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 H.G. 웰즈, 시드니 웨브, 버트런드 러셀, 존 케인즈….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점진적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던 영국 페이비언협회 회원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폭력적이고 과격한 계급혁명론을 부정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통한 점진적 사회민주주의 변화 체제를 지지했다.
그들은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울러 자본주의를 신뢰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다. 그들에게 현실적 문제란 언제나 가진 자의 양보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선한 의도, 나쁜 결과’의 대명사
영국 노동당은 그런 페이비언 사회주의로 탄생했다. 그리고 영국 노동당은 영국 사회를 경제적 침체로 이끌었다. 한마디로 ‘선한 의도, 나쁜 결과’의 대명사가 바로 이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이었던 것.
진영 전 장관의 사퇴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앙금을 남겼다. 그는 새누리당내에서 합리적이고도 온건한 보수의 얼굴로 대변됐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진보와 좌파의 독식으로 전락한 ‘사회적 기업’은 진영 장관이 의원으로서 입법 발의했기에 가능했다.
그러한 사회적 기업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공동체 기업과 협동조합이 돼 2017년 대선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히 적지 않은 진보진영의 세력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진영 전 장관은 ‘선한 의도,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전형적인 페이비언 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의 사퇴를 불러온 복지부 기초노령연금안의 방안 역시 그런 조짐이 있기 때문이다.
진영 전 장관이 노령기초연금의 국민연금 연계안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은 사실 의아한 일이었다. 청와대는 이미 진영 전 장관이 인수위원장이었던 시기에 그러한 안이 공약으로 설정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복지부안을 고집하던 진영 전 장관은 새누리당과 청와대로부터 ‘배신자’라는 험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 진 전 장관은 사표의사를 공식적으로 제출하지 않고 의원 보좌관을 통해 이메일로 기자들에게 알렸다.
구중심처에서 어떤 권력의 역학관계가 있었는지 국민들은 모른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진 전 장관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는 한번 되짚어 볼 문제다. ‘따뜻한 보수’ ‘온건 보수’라는 그 이면에 과연 진영 전 장관이 국정을 책임질 만한 인물이었던가 하는 질문이다.
그러한 평가는 진 전 장관이 사표를 제출하게 된 복지부의 노령기초연금 안과 청와대의 국민연금 연계방안을 비교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
진 전 장관의 복지부 기초연금안은 한마디로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소득을 감안해서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자는 안이다. 그래서 소득하위 30%에게는 20만원을, 그 보다 좀 나은 30~50% 소득자에게는 15만원을, 그리고 50~70% 소득자에게는 10만원, 나머지 상위 30%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정책이었다.
정치는 ‘자아실현’ 아닌 봉사
이 방안은 일견 합리적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함에 있어서 소득을 기준으로 차등화 시키는 것은 정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한가지 맹점이 있다. 그렇게 지불할 만한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점이다.
진 전 장관의 방안대로라면 연 27조원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올해만 세수 부족이 10조에 달한다는 것이고 내년 역시 약 25조에 가까운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 결국 진영 전 장관의 기초연금안은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다는 점에 있다. 대한민국 노령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복지부는 계산하지 않았다. 결국 진 전 장관의 안대로라면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은 매년 27조원이 아니라 여기에 노령화 승수를 곱해야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다.
물론 청와대의 국민연금 연계안도 재정부담은 비슷하다. 하지만 국민연금 가입자가 늘어나게 되면 그 부담은 완화된다. 청와대안이 최선은 아니지만 어차피 무상복지에서는 최악과 차악중에 선택하는 게임이 보통이다.
문제는 진영 전 장관이 기초연금 외에도 지방재정에 정부가 더 많은 재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는 점이다. 진 전 장관은 지방재정의 씀씀이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였을까. 지방에서 국민 세금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 그 현실을 진 전 장관이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실 재정에 시달리는 지자체는 널려 있다. 244개 지자체 중 238개의 재정이 적자 상태다. 재정이 적자니 빚은 더 늘어난다. 지자체가 떠안고 있는 빚은 지방공기업 부채, 민자사업 부채 등 지자체가 감당해야 할 빚을 합쳐 126조원을 웃돈다.
그런데도 재정을 흥청망청 탕진하는 행태는 끊이지 않는다. 사업성도 없는 경전철을 건설해 빚더미에 오른 경기 용인시, 그림 한 점을 걸어놓겠다며 25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지은 경북 청송군, 이 같은 지자체는 한두 곳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허리띠부터 졸라매야 하지만 빚잔치를 벌이고 중앙 정부에 손을 내민다.
진영 전 장관이 단 한번이라도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과 오렌지 카운티의 파산을 생각해 봤다면 지방재정에 더 많은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소리는 함부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영 전 장관이 지극히 낭만적이고 자신의 가치와 도덕에만 충실한 페이비언 주의자는 아니었나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취미로 하는 이들은 많다. 자아 실현을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만큼 국민에게 불행을 주는 이들도 없다. 그런 이들은 하루 속히 정치를 접고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 정치는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국민의 만족을 위한 봉사이고 그 봉사에는 무엇이 가장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따르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 나쁜 결과’만큼 국민 분열을 일으키는 정책도 없다. 이미 진 전 장관이 입법 발의해 만든 사회적 기업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진영 전 장관의 일련의 행태를 보며 새누리당의 각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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