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낼 수도 있습니다.

- 의사의 과잉진료가 포괄수가제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요?

정부는 의료비 폭증이 의사들의 과잉진료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고령화가 근본 원인입니다. 그리고 과잉진료는 의사와 환자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국민이 세금이나 보험료를 더 내기 때문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의료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들에게 이런 비용 부담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부가 병원에 비용을 지원해줄 수 없고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많이 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비용이 적으니 쉽게 병원에 갑니다.

의료수가 현실화 필요

결국 적정 수가가 이뤄지면 과잉진료도 없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과잉진료를 줄여야 적정수가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적정수가가 먼저 선행되면 국민들의 의료행태 자체에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의식의 변화도 있어야 하는데 보건복지부는 의사의 변화만 요구하고 있는 거죠. 일종의 여론 몰이입니다.

-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제 제도를 정비하는 데 의료계가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불신의 골이 깊어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사실 의사들이 보건복지부에 피해의식이 많습니다. 과거 의약분업을 시작할 때 진찰료 수가를 20% 정도 올려줬어요. 그런데 그 후 3년 동안 의료수가를 계속 내려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에도 정부는 정책 결정에서 의사들의 얘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어요.

의사들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면 충분히 듣고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1년 만에 시작했어요. 그러니 의사들이 협조를 안 해준다는 것은 정부 로드맵에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향후 553개 질환에 대해 포괄수가제를 실시할 텐데 정부가 제도로서 이것을 일일이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봅니다.

질병 분류 자체에도 전문가들은 냉소적이에요. 예컨대 우울증도 똑같지 않아요. 생물학적인지 환경적인지 여부가 다르고, 조울증이 우울증 패턴으로 가는 경우, 또는 정신병으로 전환할 갈 것 같은 우울증 등 다양합니다.

특히 현재도 의료 질 하락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근시안입니다. 공무원들은 80년대 의료 수준에 머물고 있어요. 초음파 등 다양한 방법이 많은데 배를 열어서 수술하는 것만 알죠. 환자는 배에 흉터 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것을 못 따라가는 거죠. 의료비용만 생각하니 의료 질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포괄수가제, 환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 포괄수가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으니 시급하게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올 테니까요. 교수님은 해결 방안을 어떻게 보시나요?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강제시행은 안 된다는 것이죠. 환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괄수가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초기에 투자가 선행돼야 합니다. 적정한 의료수가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힘듭니다.

협회 차원에서는 포괄수가제로 인해 문제가 일어난 사례를 지속적으로 수집할 계획입니다. 상급종합병원이 포괄수가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폐해 사례가 나오면 이것을 수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향후 거의 모든 병에 대해 모든 병원에서 전면적으로 강제 포괄수가제를 실시할 텐데 우려가 큰 부분입니다.

그리고 포괄수가제 건을 병원수가와 의사수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은 개방병원이라고 해서 개원의가 종합병원 수술실에서 수술하고 환자를 입원시키고 회진도 돕니다. 종합병원 수술실, 병실료 등은 병원의 수가이고, 수술 및 진료 행위 수가는 의사가 받는 식이죠.

이렇게 돼야 의사들이 병원에서 독립돼 제대로 된 수가를 인정을 받고, 의사 양심에 맞게 진료를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의사가 병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글·사진/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