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와 폭탄주
부산국제영화제와 폭탄주
  • 미래한국
  • 승인 2013.10.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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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세계 여러 곳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가몇 개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영화제마다 규모가 다르고 주최자들의 구성도 다양해서 정기적으로 행사를 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두번 행사를 치르고는 흐지부지 사라지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다 합치면 대략 400여개 쯤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중 국제영화제작자연맹이 공인하는 영화제는 경쟁극영화 영화제(14), 경쟁특성화영화제(28), 비경쟁 극영화(4), 다큐멘터리/단편(5) 등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해 51개 영화제를 공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공인이 특별한 자격 유무를 가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제의 규모와 지속성, 운영자들의 구성 등을 참조해 인증한다는 의미가 있을 뿐 그 외의 영화제의 개최를 막거나 참가를 거부하는 등의 제한을 하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에서는 전주와 부산 영화제가 경쟁 특성화영화제의 공인 목록에 올라 있다.

 

국제 영화제 시작은 1932년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영화제는 운영 방식에 따라 크게는 경쟁영화제와 비경쟁영화제로 나뉜다. 경쟁영화제는 영화제에 참가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비교 평가를 하여 그중에서 특정한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방식이며 비경쟁영화제는 여러 영화들을 모아 상영만 하는 것이다.

규모가 큰 영화제일수록 경쟁부문과 비경쟁을 혼용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영화제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의 경우 20편의 작품이 경쟁하는 경쟁부문과 함께 ‘주목할 만한 시선’ 등 비경쟁 부문을 여러 개 두어 운영한다.

국제영화제가 처음 시작된 건 1932년. 무솔리니 시대의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열었다. 이탈리아 영화를 홍보하고 영화를 통한 국민통합을 목표로 한 정치적 전략이 깔려 있었다.

베니스영화제에 주목하고 있던 프랑스는 그것에 대항하는 새로운 영화제를 열기로 구상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영화제를 칸에서 열었다. 이것이 칸영화제의 출발이다. 베를린영화제는 1951년부터 시작했다.

영화를 통한 독일 문화의 부흥, 동서로 분할된 독일의 통합 기원 등 여러 가지 전략적 의미를 담고 출발한 것이다. 베니스, 칸, 베를린 등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이들 영화제들은 모두 ‘영화예술’을 앞에 내세우기는 하지만 저마다 정치적 목표를 바탕에 두고 시작한 행사라는 점에서는 닮았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수많은 영화제들 역시 겉으로는 영화예술의 발전과 영화인들 간의 교류 증진을 명분으로 세우지만 특정국가나 집단, 단체의 입지를 홍보, 선전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영화제는 정치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 관련 행사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벤트로 꼽을 만하다. 1996년에 창설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영화 수준이 초라하고 외국영화와 경쟁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무슨 국제영화제냐며 지레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았지만 어쨌든 시작했고 올해로 18회를 맞았다.

소소한 시비나 분란이 있기는 했지만 부산을 대표하고 한국영화계를 널리는 알리는 데 기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도쿄국제영화제, 중국의 상하이영화제, 인도의 고아영화제, 콜카타영화제 등이 나름 규모나 연륜을 갖춘 경우로 꼽는데 역동성 면에서 부산영화제는 손꼽힌다.

한국영화의 위상이 널리 퍼지는 것과 비례해 부산영화제의 위상도 안정된 수준에 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계에서는 부산영화제가 한국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영화보다도 ‘폭탄주’라는 농담도 한다. 부산을 찾는 외국인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폭탄주를 청량음료 마시듯하는 한국영화인들의 무한 속도, 무한 주량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화려함 속에 갇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화려하다. 영화의 전당을 행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규모의 당당함을 넘어 관객을 압도할 정도다. 축구장 2.5배 크기의 광장과 거대한 스크린, 레드 카펫과 번쩍이는 조명, 뽐내듯 겨루는 스타들의 무대 행렬은 오래 이어진다.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해 일본의 도쿄영화제 등 거의 모든 영화제들이 레드 카펫 행사를 펼치지만 규모나 화려함 면에서 손꼽을 만큼 압도적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영화의 기세가 크게 높아진 것처럼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도 날개를 달고 있는 중이다. 영화제에 협찬하려는 제작사나 기업, 후원 업체들도 늘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렸다. 70개국 299편 영화가 참가했고 그만큼 다양한 국내외 영화인들이 찾았다. 75개국 304편의 영화가 등장했던 2012년에 비해 외형적인 규모 면에서는 약간 줄었지만 영화제의 특성화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개막작은 부탄영화 ‘바라: 축복’을 선정하고 폐막작으로는 한국독립영화 ‘만찬’을 선정했으며 개막 사회에는 한국의 강수연과 홍콩의 곽부성이 공동으로 나섰다. 개·폐막작은 영화제의 성격과 방향을 드러내는 중요한 가늠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스타가 등장하지 않으며 상업적 성격도 약해 일반 관객들이 접하기 어려운 영화들을 선택한 것은 고심 끝에 선택한 결정이라고 할 만하다.

이전의 부산영화제는 규모가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듯 규모를 키우는 데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몇 개 나라에서 몇 백편의 영화가 참가했고, 누구누구가 왔다갔다는 등의 내용을 언론에 자랑했다.

영화 관객이 전년에 비해 몇 명이 더 늘어났다는 내용도 중요한 사항이었다. 영화제 기간의 관람객은 대체로 2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1996년 제1회 때의 18만명 수준과 비교하면 증가폭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개최 첫해에 참가한 영화가 31개국 169편이며, 27개국 224명의 영화인들을 초청했던 것에 비하면 최근의 참가작이나 영화인의 숫자는 작품 면에서는 2배, 영화인의 숫자는 그 몇 배로 늘었다. 예산도 첫해 15억원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100억원(마켓비용 포함 110억원 규모) 대를 넘어섰다.

 

대형화와 특성화 사이에서 고민

아무리 영화 편수를 늘리고 참가영화인들의 숫자를 늘린다 하더라도 관람객의 증가는 일정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산국제영화제의 물리적 규모는 지금의 수준이 한계치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제 측이 규모를 강조하는 부분을 슬며시 빼버리는 이유는 들이는 비용에 비해 거두는 성과가 빈약하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영화 국내흥행이 사상 최고라고 하면서도 해외배급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국제영화제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를 겨냥하는 측면이 크다.

영화제 규모의 대형화 전략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우는 데 기여한 측면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제의 성격이 무엇인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지명도가 높은 스타를 최대한 많이 불러 들여야 하고 관객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배치해야 한다.

 

될수록 이런저런 행사를 많이 만들고 관객과 스타를 대면하게 만드는 작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특성화는 뒤로 밀려나고 상업적이며 지명도가 높은 영화, 영화인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것저것 가짓수를 잔뜩 늘어놓는 뷔페 식당처럼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유명한 영화인들을 초청하는 데 올인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영화제는 북적거리는 것 같았지만 영화제의 개성을 정리하는 것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레드카펫 행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자 배우들 간의 드레스 경쟁이 치열해지고 흥미성 관심이 영화제를 주도하는 현상이 점점 커지는 것도 결국 외형적 규모를 키우는 요인 중의 하나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영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문화적 교류를 확산하며 마켓 활동을 통한 비즈니스의 증진이라고 한다면 영화 축제로서의 부산국제영화제 위상은 일정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해외영화인들의 인식도 높아진 것 같고 국내 관객들의 인지와 지지도 독보적이다. 그러나 마켓 기능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영화제가 겉으로는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만 실속은 별로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개·폐막작의 새로운 선정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화려함을 키우려는 개막식 레드 카펫의 강조는 앞뒤 안맞는 부조화이며, 영화제의 흐름은 여전히 규모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화려한 잔치를 계속할 것인지, 특성화된 문화행사로 방향을 돌릴 것인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 100억원 짜리 파티였다.

조희문 편집위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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