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위기의 韓日관계, 돌파구를 찾아서
[특별좌담] 위기의 韓日관계, 돌파구를 찾아서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11.08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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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韓日관계, 돌파구를 찾아서

참석자│ 권철현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주일대사
김호섭 중앙대 교수·前 한국정치학회장
사 회│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한일관계가 위기 일변도로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강경 정책은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과 집단자위권 등 ‘우경화’에 대한 바람직한 전략적 대응인가 아니면 우리의 국익을 저해할 근시안적 조치인가. 국제사회는 현재의 한일관계와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본지 <미래한국>은 지난 10월 22일 일본 전문가인 권철현 세종연구소 이사장과 김호섭 중앙대 교수를 초청해 위기에 빠진 한일관계의 해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회=일본문제 최고 전문가 두 분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내외 정책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가 대일 강경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APEC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악수를 하느냐 마느냐가 주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먼저 현재 한일관계와 우리의 대일정책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죠.

권철현 세종연구소 이사장·前주일대사

권철현=역대 모든 한일 양국 정권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정권 말기에 한일관계가 악화된다는 겁니다. 한국정권은 일본을, 일본정권은 한국을 쳐서 인기를 얻고 국내 지지율을 만회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국 정권이 모두 초기이므로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오히려 나쁜 관계로 치닫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근혜 정부의 대일 강경책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APEC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어떤 분들은 우리 대통령이 웃으며 받아줬어야 했다고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 치고 누가 아베와 악수를 하면서 웃을 수 있겠습니까.

아베 내각이 앞에서는 웃으며 뒤에서 뒤통수를 치는 일이 많았는데 박 대통령 철학의 기본은 신뢰입니다. 일본이 지금까지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선택도 제한돼 있습니다. 결국 아베 정부가 신뢰회복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는 한 상황 개선은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가 정상회담을 안 하는 건 결국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포석이라고 봅니다. 지금 바로 OK를 하고 실제 회담에서는 결렬되는 것 보다는 이게 더 낫지 않겠습니다.

국제문제로 비화되는 한일관계

김호섭=현재 한일관계가 냉랭해진 배경을 진단해보면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발단이었습니다. 거기서 일본이 강경대응을 했고 우리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자민당이 집권했죠. 국내 정치를 의식한 아베의 제스처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관 피력 등으로 나타나자 우린 거세게 반발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박 대통령의 외교 행태를 보면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국제화시키려는 모습입니다. 취임 이후 미국 방문 당시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아시안 패러독스’를 언급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는 상호 의존이 깊지만 안보나 정치면에서는 협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눈감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다’면서 일본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역사문제가 한일 양국문제로만 존재했는데 이젠 미국에까지 얘기가 된 겁니다.

사회=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당분간 한일관계의 진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점은 양국 정상이 문제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아베가 취임 이전부터 역사관에 있어서 우익적인 역사인식을 표시했는데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불만을 토로하니 아베 내각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적어진 겁니다.

이승만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의 반일태세를 보면 대통령이 선두에서 반일을 얘기하고 일본을 압박한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현재 외교 실무당국이 움직일 여지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대통령을 최후의 외교관이라고도 합니다. 마지막 외교관이 실패하면 다른 카드가 사라지고 모든 게 무너집니다. 이럴 땐 다른 영역에서 접근할 여지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전쟁 중에도 협상은 하지 않습니까. 이런 냉각기류 속에서 한쪽에서는 밀사가 오고가고, 노련한 은퇴 외교관들이 만나서 협의를 한다든지 등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엔 약간 그런 여지가 보입니다. 박 대통령과 아베가 모양은 안 좋았지만 어쨌든 만나서 악수는 했고, 아베 부인과 대통령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 정무수석과 일본 의원연맹 회장도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지금의 냉랭한 관계를 냉정하게 보면 실은 정부 간에 냉랭한 것이고 양국 국민들 간 관계는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 전체가 반일이라면 일본 방문도 꺼려야 하는데 2012년 일본 방문 외국인 통계를 보면 200만명으로 한국인이 가장 많았고 기업 간 교류도 여전히 많습니다. 일본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테러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했다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양국 국민 관계 나쁘지 않다

=이 시점에서 우리 외교 당국이 자숙하고 반성할 부분도 있습니다. 2008년 제가 일본대사 시절 자민당 정권이 조만간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한다는 걸 예측했습니다. 우리는 자민당과 50여년간 교류를 했기 때문에 민주당과는 대화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NPNN, 즉 New Paradigm, New Network라는 단어를 만들고 오찬은 자민당과, 만찬은 야당 쪽과 했습니다.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의 보좌관 20명을 한국에 초청해서 한국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진짜로 자민당이 무너졌는데 일본 민주당 정권에서 한일관계가 오히려 더 원만했습니다.

제가 우리 외교 당국에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민주당 정권도 계속 몰락했고 다시 자민당이 집권하는 과정까지 다 눈에 보였다는 점입니다. 자민당 첫 총리로 아베가 될 가능성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미리 작전을 썼어야 합니다. 한일관계를 해칠 발언들을 좀 자제하도록 사전에 만나서 설득을 했어야죠.

사회=우리 국민의 정서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강경자세는 십분 동감이 가고, 또한 말씀하신대로 정상회담을 위한 전략적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선조치도 필요할테고요. 그런데 과연 이러한 논리가 국제사회에서도 통할까요? 그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 되리라 보는데요.

대일 강경책, 국제사회서 통할까?

=좋은 지적입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리의 대일강경책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우릴 안타깝게 볼지도 모릅니다. 중국이 엄청난 대국으로 커가고 있고 아시아 전체를 위협할 정도가 됐습니다. 과연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가는 게 양국에 바람직할까요? 그걸 외국에서는 바람직하지 않게 볼 겁니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말이죠.

결국 한국이 일본을 일대일로 상대하긴 어렵고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일본을 함께 상대하지 않으면 외톨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외교 능력과 수완이 뛰어나야 합니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前한국정치학회장

=역사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문제 제기를 하는 데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 인정할 겁니다. 이걸 미국은 이해하고 있고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에게도 전달되고 있습니다.

유엔에서 우리의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도 국제사회의 동의가 있어서입니다. 중국 국력의 부상과 군사력 증강이 우리 국익에 플러스는 아닙니다. 그런데 역사관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국제사회가 한국의 역사문제 제기에 대해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제사회도 여러 나라들이 있지만 미국, 중국 및 일부 유럽 국가들은 우리를 이해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건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 때문입니다. 일본이 사과를 제대로 하면 일은 끝납니다. 독일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걸 우리가 너무 기대하는 것도 국제사회가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이겁니다. 우리가 과연 행복해서 웃을까요? 아니면 웃음으로서 행복해질까요? 전 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잘못이 완전히 없어져야 한일관계가 좋아질까요? 그걸 절대적인 전제로 놓고서 접근하면 양국 관계는 영원히 나빠집니다.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일본의 잘못도 줄어들고 반성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더 명심할 부분은 세계는 우리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겁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오염수를 유출시키고 진실을 왜곡한 건 대단히 나쁜 짓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번에 올림픽을 유치했습니다.

또한 침략행위와 위안부 납치를 부정한 나라에 집단적 자위권이 이번에 인정됐습니다.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욕적 상황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가 역사문제를 가지고 일본을 공격하는 걸 해외에선 그리 대단하게 보지 않다는 결론도 나옵니다. 거기에만 모든 걸 걸고 매달릴 수는 없고, 우리 혼자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양날의 검

사회=잠시 언급하셨듯 한일문제 최대 현안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감정적으로야 분노할 일이지만 현실적 안보 측면을 보면 어찌 대응해야 할지 어렵습니다. 한미동맹의 기본 축이 있는데 미일동맹도 튼튼합니다. 이 틀에서 집단적 자위권이 인정됐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기가 난감합니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군이 침략을 받으면 바로 파병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 유사 상황에 일본의 파병을 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집단적 자위권의 큰 문제는 핵을 가진 북한을 일본이 이길 정도로 군사력이 향상돼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이 다른 나라에까지 파병을 해서 이기려면 평화헌법 폐지는 상식이고, 핵무장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면 중국 북한 일본이 모두 핵 강대국이 되고, 우리의 안보는 더 위험해집니다.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방금 얘기는 극단적 전제하에서 얘기입니다. 일단 집단적 자위권이 일본 국내정치적으로도 확정된 게 아닙니다. 아베는 그걸 원하지만 헌법 개정 또는 헌법해석을 변경해야 하는데 아직은 미정 상태입니다. 아베정권이 몇 년 후에 바뀔 때 내각에서 해석을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현행 평화헌법이 전쟁을 금지하고 군사력을 국제분쟁의 수단으로서 쓰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행사를 못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다소 과도하게 해석한 부분도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예산문제도 있고 군사비를 줄이려고 하는데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마당에 일본이 그 부담 덜어주면 미국으로선 당연히 긍정적이겠죠.

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이 공격을 받으면 자신이 공격받은 것처럼 군사력 행사한다는 의미인데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동맹을 맺은 건 미국과 한국뿐이므로 결국 미일동맹의 한계 내에서 행사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도 사실은 쉽지 않을 겁니다. 일본 재정적자 누적으로 GDP의 240%까지 달했습니다. 현재 예산에서 GDP의 0.9%인 군사비를 늘려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는 해야 하지만 현실화까지는 여러 가지 벽을 넘어야 하므로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일본을 남북통일의 우군으로 확보해야

사회=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양국 정치인들이 한일관계를 정권 차원에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정권의 도구로 외교관계를 악용하는 데서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한일외교의 키포인트가 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경제외교를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고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의 평화공존과 통일에 있어서 일본이 장애물이 되지 않고 협조하도록 하는 겁니다.

=공감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대일외교의 가장 큰 목표가 뭔지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문제의 해결일까요, 아니면 우호관계의 구축일까요, 아니면 남북통일의 우군으로 일본을 만드는 것일까요? 우선순위를 잘 배열해야 하며 이게 바로 최고지도자의 역할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bumsoo1@hotmail.com
정리/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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