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처럼 깊은 자긍심, 그 원천은
와인처럼 깊은 자긍심, 그 원천은
  • 김범수 발행인
  • 승인 2013.10.23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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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와 함께 하는 세계여행⑧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

세계 5대 경제대국 중 하나인 프랑스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개념이 유래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와 가장 오래 전부터 외교관계를 수립한 서방국가 중 하나이며 항일독립운동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도움을 줬다.

인권의 ‘원조국’ 답게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이례적이다. <미래한국>은 10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를 만나 양국의 현안과 ‘프랑스’에 대해 물었다.

200년 전 시작된 한-불 관계

-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도 1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서양국가 중 가장 오래된 수교국 중 하나인데요, 우선 양국관계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셨듯이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관계는 오래 됐습니다. 오는 2016년에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사실 양국관계는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여년전 가톨릭이 한국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양국간 교류가 있었습니다. 19세기 초에 바티칸 교황청은 프랑스 신부에게 한국 선교를 맡겼습니다. 선교사가 한국에 온 시기가 1830년대였고 이후 1940년대까지 한국의 주요 교구장이 프랑스인이었습니다.

또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1차, 2차 세계대전 기간과 일제강점기 시절에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는데 그 임시정부의 위치가 바로 프랑스 조계지역 내에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근거입니다.

- 프랑스는 한국전쟁에도 참전해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했지요. 한국인들은 이에 대해 프랑스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는 3000명이 넘는 정예 병력을 파병했고 전장에서 대단히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약 300명이 전사했고 1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특히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일화는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1950년 8월에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예비역을 주축으로 파병을 발표하자 3성의 몽클라르 장군은 58세의 나이로 지휘계통이 애매하지 않도록 중령(대대장)으로 계급을 낮춰 지원했습니다.

그는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며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양국이 공유하는 건 이런 아름다운 과거 뿐이 아닙니다. 지금도 프랑스와 한국의 관계는 대단히 우호적입니다. 양국 간에는 어떤 갈등이나 분쟁도 없습니다.

- 현재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지요?

한국은 프랑스에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중요합니다. 한국의 GDP는 세계 15위이지만 무역량은 세계 7위입니다. 경제 뿐 아니라 국제 관계에서도 한국은 중요합니다. 우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이고 세계은행 총재도 한국계입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인 기후 변화와 관련해서도 한국은 녹색성장을 주장하는 등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입니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UNFCCC(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가 개최될 예정인데 여기에도 한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양국 최고위급 회담 곧 성사

- 양국 무역관계에서의 특징은 어떤 게 있는지요. 무역역조 문제는 없나요.

꽤 균형이 잡힌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한국에 첨단 소재 및 부품들과 와인, 치즈 등을 수출합니다. 또 한국으로부터는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을 수입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스마트폰, 태블릿 등 전자제품들에서부터 선박 등 다양합니다. 현재 프랑스의 대외 수출 총액 중에서 한국으로의 수출이 1% 정도인데 이를 더 늘리고 싶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한국 기업들이 프랑스에 더 많은 투자를 했으면 합니다. 일본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직접투자를 많이 했지만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 양국의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양국 정상이 만나면 어떤 어젠다가 논의될 예정인가요.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추구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정책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프랑스의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부를 이끄는 플뢰르 펠르랭 장관이 한국계입니다. 또한 프랑스 총리가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박 대통령 취임 이후로 한국을 방문하는 첫 유럽 정상이 될 겁니다.

프랑스 정부도 박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의제라면 우선 경제 관련 이슈가 있겠습니다. 양국간 무역량을 늘리고 투자를 증진시키기 위한 방안이 논의될 겁니다. 또 기후 변화 등 국제적 이슈가 논의되고 북한문제 및 핵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오고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권 문제 해결 없는 한 북한과 수교 안해”

- 프랑스는 아직 북한과 수교를 하지 않고 있지요. 유럽국가로서 이례적인데 이유가 뭔가요.

프랑스는 유럽에서 북한과 수교를 하지 않은 2개국 중 하나입니다. 외교관계 없이 평양에 작은 사무소만 운영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NGO들을 지원하는 업무만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해 아주 강하게 항의해 왔습니다. 우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에도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도 규탄하는 입장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인 친구로부터 ‘인권수호가 바로 프랑스의 국익’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이 외교 수립을 미루고 있는 직접적 이유라는 말인가요?

프랑스에 있어 인권은 대단히 중요한 이슈이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북한의 인권 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수준입니다.

만약 북한이 변한다면 우리도 입장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계속 대화를 하고 다양한 논의는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교관계로 갈 가능성은 낮습니다. 북한은 국제법도 준수하지 않고 유엔의 권유조차도 무시하는 상황 아닙니까.

- 프랑스 문화의 특성은 어떻게 소개해 주시죠. 프랑스인 하면 강한 자부심이 떠오릅니다.

우리 프랑스인들은 국가와 문화에 대해 자긍심이 강합니다. 가끔 ‘프랑스인들은 거만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의미의 자긍심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과거 뿐 아니라 현재 이 시점에서도 프랑스는 아주 다이내믹한 국가라는 점입니다. 세계적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있고, 첨단과학 및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맹활약 중입니다.

개방성 또한 프랑스 문화의 두드러진 특성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외국 문화에 대해 아주 개방적입니다. 특히 한국 영화들이 프랑스에서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아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프랑스에서 더 성공했을 겁니다.

자긍심 vs 개방성 

-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요? 케이팝(K-POP)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케이팝은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입니다. 작년에 싸이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플래시몹 콘서트에 무려 3만명의 프랑스인들이 왔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케이팝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표가 다 팔리고 성공을 거뒀습니다. 영화 역시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정식 극장들에서도 심심찮게 상영됩니다. ‘설국열차’가 조만간 프랑스 내에서 상영될 예정입니다.

유명한 지휘자 정명훈 씨를 비롯해 한국 출신 예술가들도 프랑스에서 오래 전부터 활약 중입니다. 참고로 이 대사관 건물도 프랑스에서 공부한 한국인 예술가가 디자인한 겁니다.

- 자국 문화에 대한 프랑스인의 높은 자긍심과 방금 강조하신 개방성은 언뜻 상충하는 것으로도 느껴지는데요.

보세요.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활동한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이었고 샤갈은 러시아 출신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프랑스 예술가들이 외국계였습니다. 이게 프랑스 문화의 개방성을 나타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프랑스에 와서 일하는 건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이처럼 프랑스 문화의 핵심은 개방성이며 우리는 조화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문화를 환영합니다.

- 최근에는 프랑스 내 무슬림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관련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프랑스에는 매우 중요한 정책이 하나 있는데 국가와 종교가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가질 수 있으며 다만 그로 인해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만이 금지돼 있습니다.

당연히 무슬림들도 프랑스인으로서 모든 권리를 가집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하며 여기엔 종교에 따른 차별도 포함됩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과거엔 유태인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했고 현재는 일각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편견이 있지만 프랑스는 어떤 형태의 차별에도 맞서 싸울 겁니다.

- 프랑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무신론자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무교(無敎)와는 다른 철학적 의미로서의 적극적인 인본주의, 반기독교적 분위기와 연관돼 있지 않나요.

프랑스의 비기독교, 무종교인들은 종교에 반대하려는 게 아니라 종교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개개인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개인은 동등하며 종교나 인권을 가지고 구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프랑스의 건국이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특정인을 평가하는 것은 종교나 인종이 아니라 그 개인을 개별적으로 평가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프랑스 정부는 GDP의 0.5%를 저개발 경제원조에 쓰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국에 이은 2대 규모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 중에는 이 액수도 너무 적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동안에 굶어죽는 다른 분들을 그냥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도 최근에 타국 지원을 늘리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매우 환영합니다.

프랑스 경제, 활발하게 회복 중

- 세계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데요, 프랑스의 상황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경제강국이라는 사실은 간과합니다. 프랑스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대 경제대국이며 유럽에선 독일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경제도 최근 몇 년간 어려웠지만 이제 불경기에서 활발하게 회복하고 있습니다.

- 대사님 본인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문 외교관 출신이시죠. 한국에서의 이전 근무 경력도 있으신 걸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브라질, 영국, 크로아티아 대사관에서 근무했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대사로 있었고 대사가 없는 홍콩에서는 대표부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88년부터 92년까지 대사관에서 근무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88올림픽 및 민주화의 현장에 있었기에 더 감회가 깊습니다. 지금 대사관 근처에 보시면 고층빌딩들이 즐비한데 20년 전엔 여기 있던 빌딩들이 거의 없어서 여기서 한강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죠.

-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들과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우선 한국인들은 프랑스에서 대단히 환영받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프랑스는 매우 활발하고 역동적인 국가이며 저는 양국간 관계가 더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프랑스에 오신다면 파리도 좋지만 한국분들이 잘 가시지 않는 다른 도시들에도 방문하실 것을 권유해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bumsoo1@hotmail.com
정리/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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