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 제도, 원조인 미국에선?
배심원 제도, 원조인 미국에선?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3.11.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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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주 덴버에 사는 수잔 콜이라는 58세 여성은 2011년 5월 배심원을 하라는 법원의 고지서를 받았다.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으로 영어 구사능력이 있고 1년 이상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의무가 ‘배심원’이다.

배심원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해 범죄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제도다. 형사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행위가 과연 유죄인가 여부를 판사가 아닌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회의에서 결정하게 된다.

배심원 제도는 투표와 함께 일반 시민들이 직접 정치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대표적 민주주의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수잔은 이 배심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 8시까지 법원에 가면 배심원으로 선발되든 되지 않든 오후 4시까지 거의 하루종일 대기하며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최대 목요일까지 4일 동안. 격리된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런 수고의 대가로 배심원 의무를 다한 사람이 받는 돈은 하루 40달러.

배심원을 못한다는 정당한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하면 법원의 재량하에 배심원 활동이 연기되긴 하지만 배심원 의무를 위해 며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부담이다.

만장일치제 채택한 美 배심제

수잔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녀도 무작위로 선발돼 배심원을 하기 위해 법원에 온 사람이다. 배심원들은 유권자 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을 기준으로 무작위로 선발된다. 인종, 성, 출신국, 나이, 정치 성향 등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법원에 온 모든 사람들이 배심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배심제도는 대배심(Grand Jury)과 소배심(Petty Jury)로 구분된다. 대배심은 대략 20여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된 경우이고 소배심은 12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된다. 이 만큼의 숫자만 배심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판사, 원고 및 피고측 변호사들은 법원에 온 잠재적 배심원들에게 아래의 질문을 하며 최종 배심원을 선정한다.

이 재판에 연루된 사람을 아는지, 이 재판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 이 재판에 관련된 사람이나 이슈에 대한 강력한 편견을 갖고 있는지 등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배심원을 뽑는다.

배심원에 뽑힌 사람은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아래의 지침 사항을 받는다.

첫째, 재판에 관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을 것. 즉 증인의 말을 다 들어보기 전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 모든 결정은 증거에 의해 내려야 하며, 개인적 판단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셋째,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컴퓨터나 또는 책자에서 찾아봐서는 안 된다.

넷째,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건에 관해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재판 중에 메모를 해도 좋지만 남의 것을 보거나 비교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재판이 시작되기 전 배심원석에 나올 때는 배심원실에서 모여 나오라는 연락을 받으면 함께 나와야 한다.

일곱째, 피고나 원고측과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법정안 음식이나 전화사용을 금하며 전화기를 꺼놓을 것.

아홉째, 모든 질문이나 건의사항은 배심원 서기를 통해 할 것.

열 번째, 배심원 반장을 뽑아 일을 진행하도록 할 것.

배심원들은 이런 지침 하에서 사건을 분석하고 파헤치며 증거로 나온 여러 자료들을 보며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가름한다. 모든 의견은 만장일치가 돼야 하므로 누구 하나라도 의견에 반문을 하면 배심원끼리 다시 회의를 하고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이런 까닭에 피고와 원고 측 변호사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증거와 자료들을 철저히 제공해야 한다. 배심원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라 분위기에 휩쓸려 평결하는 경우가 있어 배심원 제도에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예가 1994년 그 유명한 OJ 심슨 사건이다.

유명한 흑인 풋볼선수였던 OJ 심슨은 당시 자신의 백인 아내와 백인 내연남을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모든 증거는 OJ 심슨에게 불리했다. 그가 잡힐 당시 조용히 잡힌 것도 아니었다. OJ 심슨은 차를 타고 사건현장에서 도망쳤고 경찰이 이를 추격해 잡았다. 이 추격전은 방송국 카메라에 잡혀 OJ 심슨 추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생방송됐다.

심슨 사례처럼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OJ 심슨은 재판 중 자신의 죄를 부인하면서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죄인으로 몰리고 있다고 항변했다. OJ 심슨의 소행이라는 여러 물증이 나왔지만 그는 결국 무죄 평결을 받았다. 배심원 12명 중 9명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었다.

이 평결을 계기로 배심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수정헌법 5조를 근거로 정부의 기소재량권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국민이 기소하는 철학에 기인한 배심원 제도는 미국의 확고부동한 사법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배심원이 내린 결정에는 절대 순응해야 한다. 지난해 2월 비무장한 플로리다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17)을 몸싸움 끝에 총격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 짐머만(29)에 대한 배심원 평결이 지난 7월에 있었다.

6명의 여성 배심원(백인 5명, 히스패닉 1명)은 2급살인 협의로 기소된 짐머만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당초 6명의 배심원들은 짐머만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데 의견을 달리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짐머만 측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는 일관된 진술을 받아들여 그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수잔은 한 사람의 인생이 왔다 갔다하는 중대한 이 배심원의 의무를 지고 싶지 않아 정신병자처럼 하고 법원에 갔다.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를 풀어 헤쳤고 신발과 양말은 서로 다른 것을 신었다. 판사 앞에서 그녀는 자신을 가정 폭력의 피해자로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는 즉시 그녀를 배심원 후보에서 뺐다. 몇 달 뒤 수잔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판사를 속이고 배심원을 하지 않은 이 내용을 자랑하듯 얘기했다. 공교롭게도 이 방송을 당시 판사가 들었고 수잔은 법정 위증죄로 체포돼 벌금과 40시간 커뮤니티 봉사활동의 벌을 받았다.

미국사회에서 수잔과 같은 사람은 많지 않다. 전미변호사협회(ABA)가 2005년에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3명은 배심원 봉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전미변호사협회가 미 성인 102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75%가 배심원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며 기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가하겠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60%는 배심원이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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